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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고발 10여건…법정다툼 번진 정부∙의료계 대립 길어진다

중앙일보

입력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이 19일 오전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박민수 2차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발하기 위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방문했다. 연합뉴스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이 19일 오전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박민수 2차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발하기 위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방문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직권을 남용해 전공의들의 휴식권, 사직권 등 정당한 권리 행사를 방해했습니다. 정부가 도발을 시작한 상황에서 당하고만 있을 순 없지 않습니까.”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이자 미래를 생각하는 의사 모임(미생모) 대표로 활동 중인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지난 19일 오전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 박민수 2차관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의료인과 협의하지 않은 의대 증원 정책을 시행하면서 이에 반발한 의료인들이 정부의 행정처분을 위반할 시 면허 자격을 정지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다. 임 회장은 “정부 관계자들이 의료인들을 먼저 자극했다. 사람 목숨 살리며 힘든 건 참을 수 있지만 모욕은 참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하고 불거진 의‧정간 갈등이 법적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 44일간 의‧정이 서로를 고발한 주요 사건은 5건으로, 이어지는 고소‧고발전에 두 단체 간 갈등이 장기화될 거란 우려도 나온다.

▶전공의 연락처를 불법 수집했다며 복지부 장‧차관과 의료인력정책과 담당 공무원 등을 고발한 사건 ▶박민수 2차관이 브리핑에서 의사를 ‘의새’로 발언해 논란이 된 사건 ▶의사의 증원 필요성을 설명하다 여의사 차별성 발언으로 문제가 된 사건도 각각 경찰과 검찰에 고소·고발이 접수됐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보건복지부도 지난달 27일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 주수호 홍보위원장, 박명하 조직강화위원장,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 노환규 전 의협회장을 의료법 위반과 형법상 업무방해, 교사‧방조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이외 시민단체의 고소‧고발과 각종 수사의뢰까지 더하면 지금까지 접수된 법적 공방은 10건이 훌쩍 넘는다.

의‧정 사이 법적 공방…“예상된 일이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의‧정 갈등이 법적 공방으로 확산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의료법에 대해 잘 아는 한 변호사는 “행정처분 예고를 한 순간 정부로서는 ‘강공 모드’를 철회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의료계에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는 사태 초반부터 파업 주도 세력에 대한 ‘구속 수사 원칙’을 천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갈등이 시작된 이래 지속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는 협상과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에 의협 비대위는 “모든 국민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직업을 그만둘 자유도 포함된다”며 집단 사직에 대한 헌법상의 근거를 제시하고 나섰다.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정부가 미복귀한 전공의들에 대한 사법 처리 입장을 재차 강조하자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나를 잡아가라”는 글로 항의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전공의 처우개선 논의를 위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전공의 처우개선 논의를 위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정부와 의료계 사이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제때 치료받지 못한 환자와 보호자는 쌓이고 있다. 지난 15일까지 복지부가 운영하는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 지원센터에 접수된 상담 건수는 총 1414건이다. 이중 509건이 피해 사례로 접수됐는데 ▶수술 지연(350건) ▶진료 취소(88건) ▶진료 거절(48건) ▶입원 지연(23건) 등으로 이어졌다.

갈등 계속될까…“해결 위해 노력하겠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정부의 기본 방침은 법과 원칙에 따라서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다. 과거 의사 파업 당시 법 집행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이런 경험이 쌓이면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부 강경파의 무리한 요구만 볼 것이 아니라 정부와 협상하기 위해 테이블로 나오는 의료인들의 주장도 함께 봐주셨으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임현택 회장은 “법정 공방이 길어지며 걱정하는 환자분들이 생기는 건 당연히 이해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공의들이 정말 견디다 못해서 뛰어나간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타협점을 찾아야 할 정부 여당이 좀 더 책임감 있는 자세를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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