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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확대, 이공계 인재 블랙홀 안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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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홍성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과기인재정책연구센터장

홍성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과기인재정책연구센터장

정부는 지난 20일 서울 이외 대학의 의대 정원을 2000명 확대해 배정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의대 입학생은 5000명을 넘기는 수준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우수한 과학기술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이공계 인재가 의학 계열로 이동할 가능성도 그만큼 커졌다. 엄밀히 따지면 2023년도 이공계 대학 입학자가 약 5만9000명이니, 2000명이 이공계에서 빠져나간다고 해도 3% 정도라 엄청 큰 효과를 낳기는 힘들다.

교수 연구실 중심 인재 교육 한계
연구와 교육 분리하는 게 바람직
과기 인재 위한 좋은 일자리 필요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보다 큰 문제는 세계 최저인 우리나라 출생률로 인해 학령인구 감소가 본격 시작했다는 점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추정에 따르면 지금처럼 인문사회 대비 이공계 선호가 계속된다고 해도, 2025년 이후에는 이공계 대학원 재학생이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과학기술 발달을 이끌 이공계 인재 풀 자체가 많이 감소하는 가운데 의대 정원 확대 영향이 더해져 적절한 과학기술 인재 확보의 어려움을 더 키울 수 있다. 나아가 우수 과학기술자가 될 수 있는 학생이 먼저 의약 계열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해 대학 입시에서 입학 성적 상위 20위권 학과는 15위를 기록한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제외하면 모두 의학 계열 학과로 나타났다. 입학 성적이 높은 학생일수록 의학 계열로 우선 진학할 가능성이 높은 게 현실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산업 및 국가경쟁력의 원천으로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AI) 등과 같이 영향력이 큰 과학기술일수록 이를 개발하는 우수 인재의 중요성이 커진다. 이로 인해 주요 국가일수록 우수 과학기술 인재 확보를 위한 정책을 국가 차원에서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이제는 과학기술 수준에서 우리나라를 앞서가는 나라가 된 중국의 경우 ‘쌍일류’ 전략으로 대학을 지원함과 동시에 청년 영재 성장 지원, 해외 우수 인재 유치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과학기술 인재 확보 전쟁이 격화되는 와중에 우리나라에서는 과학기술 인재 풀의 축소에 더해 우수 인재가 더 빠져나가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더 나은 직장과 안정된 고소득이 확보될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하는 건 개인 입장에서 너무나 당연하다. 이는 지금까지처럼 인재 공급 기관에 대한 지원 중심의 정책만으로는 충분한 인재 풀 확보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기술인재 정책에서도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과학기술 인재가 더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대학(원)의 연구 및 교육 환경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개별 교수의 연구실을 중심으로 교육과 연구가 모두 이루어지는 현재의 환경은 더 이상 과학기술 인재 성장에 최적의 환경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도 연구는 철저히 전문 연구자의 고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전문 연구 체제를 갖추고, 대학(원)생의 교육은 인재의 성장과 진로를 중심으로 확실히 이루어지는 체제가 구축되어야 한다. 즉, 국가만이 아니라 대학에서도 전문적인 연구와 교육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투자하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나아가 이렇게 성장한 과학기술 인재들이 갈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충분히 확충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면 과학기술 인재를 위해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적극적으로 연구개발 활동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임금 자체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면 연구에 더 몰두하거나 장기적으로 더 크게 보상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의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인재의 유입·성장과 취업이 선순환을 이루는 생태계가 마련될 수 있도록 과학기술 인재 정책이 범부처 차원에서 종합 정책으로 기획되고 추진되어야 할 시기이다. 이것이 양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어 한 명 한 명이 더 소중해지는 국내 과학기술 인재의 육성과 자발적인 유입을 촉진할 유일한 방법이다. 국가간 치열해지는 첨단 산업 경쟁에서 과학기술 인재 없이 앞서 나아갈 길은 없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우수 인재가 스스로 찾아올 수 있고 미래 인재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산·학·연·관 모두 힘을 합쳐 적극 노력해야만 하는 시대가 눈앞에 닥쳐왔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홍성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과기인재정책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