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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기권' 속 '휴전 결의안' 채택…이스라엘 "美에 파견단 취소"

중앙일보

입력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5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즉각적인 휴전과 인질 석방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지난해 10월 개전 이후 처음으로 채택했다. 안보리의 결의안은 국제법상 구속력을 지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5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전쟁과 관련 즉각적 휴전과 인질 석방과 관련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미국은 이날 표결에 기권하며 한국 등 비상임이사국이 주도한 결의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했다. 이날 기권을 택한 주유엔 미국대사의 자리가 비워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5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전쟁과 관련 즉각적 휴전과 인질 석방과 관련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미국은 이날 표결에 기권하며 한국 등 비상임이사국이 주도한 결의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했다. 이날 기권을 택한 주유엔 미국대사의 자리가 비워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결의안은 한국을 포함한 비상임이사국 10개국(E10ㆍElected 10)이 공동 제안한 것으로, E10의 공동 발의는 물론 이들이 주도한 발의안이 채택된 것 역시 역사상 처음이다. 한국 등 비상임이사국이 나선 배경은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된 이후 여러 차례 휴전 결의안이 상정됐지만, 매번 상임이사국인 미국과 중국·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며 진전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전 초기부터 이스라엘을 지지해온 미국은 하마스를 성토하는 내용이 빠진 안보리 결의안에 세 차례 거부권을 행사해왔다. 결국 지난 22일 미국이 직접 결의안을 냈지만 이번엔 중·러가 거부권을 행사하며 또다시 부결됐다. 5개 상임이사국 중 하나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안보리 결의안은 채택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E10이 처음으로 공동 발의한 이번 결의안의 정치·외교적 중재와 조율에 관여해왔다고 한다.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에 앞서 바실리 네벤지아 러시아 유엔 대사와 장준 중국 유엔 대사(가운데 왼쪽)가 아랍 국가 대사들과 이스라엘과 가자 분쟁 결의안 표결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에 앞서 바실리 네벤지아 러시아 유엔 대사와 장준 중국 유엔 대사(가운데 왼쪽)가 아랍 국가 대사들과 이스라엘과 가자 분쟁 결의안 표결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외교 소식통은 이날 통화에서 “미국은 휴전과 인질 석방이 연계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에 이번 결의안에는 두 요소를 한 문장에 담아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는 절충안을 만들어냈다”며 “또 다른 미국의 ‘레드라인’이던 하마스에 대한 규탄 표현은 표결 5분 전에 미국의 구두 성명으로 갈음하는 방식의 조율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황준국 주유엔 한국대사는 이날 회의에서 “이날 결의가 안보리 내부 정치를 넘어 구체적인 의의를 갖기 위해서는 가자지구 상황에 유형의 영향을 미쳐야 한다”며 “무고한 민간인의 생명을 구하고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을 완화하는 등 가자지구 현장 상황이 결의 채택 후 달라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비상임이사국들의 중재 속에 미국은 이날 거부권 행사 대신 기권을 택했고, 미국의 기권 속에 중국과 러시아는 찬성표를 던졌다.

황준국 주유엔대사가 지난 1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보리 공식 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황준국 주유엔대사가 지난 1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보리 공식 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외교가에선 이스라엘을 지원해왔던 미국이 결국 결의안이 통과되도록 기권표를 던진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갈등이 깊어진 현실을 반영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특히 대선을 앞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민간인 피해가 지속되고 있는 전쟁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 대한 지상전을 놓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갈등을 노출해왔다.

실제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이 표결에 기권하는 방식으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자 즉각 백악관에 파견하기로 했던 대표단의 방미 일정을 취소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미국도 가만 있지 않았다. 존 커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이날 오전 온라인 브리핑에서 이스라엘의 대표단 취소에 대해 “매우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파견 취소에 대해서도 “이스라엘 대표단의 일정이 변경됐다는 통보를 우리가 받았는지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다”며 이스라엘의 일방적 취소 결정 자체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16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6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특히 네타냐후 총리가 고집하는 라파 지상작전에 대해선 “라파에서의 대규모 지상 작전은 실수라는 우리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며 “특히 이스라엘의 작전으로 150만명이 그곳에서 피난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라파에서의 지상 공격을 옳은 행동 수순(right course of action)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커비 보좌관은 다만 이날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과 관련 “우리의 (이스라엘)정책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고, (미국과 이스라엘 간의)긴장이 고조되는 것으로 볼 이유도 없다”며 “하마스 규탄 등 우리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표현이 최종 결의안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결의안을 지지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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