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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테러서 100명 구한 15세 영웅…그가 소리치며 한 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모스크바 테러 현장에서 100명 이상을 구한 중앙아시아 이민자 소년 할릴로프(15). 사진 연합뉴스, 텔레그램 캡처

모스크바 테러 현장에서 100명 이상을 구한 중앙아시아 이민자 소년 할릴로프(15). 사진 연합뉴스, 텔레그램 캡처

러시아 모스크바 총격 및 방화 테러 현장에서 100명 이상을 구한 15세 중앙아시아 이민자 소년의 사연이 주목받고 있다.

24일(현지시간) '가제타.루'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주인공은 크라스노고르스크의 한 학교 8학년(한국의 중학생에 해당)인 이슬람 할릴로프(15)다. 그는 키르기스스탄에서 러시아로 이주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자 2세다.

할릴로프는 지난 22일 끔찍한 테러가 발생했던 모스크바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의 외투 보관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는 평소처럼 일하던 중 갑자기 폭음을 들었다. 사람들이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으로 뛰는 모습을 본 할릴로프는 당황하지 않고 공포에 빠진 100여명의 관객을 안심시켰다.

할릴로프는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막다른 화장실 쪽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것을 보고는 반대편에 있는 안전한 건물로 대피하게 했다.

당시 할릴로프가 뛰어가며 자신의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보면 그는 "저쪽으로, 저쪽으로, 모두 저쪽으로 가세요!"라고 소리를 치며 사람들을 내보냈다. 그는 "부모님에게 내가 안전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이 영상을 찍었다"고 밝혔다.

테러범들이 점령한 정문을 피할 수 있었던 비상구는 건물 카드로만 열 수 있었는데 그는 공연장의 아르바이트였기 때문에 마침 카드가 있었다. 할릴로프는 "그들이 총을 쏘고 있어요. 지나가게 해주세요"라고 외치며 사람들을 밀어내고 비상구 문을 열었다.

그는 "나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사람들 뒤로 가서 아무도 남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마지막에 탈출했다"고 말했다.

모스크바 테러 현장에서 100명 이상을 구한 중앙아시아 이민자 소년 할릴로프(15, 가운데). 그는 수업이 없을 때 러시아 프로축구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유소년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이 구단은 그를 홈경기장에 초청해 1군 선수들을 만나게 해주고 시즌티켓과 유니폼을 선물했다. 사진 연합뉴스, 텔레그램 캡처

모스크바 테러 현장에서 100명 이상을 구한 중앙아시아 이민자 소년 할릴로프(15, 가운데). 그는 수업이 없을 때 러시아 프로축구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유소년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이 구단은 그를 홈경기장에 초청해 1군 선수들을 만나게 해주고 시즌티켓과 유니폼을 선물했다. 사진 연합뉴스, 텔레그램 캡처

할릴로프가 공연장 아르바이트였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이날 중요했다. 그는 건물 내부 구조와 출입구 위치를 잘 알았을 뿐만 아니라, 긴급 상황 발생 시 고객 대피 방법에 대해 사전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할릴로프는 "충격에 빠져 서 있으면 나와 수백 명이 목숨을 잃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내가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 테러에서는 현재까지 사망자 137명, 부상자는 180명 이상이 확인됐다. 할릴로프의 침착하고 용감한 대처가 아니었다면 희생자가 훨씬 많을 수 있었던 셈이다.

그는 수업이 없을 때 러시아 프로축구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유소년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이 구단은 그를 홈경기장에 초청해 1군 선수들을 만나게 해주고 시즌티켓과 유니폼을 선물했다.

또 러시아 래퍼 모르겐시테른은 감사의 표시로 100만루블(약 1400만원)을 전달했고 러시아 무슬림 지도자인 무프티 셰이크 라빌 가누트딘은 "할릴로프에게 최고 무슬림상을 수여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이슬람국가(IS)가 테러의 배후를 자처하고 테러범 중 일부가 타지키스탄 국적으로 알려지면서 러시아 내 무슬림과 중앙아시아 출신에 대한 반감이 커질 수 있는 상황 그의 용기가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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