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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한 이종섭…軍 수사권 없는데 직권남용 쟁점은

중앙일보

입력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25일 방위산업 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에 참석했다. ‘해병대 채수근 상병 수사 외압’ 의혹으로 이 대사를 입건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이 대사가 회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출국할 때까지 먼발치서 바라만 봐야한다. 수사가 이 대사로 타고 올라갈만큼 증거나 진술을 확보하지 못해서다.

국방부 장관 재직 시절 채 상병 사건 조사 과정에서 외압을 행사한 혐의를 받는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지난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국방부 장관 재직 시절 채 상병 사건 조사 과정에서 외압을 행사한 혐의를 받는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지난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이 대사가 받고있는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일반적 권한’에 속하는 사항을 ▶불법하게 행사해 ▶다른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이 대사는 지난해 7월 채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보고를 받고서 결재한 뒤 이튿날 보류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①군 수사 방해?=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은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이 대사를 공수처에 고발하며 “이종섭 장관은 대통령실과 공모해 수사 축소의 목적으로 박 전 단장에 기밀사항 등을 보고하도록 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수사 방해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 2021년 민주당 주도로 개정(2022년 7월 시행)된 군사법원법에 따라 ‘군인 사망 관련 범죄’ 등 3대 범죄에 대한 군의 수사권이 사라져, 이 대사 직권남용의 원인이 되는 전제 사실(군의 수사권)이 없다는 것이다. 이 대사 측 김재훈 변호사 역시 “군에 수사권이 없어 수사 외압은 성립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9월 5일 더불어민주당 '해병대원 사망사고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이종섭 국방부 장관 등을 고발하고 있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해병대원 사망사건 진상규명TF

지난해 9월 5일 더불어민주당 '해병대원 사망사고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이종섭 국방부 장관 등을 고발하고 있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해병대원 사망사건 진상규명TF

이 대사와 비슷한 사례로는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이 거론된다. 지난 1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1심 재판부는 법원행정처 고위간부들에게는 다른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으므로 직권 남용도 없다는 취지로 무죄 판결했다. 한 법조인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과 같은 논리라면 이 대사 혐의도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이 방해받았다고 지목하는 수사도 현재 수사 권한이 있는 경북경찰청이 권리 행사(수사) 중이다.

②경찰 이첩 방해?=군 수사 방해가 아니라 군의 경찰 이첩을 방해했거나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끔 한 경우라면 달리 볼 여지가 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채 상병 사건 관련 수사가 군사법원법을 뛰어넘는 월권이라 치더라도, ‘범죄를 인지한 경우 그 사건을 경찰청 등에 이첩해야 한다’(228조 3항)는 건 직무 권한 내의 일이라서다.

공수처도 이 부분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고, 적극적으로 경찰 진술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 대사는 이첩을 결재했다 보류시킨 사실, 보류 지시에도 박 전 단장이 경찰에 사건을 넘기자 국방부 검찰단을 통해 회수한 사실 모두 인정하고 있다. 한 법조인은 “국방부 장관이 이첩 보류를 지시하거나 이첩 자료를 회수하게 한 것은 직무상 권한 행사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지난해 8월 28일 오후 국방부 검찰단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용산구 국방부로 향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지난해 8월 28일 오후 국방부 검찰단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용산구 국방부로 향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이 경우 이 대사의 행위가 불법적인지, 다른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했는지가 쟁점이 된다. 박 전 단장 측 김경호 변호사는 “수사단장은 단지 수사 입건 전 관련 기록과 증거물을 송부하면 그 의무를 다하는 것임에도, 이 대사가 박 전 단장에게 이첩을 보류하라는 의무 없는 일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보류·회수 의도가 무엇이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이 대사는 보류 지시를 “재검토 필요 때문”(지난해 8월)이라 밝혔고 국방부는 자료 회수 이유를 “사령관 명령을 위반해 권한 없이 보낸 박 전 단장 항명 사건의 증거자료로 수집한 것”(지난해 10월)이라고 했다. 국방부 검찰단 출신의 배연관 변호사(법무법인 YK)는 “장관이 꼼꼼하게 재검토해보라고 시켰다거나, 수사를 막으려는 의도로 이첩 자료를 회수한 게 아니라면 직권남용죄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수사 성패는 이 대사의 행위가 직무 권한인지, 군 라인을 통해 부당한 지시로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했는지를 법리적으로 규명하는 데 달렸다. 공수처는 지난 1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것 외엔 수사 속도가 더딘 편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공수처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공수처 입장에서도 수사 속도를 내긴 어려울 것”이라며 “법리적 논란이 있는만큼 증거를 치밀하게 모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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