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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는 나" 황현희 호소에도, 투자방 가짜 황현희는 조롱했다

중앙일보

입력

개그맨 황현희를 사칭한 각종 광고와 거짓 계정들. 황현희 인스타그램

개그맨 황현희를 사칭한 각종 광고와 거짓 계정들. 황현희 인스타그램

“제가 진짜 황현희이라고요.”

몇달 전 개그맨 황현희는 자신을 사칭한 광고 사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가 고수익 투자를 권유하며 사람들을 모으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만들었다는 것. 설마 하는 마음으로 채팅방에 자신의 이름을 쳤더니 알지도 못하는 대화방이 10여개가 나왔다. 직접 방에 들어가서 자신이 황현희라고 했더니 가짜 황현희씨가 유행어를 흉내내며 비웃었다. 그는 “이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구나. 누군가는 정말 속을 수 있겠다 싶었다”고 떠올렸다.

최근 온라인상에 연예인·교수·유튜버 등을 사칭한 광고 사기가 급증하면서 유명인들이 처음으로 공동 대응에 나섰다. 유명인 사칭 온라인 피싱 범죄 해결을 위한 모임(유사모)은 22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공동 기자회견 열었다. 모임은 온라인에서 명의도용 피해를 본 유명인들로 김미경 강사와 방송인 송은이, 존리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황현희 등을 주축으로 만들어졌다. 성명서에 동참한 유명인은 개그맨 유재석, 가수 노사연 등 137명이다.

22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유명인 사칭 온라인 피싱범죄 해결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김미경 강사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개그맨 황현희, 존리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김미경 강사, 개그우먼 송은이,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한상준 변호사. 연합뉴스

22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유명인 사칭 온라인 피싱범죄 해결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김미경 강사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개그맨 황현희, 존리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김미경 강사, 개그우먼 송은이,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한상준 변호사. 연합뉴스

유명인 사칭 사기 피해 1조 원대...안타까운 사연들

김미경 강사는 모임을 만든 배경에 대해 “유튜브에 저를 사칭하는 채널이 하루에도 50개씩 생겼다. 전 직원이 아침부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삭제 조치를 해도 막을 수 없었다”면서 “이런 사기 영상 하나에 조회 수가 50만이 넘었는데 도대체 얼마나 광고비를 쏟아부었으면 이 많은 사람이 클릭을 했을까 억장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조치를 했지만 쉽지 않아 힘을 모아야겠다 생각했다”고 했다.

방송인 송은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전 재산을 날린 20대 사회초년생, 사망한 남편 보험금을 모두 잃은 사람, 평생 노후 자금을 잃은 분까지 안타까운 사연이 많았다”면서 “더는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배우 배용준과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사칭 계정의 투자 권유 광고.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배우 배용준과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사칭 계정의 투자 권유 광고.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모임에 따르면 최근 유명인 사칭 사기는 AI(인공지능) 딥페이크(영상 조작물)과 온라인 플랫폼 광고서비스를 통해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단순히 연예인의 사진을 도용하는 것을 넘어 딥페이크로 유명인이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을 만들어 내고 목소리도 실제처럼 꾸며낸다. 그리고 조작 영상을 인스타그램·유튜브·포털 뉴스페이지 등에 광고를 태워 확산시킨다. 사람들이 모이면 오픈채팅방이나 네이버 밴드 등에 초대하고 고수익 투자를 미끼로 돈을 요구하는 수법이다.

모임 측은 유명인 사칭 사기 피해액수가 1조 원대로 추정했다. 경찰은 피싱·리딩방 등 사칭을 이용한 범죄 수법이 수십가지에 이를 정도로 다양해 정확한 통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상준 변호사(법무법인 대건)는 “작년 9월부터 최근 6개월간 맡은 사건 중 유명인 건은 500억원이 넘었다”며 “보통 전체 사건 중 한 회사가 담당하는 사건의 비율은 5% 미만인데 이를 바탕으로 역추산하면 유명인 사칭 사기 피해 규모는 1조가 넘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칭 광고 신고조차 어려워...플랫폼 신속 대응팀 꾸려야

유사모는 사칭 광고를 발견하자마자 플랫폼 측에 신고를 하려고 해도 이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황현희씨는 “유선상 상담자가 없어서 이메일을 보내면 2~3일을 기다려야 하고 그렇게 채팅창까지 만들어져도 답장도 느리고 ‘확인해서 연락해주겠다’하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미 많은 사람은 현혹돼 있고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플랫폼 측에서도 사실상 이를 방치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유명인 사칭 피해를 막을 법과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송은이는 “경찰에 신고하면 금전적인 피해를 본 당사자가 아니면 사기 혐의로 신고조차 어렵다고 하고, 명예훼손의 경우 가해자를 특정해야 하는데 소재조차 파악되지 않은 범죄자를 대상으로 고발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유사모는 더는 피해를 막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이 실시간 신고 대응팀을 만드는 등 사전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정부도 온라인 사칭범죄를 일반적인 금융사기가 아닌 보이스피싱 범죄로 규정해 전담팀을 꾸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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