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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사회서 묻어버리자"…의사 익명 커뮤니티 메디스태프 논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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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의료인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메디스태프가 논란의 진원지로 떠오르고 있다. 익명성을 바탕으로 전공의 사직을 부추기는 지침을 쓰거나 복귀 전공의에게 낙인을 찍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관련자들이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과거 ‘전공의 리베이트 의혹’을 내부 고발한 서울 소재 대학병원 A교수의 신상이 유포되면서 해당 교수가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메디스태프 익명게시판에서 A 교수를 비방한 성명불상자들을 수사 중이라고 25일 밝혔다. 이들은 모욕, 허위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 등 혐의를 받는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A 교수는 지난 19일 자신을 비방하는 글을 의사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에 올린 작성자들을 서울경찰청에 고소했다. 사진은 비방글에 적힌 A 교수에 대한 욕설과 조롱. 메디스태프 캡처

서울 소재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A 교수는 지난 19일 자신을 비방하는 글을 의사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에 올린 작성자들을 서울경찰청에 고소했다. 사진은 비방글에 적힌 A 교수에 대한 욕설과 조롱. 메디스태프 캡처

경찰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전 10시 32분쯤, 메디스태프에 “B 병원 리베이트 사건의 전말”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A교수는 2020년 말 B 병원 전공의가 치료와 무관한 비급여 약제를 환자에게 처방하고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해 병원과 갈등을 빚었다. 글쓴이는 “A교수가 하급자에게 기수 열외를 제대로 당해서 인턴들에게조차 인사를 못 받는다”며 “이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라고 썼다.

댓글엔 “이름 밝히고 의사 사회에서 묻어야 할 듯” 같은 비방과 욕설이 올라왔다. 초성을 적거나 이름으로 된 삼행시를 짓는 식으로 실명을 특정할 수 있는 댓글도 올라왔다. 가족을 언급하거나 A교수의 나체를 묘사한 그림까지 게재됐다. A교수에게 늦은 밤까지 수시로 전화가 오기도 했다. A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메디스태프에서 계속해서 범죄에 가까운 일이 자행되고 있는데 마땅한 조치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의사 출신인 기동훈 대표가 2016년 설립한 메디스태프는 폐쇄성이 특징이다. ‘의사판 블라인드(직장인 익명 커뮤니티)’를 표방한 만큼 의사 면허를 인증해야 가입할 수 있다. 보안도 철저하다. 화면 캡처를 하면 가입자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워터마크가 남는다. 일정 기간 지나면 채팅이 자동 삭제되는 기능도 있다. 가입자 수는 2만 명 이상이다.

21일 메디스태프에 방재승 전국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의 휴대전화 번호가 유포됐다. 방 비대위원장은 18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해 일부 의사들의 반발을 샀다. 메디스태프 캡처

21일 메디스태프에 방재승 전국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의 휴대전화 번호가 유포됐다. 방 비대위원장은 18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해 일부 의사들의 반발을 샀다. 메디스태프 캡처

최근 의·정 갈등 국면에서는 강경 여론을 주도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21일에는 방재승 전국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의 전화번호가 유포됐다. 방 비대위원장이 18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지 사흘 만이었다. 해당 글은 “뇌혈관 관련 질문은 010-0000-0000으로!”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방 비대위원장은 뇌혈관 전문의다. 글쓴이는 “지금 머리가 아프다거나 어지러우신 분은 궁금한 것 있으시면 010-0000-0000로 연락주시면 바로 전문의의 답변을 구할 수 있습니다”라고 적었다. 메디스태프에 가입한 한 전문의는 “유화 메시지를 낸 이에 대한 사실상의 좌표찍기”라고 말했다.

지난 7일에는 의료 현장에 남은 전공의의 개인정보를 담은 ‘전공의 블랙리스트’가 올라왔다. 글에는 전국 약 70개 수련병원별 집단사직 미참여 전공의들의 정보가 상세히 담겼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전공의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25일 오후 기 대표를 조사할 방침이다.

25일 오후 '메디스태프' 기동훈 대표가 집단행동에 불참한 전공의 명단인 '전공의 블랙리스트'가 메디스태프에 게재된 사건에 관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25일 오후 '메디스태프' 기동훈 대표가 집단행동에 불참한 전공의 명단인 '전공의 블랙리스트'가 메디스태프에 게재된 사건에 관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이 밖에도 경찰은 “사직 전 업무와 관련된 전산 자료를 삭제하라”는 내용의 글을 메디스태프에 올린 현직 의사를 업무방해 혐의로 세 차례 불러 조사했다. 지난 21일에는 “의료 시스템을 박살 내자”는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와 복지부가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메디스태프에서 활동 중인 의사 C씨는 “우격다짐으로 의대 증원을 밀어붙이는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도 “일부 동료들이 정부와 맞서기 위해 정도를 넘어선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결국 메디스태프는 최근 홈페이지에 “준법적으로 게시판 이용을 부탁드린다”는 공지까지 올렸다. 메디스태프는 공지에서 “2~3월에 지난해 월 평균 대비 10배 이상 규모로 게시글을 삭제했고, 15배 이상 회원에 대해 정지 또는 탈퇴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안 그래도 폐쇄적인 의사 집단에 익명성이 가미되면서 나타난 병폐”라면서 “법 위반 여부를 떠나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집단 문화에 대한 윤리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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