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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정가 발칵 뒤집은 로버트 허 특검…'한국식 교육' 꺼내며 한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기억력 나쁜 노인’으로 묘사한 보고서로 미국 정가를 발칵 뒤집은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 허(51) 미국 연방 특별검사의 인터뷰가 22일(현지시간) 미국 유명 주간지 뉴요커에 실렸다. 논란의 보고서가 나온 뒤 그가 인터뷰에 응한 것은 처음이다.

로버트 허 특별검사가 지난 12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하원 법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AP=연합뉴스

로버트 허 특별검사가 지난 12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하원 법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AP=연합뉴스

보고서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2009년 1월~2017년 1월) 백악관 기밀문서를 유출한 혐의에 대해 허 특검이 1년간 수사한 기록과 불기소 처분을 내린 이유 등이 담겼다.

바이든의 기억력 상태 등으로 미뤄 기소하더라도 배심원단을 상대로 유죄로 설득하는 것이 어렵다는 취지의 보고서 내용이 공개됐을 때 공화당은 “바이든을 기소하지 않았다”며 비난했고, 민주당은 “대통령에게 정치적인 상처를 입히려는 악의적인 표현”이라고 공격했다.

뉴요커는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의 집과 사무실에 기밀문서를 무단으로 소지했다는 사실이 명백한데도, 허 특검이 그를 기소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물었다. 허 특검은 범죄가 성립되려면 ‘의도적 보관’이어야 하는데,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이 이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게 분명해 보였다는 취지로 답했다.

문서가 보관돼 있던 차고는 빈 양동이나 심하게 손상된 상자 등 쓸모없는 물건을 쌓아둔 곳으로, 허 특검은 보고서에 “이 곳은 중요한 기밀문서를 의도적으로 보관해둔 장소로 보이지 않았다”고 기술했다.

로버트 허 특검의 보고서에 포함된 사진. 미국 델라웨어주 윌밍턴에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차고로, 기밀문서가 발견된 장소다. AP=연합뉴스

로버트 허 특검의 보고서에 포함된 사진. 미국 델라웨어주 윌밍턴에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차고로, 기밀문서가 발견된 장소다. AP=연합뉴스

또 그는 자신이 바이든 대통령의 기억력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해 “그들이 불쾌해 할 것을 알고 있었다”고도 했다. 이어 “그 보고서는 법대생이나 일반 대중은 물론, 의회를 위해서 쓴 글이 아니다”면서 “경험 많은 검사였던 메릭 갈런드 미국 법무장관이 그 보고서의 유일한 독자”라고 설명했다. 기소할 경우 재판에서 혐의를 충분히 입증할 수 있을지 등 법률적 측면만 고려했다는 취지다.

허 특검은 자신에 대해 “당파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특별히 추구하는 이념이 없으며, 나는 단지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도 강조했다.

뉴요커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특검 자리를 수락한 이유에 대해서도 물었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이번 수사는 애초부터 양날의 검이 될 수밖에 없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백악관 기밀문서 유출 및 보관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모두에게 제기된 혐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전·현직 대통령은 차기 대선 후보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허 특검은 “많은 부분이 가족의 역사와 관련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외가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란했다. 마취과 의사였던 아버지, 간호사였던 어머니는 1970년대 초 미국으로 이주했다.

허 특검은 “한국전쟁 당시 미국과 주한미군이 아니었다면, 내 부모님과 나의 삶은 아주 달라졌을 것”이라며 “나와 내 가족은 이 나라에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미국 법무장관이 난감한 일을 누군가에게 시켜야 하는 상황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며, 나의 윤리적·도덕적 신념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마땅히 맡아야 한다”고 답했다.

허 특검은 어린 시절 받았던 ‘한국식 교육’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모든 분야에서 우수해야 했고, 집안 분위기는 엄숙했다. 단순히 즐겁기 위해 뭔가를 해본 기억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다만 한동안 드럼을 쳤는데, 그것이 사실상 유일한 반항이었다고 설명했다.

1973년생인 허 특검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명문 사립 고교인 하버드-웨스트레이크, 하버드대 학부를 거쳐 스탠퍼드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예과 공부를 시작한 적이 있지만, 유기화학 수업에서 제적됐다. 그는 영문학에도 관심이 많아 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1897~1962)의 작품 ‘압살롬아, 압살롬아’를 윤리적으로 분석한 논문을 쓰기도 했다.

공화당원인 허 특검은 2007~14년 메릴랜드주(州) 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근무한 뒤 법무부에서 일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법무부 수석차관보와 메릴랜드주 연방지검장을 지냈다. 검사장으로 근무하던 2018년 4월부터 2021년 2월 사이 마약, 사기 등 강력범죄를 주로 수사했다. 이 기간 국가안보국(NSA) 하청 계약자 해럴드 마틴의 기밀정보 절취 사건을 기소하며 기밀 유출 문제를 다룬 적도 있다.

2021년 연방지검장직을 끝으로 공직을 떠나 유명 로펌인 깁슨 던 앤드 크러처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근무했다. 지난해 갈런드 법무부 장관은 허 특검 지명을 발표하면서 “검사로서 탁월한 경력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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