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불법이민·낙태·이스라엘…바이든·트럼프 운명, 경합주에 달렸다

중앙일보

입력

미 대선이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대결 구도로 확정되면서 이른바 경합주(swing stat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 경합주들은 핵심 이슈에 대한 공감도를 측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까지 하고 있다. 경합주에 따라 각각 불법이민, 낙태, 물가, 이스라엘 등 쟁점에 대한 표심 변화가 개별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11월 대선에서 다시 맞붙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AP=연합뉴스

11월 대선에서 다시 맞붙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AP=연합뉴스

지난 대선 때는 대표적인 경합주로 꼽히는 5개 주에서 바이든이 모두에서 승리해 당선됐다. 최근 여론조사들을 종합하면 이들 5개주 모두 트럼프가 오차범위 안팎에서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각 주가 가진 핵심 쟁점에 따라 여론이 움직이고 있어, 후보들은 경합주의 민심을 반영한 맞춤형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멕시코와 국경 애리조나

멕시코와 600㎞가 넘는 국경을 맞댄 애리조나는 불법 이민 관련 여론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애리조나의 민심은 현재까지 국경 문제가 트럼프에게 유리한 이슈임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의 남단 멕시코와의 국경 도시 노갤러스. 노갤러스는 9m 장벽을 경계로 멕시코와 맞닿아 있다. 장벽에 설치된 철조망에는 담을 넘다 걸린 옷가지와 사망자를 추도하는 꽃다발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투산ㆍ노갤러스=조셉리 기자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의 남단 멕시코와의 국경 도시 노갤러스. 노갤러스는 9m 장벽을 경계로 멕시코와 맞닿아 있다. 장벽에 설치된 철조망에는 담을 넘다 걸린 옷가지와 사망자를 추도하는 꽃다발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투산ㆍ노갤러스=조셉리 기자

정치분석 사이트 ‘리얼클리어폴링’에 따르면 현재 애리조나 여론은 47.8% 대 42.6%로 트럼프가 앞선다. 격차 5.2%포인트는 2016년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을 이긴 3.5%포인트 차이를 넘어선다.

트럼프로의 쏠림은 급격하게 나타났다. 바이든은 2020년 애리조나에서 트럼프에게 0.3%포인트 이겼다. 1996년 이후 처음으로 민주당 후보가 거둔 승리였다. 기류는 코로나 봉쇄 막바지였던 2022년 중간 선거까지 이어져 민주당 주지사까지 탄생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이후 바이든 정부는 국경 장벽을 철거했다. 그러자 애리조나는 불법 이민의 주요 통로가 되면서 여론이 빠르게 악화됐고, 민주당은 최근 강경 이민 정책으로의 선회를 시사하며 국경 강화법안을 냈다. 그러나 트럼프와 공화당은 법안처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애리조나에서 확인된 유리한 이슈를 선거까지 끌고가겠다는 의도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최고 실업률·고유가 네바다

네바다는 ‘먹고 사는 문제’, 즉 물가와 민생경제에 대한 반응을 가늠할 척도로 평가된다. 민생에 대한 여론도 현재까지는 트럼프에 유리하다.

2020년 3월. 코로나의 영향으로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출입이 금지됐다. 코로나의 여파로 네바다주는 현재까지 미국 전체에서 가장 실업률이 높다. AFP=연합뉴스

2020년 3월. 코로나의 영향으로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출입이 금지됐다. 코로나의 여파로 네바다주는 현재까지 미국 전체에서 가장 실업률이 높다. AFP=연합뉴스

네바다엔 카지노의 천국 라스베이거스가 있다. 호황을 누리던 카지노 산업은 팬데믹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네바다의 실업률(5.3%)은 지금까지 전국에서 가장 높다. 체감 물가와 직결되는 휘발유 가격 역시 50개주 가운데 3번째로 비싸다.

민생 지표의 변화는 선거에 반영됐다. 민주당은 2008년 이후 코로나 전까지 네바다에서 4연승 했다. 2020년 바이든의 성적도 50.1% 대 47.7%, 2.4%포인트 승리였다. 그러나 카지노의 개점휴업과 인플레이션 속에서 치러진 2022년 중간선거에선 공화당에 주지사 자리를 내줬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지금도 대선 후보 지지율은 46.3% 대 40.7%로 트럼프가 앞선다. 특히 지난 대선과 비교해 지지율 변화가 없는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의 지지율만 10%포인트 빠졌다. 그러자 거시경제 지표의 개선을 앞세운 ‘바이드노믹스’를 핵심 전략으로 써온 바이든은 최근 관련 언급을 사실상 중단했다. 반면 트럼프는 재임 기간 기록한 안정적 물가 지표를 끊임 없이 과시하고 있다.

아랍계 반발 확인된 미시건

미시건은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 지원을 강조했던 바이든이 최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공개 비판하는 이유를 설명할 단서를 찾을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지난 2월 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미시간주 방문에 맞춰 아랍계 유권자들이 미국의 중동정책을 비판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월 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미시간주 방문에 맞춰 아랍계 유권자들이 미국의 중동정책을 비판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7일 민주당의 미시건 프라이머리에서 10만명이 넘는 ‘지지 후보 없음’이란 표가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당선이 확정적인 상황에서, 미시건에 거주하는 아랍계 등이 바이든의 중동 정책을 비토한 결과다.

이때 나온 10만표는 2016년 트럼프가 미시건에서 승리할 때 기록한 힐러리 클린턴과의 표차 1만1000표의 10배에 해당한다. 당시 트럼프 승리는 1988년 이후 공화당 후보로는 처음이었고, 미시건의 15명 선거인단을 독식한 트럼프는 대통령이 됐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이스라엘 전쟁이 진행 중인 현재 여론은 46.5% 대 43%로 트럼프가 앞선다. 47.3% 대 47% 박빙으로 승리했던 2016년보다 오히려 더 유리한 상황이다. 2020년 50.6% 대 47.8%로 바이든이 승리했던 때와 비교하면 아랍계 등 기존 바이든 지지층의 이탈로 분석된다. 그러자 유대계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네타냐후의 퇴진을 공개 요구했다.

‘낙태 캠페인’ 출발점 위스콘신

위스콘신은 2000년 이후 대선에서 4번이나 1%포인트 이내에서 승부가 결정됐던 경합주다. 바이든이 승리한 지난 대선의 득표율도 49.5% 대 48.8%, 0.7%포인트 승부였다.

2023년 1월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위스콘신주의 낙태 전면 금지법 철폐를 지지하는 행진 도중 시위대가 위스콘신주 의사당 원형 홀로 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23년 1월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위스콘신주의 낙태 전면 금지법 철폐를 지지하는 행진 도중 시위대가 위스콘신주 의사당 원형 홀로 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현재 위스콘신의 여론은 46.4% 대 45.4%로 트럼프가 박빙 우세를 보이고 있지만, 다른 곳보다 격차가 적다. 특히 최근 바이든의 추격세가 거세다. 배경은 위스콘신이 민주당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낙태권을 상징하는 곳이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위스콘신에선 1973년 낙태를 여성의 권리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기존의 낙태금지법이 사문화됐다가, 2022년 보수 우위 연방 대법윈이 판결을 번복하면서 낙태가 다시 금지됐다. 그러자 위스콘신 유권자들은 그해 중간선거 때 민주당 주지사에게 힘을 싣는 한편 2023년엔 진보 성향 대법관을 선출해 대법원 구성 자체를 15년만에 진보 우위로 바꿔버렸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위스콘신에서 낙태 이슈의 파괴력을 확인한 바이든은 지난 1월 23일 낙태권 보호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을 시작으로 낙태를 선거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지난 7일 의회 연설에 초청된 외빈 상당수도 낙태 이슈 관련자들이었다. 반면 트럼프는 낙태에 대해 함구하다 지난 1일에서야 ‘15주 이후 낙태 금지’ 가능성을 시사했다가 역풍을 맞고 또다시 입을 닫고 있다.

‘노조 vs 석유개발’ 맞선 펜실베이니아

바이든은 쇠락한 미국 공업지대를 뜻하는 ‘러스트벨트’의 중심 펜실베이니아에서도 46.4% 대 45.4%, 1%포인트차로 트럼프를 바짝 뒤쫓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는 2016년과 2020년 대선에서 모두 0.7%포인트차로 트럼프와 바이든이 각각 승리했던 곳이다.

펜실베이니아주 노스 브래독에 있는 US스틸 에드가 톰슨 제철소.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4일 신일본제철에 US스틸을 매각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AFP=연합뉴스

펜실베이니아주 노스 브래독에 있는 US스틸 에드가 톰슨 제철소.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4일 신일본제철에 US스틸을 매각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AFP=연합뉴스

바이든은 일찍부터 노조에 공을 들였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파업에 직접 동참한 끝에 지난 1월 전미자동차노조(UAW)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숀 페인 UAW 위원장은 바이든의 의회 연설에도 핵심 외빈으로 초청됐다. 바이든은 당시 연설에서 친노조·친중산층 성향을 강조하며 트럼프와의 차별화를 꾀했다. 최근엔 이례적으로 신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의 펜실베이니아 전략은 다소 차이가 난다. 트럼프 역시 US스틸 매각에 대해 "당선되면 거래 자체를 취소시키겠다"고 밝힌 상태다. 동시에 미국 공업의 몰락을 바이든의 친환경 전기차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노조를 설득하는 한편, 석유 개발을 공약하며 펜실베이니아의 또 다른 축인 셰일 가스 산업계의 여론을 자극하고 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블룸버그는 이에 대해 “펜실베이니아 동부 도시 노동자를 공략하는 바이든과 서부 블루칼라층을 공략하는 트럼프 중 누가 더 표를 끌어모으느냐의 싸움”이라고 분석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