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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형 도피 2년만 한국 송환 확정…루나 '증권성' 운명가른다

중앙일보

입력

20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항소법원이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주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한국 송환을 확정했다. 사진은 위조 여권 사건에 대한 재판을 받기 위해 지난해 6월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으로 향하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항소법원이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주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한국 송환을 확정했다. 사진은 위조 여권 사건에 대한 재판을 받기 위해 지난해 6월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으로 향하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연합뉴스

‘2022년 테라·루나 폭락 사태’를 일으킨 권도형(33) 테라폼랩스 대표가 해외 도피 2년 만에 한국으로 송환돼 수사와 재판을 받는다. 권 대표는 이르면 23일 한국 땅을 밟을 전망이다.

20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항소법원은 “권 대표의 한국 송환을 결정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의 판단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한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이 미국 정부보다 사흘 빨랐다는 점이 주요 근거였다. 이로써 권 대표의 한국 송환 관련 몬테네그로 사법 절차는 모두 마무리됐다.

권 대표의 한국행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앞서 지난달 20일 현지 고등법원은 “권 대표를 미국으로 인도하라”고 결정했다. 이에 권씨 측이 즉각 항소했고, 항소법원이 5일 이를 받아들여 고등법원에 재심리를 명령했다. 고등법원은 지난 7일 기존 결정을 뒤집고 한국 송환을 결정했다.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측근인 한창준 테라폼랩스 코리아 최고재무책임자가 지난달 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연합뉴스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측근인 한창준 테라폼랩스 코리아 최고재무책임자가 지난달 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는 몬테네그로 당국과 권 대표의 인도 시기, 방법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법무부는 관계자는 21일 “권씨의 한국 송환 관련 범죄인 인도 서류가 도착하지 않았다”며 “몬테네그로 법무부가 권 대표 송환을 공식 통보하면 통상적 범죄인 인도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조 여권을 사용한 혐의로 몬테네그로에서 복역 중인 권 대표의 형기가 23일 만료되는 만큼, 이르면 23~24일 입국할 가능성도 있다.

권 대표는 테라·루나 폭락 사태 직전인 2022년 4월 싱가포르로 출국한 뒤 해외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 지난해 3월 몬테네그로 현지 공항에서 가짜 코스타리카 여권을 소지한 채 두바이로 가는 전용기에 탑승하려다 체포됐다.

테라·루나 사건 핵심 피의자가 국내에 모두 송환된 만큼 검찰 수사는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부(하동우 부장검사)는 지난달 몬테네그로에서 송환된 권 대표의 측근 한창준 전 차이코퍼레이션(차이) 대표를 21일 자본시장법 위반·사기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지난해 4월에 재판에 넘겨진 신현성 전 차이 총괄대표도 같은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차이는 간편결제 서비스 운영사로 테라와 업무 협약을 맺은 곳이다.

단성한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이 지난해 4월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자본시장법 위반·사기 등 혐의를 받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와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총괄대표의 불구속 기소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단성한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이 지난해 4월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자본시장법 위반·사기 등 혐의를 받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와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총괄대표의 불구속 기소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권 대표의 향후 수사와 재판의 핵심 쟁점은 가상자산인 테라·루나의 ‘증권성’ 인정 여부다. 검찰은 테라폼랩스가 발행한 암호화폐 루나가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투자계약증권이란 투자자가 타인과 공동으로 특정 사업에 투자해 수익을 분배받기로 한 약정이 담긴 증권을 의미한다. 가상자산 전문 예자선 변호사는 “가상자산 투자 이유가 암호화폐의 가치 상승이고, 권 대표가 루나의 가격 변동을 통한 이익을 약속했기 때문에 증권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내 형사재판에서 가상자산의 증권성을 인정한 사례가 아직 없어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앞서 서울남부지법은 지난해 2월 신 전 차이 대표에 대한 재산 몰수보전 청구 항고를 기각하며 “검사가 제출한 자료만으론 루나 코인이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상품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블록체인법학회장인 이정엽 변호사는 “현행법이 가상자산의 증권성을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죄형 법정주의와 충돌해 적용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법원이 테라·루나를 증권이 아닌 상품으로 규정하면 권 대표에게 사기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검찰은 권 대표의 기망 의도를 입증하는 한편 투자자별 피해 금액을 일일이 특정해야 한다. 이와 달리 자본시장법을 적용하면 불공정거래 사실 자체로 처벌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부당이득 몰수도 더 쉽다. 예자선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국제 코인 범죄에 대한 국내 대응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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