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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목숨 바쳐 나라 지킨 청년 군인의 명예 존중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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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오복 국가보훈부 정책자문위원(연평도 포격전 고 서정우 하사 어머니)

김오복 국가보훈부 정책자문위원(연평도 포격전 고 서정우 하사 어머니)

오는 22일은 제9회 ‘서해수호의 날’이다. 정부는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전에서 전사한 55 용사를 국민과 함께 추모하고 안보의식을 북돋우며 국토 수호의 결의를 다지려는 취지에서 2016년부터 매년 3월 넷째 금요일을 정부기념일인 ‘서해수호의 날’로 제정해 기념식을 해오고 있다.

나는 이맘때가 되면 국가를 위해 소중한 목숨을 희생한 서해 수호 전사자 55명 중 한 명의 엄마로서 가슴이 저린다. 모두가 기억하듯이 북한의 도발은 6·25전쟁 이후에도 끊임없이 계속됐다. 한·일 월드컵 축구의 열기가 뜨거운 2002년 6월에는 북한의 북방한계선(NLL) 침범으로 발생한 서해 전투, 즉 제2연평해전에서 6명이 전사했다.

55용사 추모하는 서해수호의 날
보훈 문화 역행하는 행위 잇따라
유족 상처 덧나지 않게 해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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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6일 북한이 해상 경계 중인 천안함을 폭침시켜 무려 46명의 우리 군인들이 전사했다. 같은 해 11월 23일 북한이 연평도에 가한 무차별 포격으로 군인 2명이 전사하고 일반인 2명이 사망한, 전쟁과 다를 바 없었던 연평도 포격 도발도 있었다.

그뿐인가. 2015년 8월 4일에는 북한이 비무장지대(DMZ) 인근에 매설한 목함지뢰가 폭발해 하재헌·김정원 하사가 다리를 절단해야 했던 끔찍한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해 6월 윤석열 정부는 1961년 군사원호청 창설 이래 실로 62년 만에 국가보훈처를 국가보훈부로 승격했다.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영웅들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보훈 문화 확산을 위해서다.

나는 소중한 아들(고 서정우 하사)이 2010년 연평도 포격전 와중에 전사한 이후 지난 14년 동안 북한의 도발을 원망하며 아들 없는 아들 생일을 보내야 했다. 명절에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아들의 묘역을 찾아 아들을 그리워하며 아픔 속에 살아왔다. 국가보훈부로 승격되면서 이제는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 바친 영웅들을 위해 진영을 떠나 진정한 보훈 문화가 퍼지고 희생된 영웅의 명예가 온전히 지켜지길 기대했다.

하지만 희생된 젊은 군인들의 명예를 지켜주기는커녕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보훈 문화에 역행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8월 광주광역시가 북한과 중국 군가를 작곡한 6·25 전쟁 전범인 공산주의자 정율성 기념 공원을 조성 중이란 소식을 듣고 나는 지금까지 공원 반대 운동에 앞장서서 동참하고 있다.

연초에 북한의 도발과 협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야당 정치인은 적대행위 중단을 요청한다면서 “선대들, 우리 북한의 김정일, 또 김일성 주석의 노력이 폄훼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고 발언해 충격을 줬다. 6·25전쟁을 일으킨 김일성과 핵 개발을 주도한 김정일을 마치 평화 애호자인 것처럼 미화하는 바람에 북한의 도발로 전사한 서해 수호 55용사의 유족과 생존 장병들이 울분을 느끼게 했다.

얼마 전에는 국회의원 출마 후보자가 “DMZ에 들어가서 발목 지뢰 밟는 사람들한테 목발 하나씩 경품을 주자”면서 비웃던 2016년 유튜브 발언과 영상이 재소환됐다. 젊음을 바쳐 나라를 지키다 두 발을 잃은 장병을 조롱하고 모독한 발언이 또다시 분노를 자아냈다. 보훈 행사에서 하재헌 중사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목함지뢰 사건 당시 두 다리를 잃고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힘들게 고통을 극복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트라우마를 어렵게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는 청년을 위로하기는커녕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사람들, 북한 공산 세력에 의해 자식을 잃고 곪아 터진 상처를 싸매가며 살아가는 전사자들의 부모 가슴에 다시 피눈물 나게 하는 정치인들, 아직도 천안함 피격 사건의 희생자를 헐뜯는 사람들, 6·25 전쟁 전사자 자녀의 아픔을 외면하는 정율성 공원 조성 움직임.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젊은 청년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유족의 상처를 덧나게 하는 고약한 행태다.

보훈이 국격이라는데 이처럼 비뚤어진 언행이 과연 대한민국의 국격에 맞는지 되돌아보는 서해수호의 날이 됐으면 한다. 안보와 보훈은 동전의 양면이다. 안보가 소중하듯 국가를 지키려다 산화한 영웅의 명예를 지켜주는 것이 안보의 초석이요, 진정한 보훈 아닐까. 북한의 도발로 아들을 잃고 가슴 아프게 살아가는 한 엄마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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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복 국가보훈부 정책자문위원(연평도 포격전 고 서정우 하사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