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주호주대사가 25일 방위산업 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에 참석했다. ‘해병대 채수근 상병 수사 외압’ 의혹으로 이 대사를 입건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이 대사가 회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출국할 때까지 먼발치서 바라만 봐야한다. 수사가 이 대사로 타고 올라갈만큼 증거나 진술을 확보하지 못해서다.
이 대사가 받고있는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일반적 권한’에 속하는 사항을 ▶불법하게 행사해 ▶다른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이 대사는 지난해 7월 채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보고를 받고서 결재한 뒤 이튿날 보류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①군 수사 방해?=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은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이 대사를 공수처에 고발하며 “이종섭 장관은 대통령실과 공모해 수사 축소의 목적으로 박 전 단장에 기밀사항 등을 보고하도록 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수사 방해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 2021년 민주당 주도로 개정(2022년 7월 시행)된 군사법원법에 따라 ‘군인 사망 관련 범죄’ 등 3대 범죄에 대한 군의 수사권이 사라져, 이 대사 직권남용의 원인이 되는 전제 사실(군의 수사권)이 없다는 것이다. 이 대사 측 김재훈 변호사 역시 “군에 수사권이 없어 수사 외압은 성립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대사와 비슷한 사례로는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이 거론된다. 지난 1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1심 재판부는 법원행정처 고위간부들에게는 다른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으므로 직권 남용도 없다는 취지로 무죄 판결했다. 한 법조인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과 같은 논리라면 이 대사 혐의도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이 방해받았다고 지목하는 수사도 현재 수사 권한이 있는 경북경찰청이 권리 행사(수사) 중이다.
②경찰 이첩 방해?=군 수사 방해가 아니라 군의 경찰 이첩을 방해했거나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끔 한 경우라면 달리 볼 여지가 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채 상병 사건 관련 수사가 군사법원법을 뛰어넘는 월권이라 치더라도, ‘범죄를 인지한 경우 그 사건을 경찰청 등에 이첩해야 한다’(228조 3항)는 건 직무 권한 내의 일이라서다.
공수처도 이 부분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고, 적극적으로 경찰 진술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 대사는 이첩을 결재했다 보류시킨 사실, 보류 지시에도 박 전 단장이 경찰에 사건을 넘기자 국방부 검찰단을 통해 회수한 사실 모두 인정하고 있다. 한 법조인은 “국방부 장관이 이첩 보류를 지시하거나 이첩 자료를 회수하게 한 것은 직무상 권한 행사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이 대사의 행위가 불법적인지, 다른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했는지가 쟁점이 된다. 박 전 단장 측 김경호 변호사는 “수사단장은 단지 수사 입건 전 관련 기록과 증거물을 송부하면 그 의무를 다하는 것임에도, 이 대사가 박 전 단장에게 이첩을 보류하라는 의무 없는 일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보류·회수 의도가 무엇이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이 대사는 보류 지시를 “재검토 필요 때문”(지난해 8월)이라 밝혔고 국방부는 자료 회수 이유를 “사령관 명령을 위반해 권한 없이 보낸 박 전 단장 항명 사건의 증거자료로 수집한 것”(지난해 10월)이라고 했다. 국방부 검찰단 출신의 배연관 변호사(법무법인 YK)는 “장관이 꼼꼼하게 재검토해보라고 시켰다거나, 수사를 막으려는 의도로 이첩 자료를 회수한 게 아니라면 직권남용죄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수사 성패는 이 대사의 행위가 직무 권한인지, 군 라인을 통해 부당한 지시로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했는지를 법리적으로 규명하는 데 달렸다. 공수처는 지난 1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것 외엔 수사 속도가 더딘 편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공수처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공수처 입장에서도 수사 속도를 내긴 어려울 것”이라며 “법리적 논란이 있는만큼 증거를 치밀하게 모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