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중구삭금(衆口鑠金)과 굴원(屈原)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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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를 이루는 사람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이면 그 힘이 매우 강력하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다수를 이루는 사람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이면 그 힘이 매우 강력하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부파라(不怕辣)

쓰촨(四川) 사람들은 요리가 매워도 이렇게 싱겁게 말한다. ‘매워도 난 괜찮아요’라는 의미다. “라부파(辣不怕).” 같은 매운 요리를 앞에 두고 구이저우(貴州) 사람들은 이렇게 퉁명스럽게 말한다. ‘매운 맛 그딴 거, 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라는 의미다. 그러면 후난(湖南) 사람들은 이 동일한 세 글자를 써서 어떻게 말할까. 꽤 무지막지한 표현으로 상대의 기를 제압한다. “파부라(怕不辣).” ‘우린 말이죠. 혹시라도 요리가 맵지 않으면 어떡하나, 이걸 염려하거든요’, 대략 이런 뉘앙스다. 중국인이 즐기는 ‘식탁 유머’ 한 토막이다. 후난의 매운 맛은 정말 ‘고추 맛’ 그 자제다.

이번 사자성어는 중구삭금(衆口鑠金)이다. 앞의 두 글자 ‘중구’는 ‘여러 사람의 입’이란 뜻이다. ‘삭금’은 ‘쇠를 녹이다’라는 뜻이다. 둘을 결합하면 ‘여러 사람의 말은 쇠도 녹인다’라는 의미가 된다. 전국시대 초(楚)나라 애국 시인(詩人) 굴원(屈原)의 비극적 운명과 관련이 깊은 사자성어다.

굴원은 그의 조국 초나라가 서북의 진(秦)나라에 의해 망국의 길로 들어서는 역사 현장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문관이었지만 외적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한 우국지사로 한 평생 일관했다. 당랑거철(螳螂拒轍)의 그 기세등등한 사마귀를 떠올려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숙적 진나라를 둘러싸고 전투보다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지던 시기였다.

굴원은 세로로 뭉치자는 합종(合縱)의 편에 서서 가로로 뭉치자는 연횡(連橫)측과 대항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전국칠웅 가운데 초(楚)·제(齊)·연(燕)·조(趙)·위(魏)·한(韓) 이렇게 6국이 소진(蘇秦)이 설계한 합종책에 응했다. 한편, 상앙(商鞅)의 법가 행정에 의해 초강대국으로 급성장한 진나라는 외교에선 연횡책을 밀어붙였다. 장의(張儀)가 아이디어를 내고 국경을 넘나들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굴원은 장의가 꾸민 이간계에 협력한 초나라 관료들에 의해 모함을 받고 가까이 모시던 회왕(懷王)의 눈 밖에 났다. 어리석은 회왕은 ‘장의와 진나라에 속지 말라’는 굴원의 조언을 외면했다. 회왕은 결국 장의에게 연거푸 농락당한다. 진나라를 방문했다가 객지에서 우둔한 생을 마감했다. 회왕 뒤를 이은 혼군에게 재차 ‘바른 소리’를 하다가 굴원은 장강 이남으로 추방을 당하는 신세가 된다. 그는 지금의 창사(長沙) 인근을 배회하며 시를 지었다. 동정호(洞庭湖)로 흘러드는 멱라수(汨羅水)가 있다. 분한 마음과 우국충정을 노래하던 그의 고매한 시작(試作)은 이 안개 자욱한 물가에서 끝이 났다.

굴원은 ‘이소(離騷)’라는 초사(楚辭)를 지었다. 읽어보면 시경(詩經)의 간결한 시 305수(首)와 분위기가 다르다. 조금 길고 정형시 형식이다. 내용도 서사시에 가깝다.

중구삭금에 얽힌 굴원의 삶과 죽음에서 두 가지 힘(power)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이간책(離間策)이다. 우리가 굴원의 반대편 진나라 입장이라고 가정해 보자. ‘초나라 사람끼리 서로 싸우게 하자!’ 이 계책 말고 딱히 떠오르는 묘수가 없다. 산과 강과 습지 덕에 장성(長城)도 필요없는 천연의 요새 지역이다. 게다가 ‘초나라 사람 3명만 모여도’ 싸움에선 이기기 힘들다는 말까지 있었다. 그런 거친 지역을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유도하는 방법 아니면 뭘로 제압할 수 있을까. 강한 조직을 이끌고 있다고 나름 자부하는 리더일수록 이 ‘이간책의 파괴력’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굴원이 어느 순간 불현듯 ‘너무 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돌을 품고서 거친 급류 속으로 뛰어든 것은 아니다. 그는 초나라 조정이 바른 판단을 하도록 긴 세월을 인내하며 기다렸다. 국력이 회복될 기미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절명시를 남기고 멱라수에 몸을 던진다. 귀한 목숨을 바치고 후세에 큰 울림을 주기 위함이었다. 매천 황현(黃玹)의 깊은 뜻과 다르지 않다.

자신만의 이야기와 핵심 아이콘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민족이나 공동체는 복원력이 있어 생명력도 오래간다. 중국인들은 요즘에도 굴원의 충정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매해 음력 5월의 단오절에 용선(龍船)을 띄우고 쫑즈(粽子)를 강에 던진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

홍장호. 더차이나칼럼

홍장호.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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