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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베니스에서의 죽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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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진회숙 음악평론가

진회숙 음악평론가

1971년에 나온 비스콘티 감독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사진)은 독일의 문호 토마스 만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작곡가 구스타프는 베니스의 리도 섬으로 여행을 갔다가 그곳에서 마치 그리스 조각처럼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닌 소년을 보고 한순간에 매료되고 만다. 평생 아폴로적인 절제와 금욕을 최고의 덕목으로 알고 살았던 예술가가 디오니소스적인 욕망에 속수무책으로 내몰린 것이다.

음악으로 읽는 세상

음악으로 읽는 세상

그러던 어느 날, 섬에 전염병이 찾아와 소년의 가족이 섬을 떠난다는 소식을 듣는다. 다시는 소년을 볼 수 없다는 절망에 휩싸인 구스타프는 이발사를 찾아가 흰머리를 검은색으로 물들이고, 얼굴에 하얗게 분칠을 한다. 입술에는 빨간 연지도 바른다. 늙은 얼굴을 가린 채 소년의 주변을 맴돈다.

구스타프 말러

구스타프 말러

영화의 주제음악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제5번의 4악장 아다지에토다. 처연하고 비극적인 느낌의 이 느린 악장은 집요하게 죽음을 이야기한다. 이 악장에서 말러는 오로지 현악기만 사용했는데, 그 소리가 그렇게 비장하고 처연할 수가 없다. 인간 존재의 실존적 의미, 젊음의 소멸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멀리서 검은 구름이 밀려오듯 현악기의 처연한 음색이 점점 소리의 강도를 높여 간다. 그 장면에서 남자는 죽음을 맞는다. 그의 얼굴에서 땀이 흘러내린다. 머리와 눈썹, 얼굴과 입술을 물들인 염색약과 화장품이 땀으로 범벅된다. 그 추한 모습은 되돌릴 수 없는 젊음을 화장으로 감추려 했던 남자의 소망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처절하게 보여준다.

소년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는 동안 구스타프의 삶도 서서히 꺼져 간다. 갑자기 현기증이 밀려온다. 멀리 사라져 가는 소년을 따라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구스타프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만다. 소년과의 이별이 곧 육신의 죽음이자 정신의 죽음이 된 것이다.

진회숙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