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日드라마에 한국어 대사, 오리콘 차트엔 한국어 앨범…한류의 진화

중앙일보

입력

일본 지상파 드라마 '아이 러브 유'엔 한글이 곳곳에 등장한다. 사진 TBS

일본 지상파 드라마 '아이 러브 유'엔 한글이 곳곳에 등장한다. 사진 TBS

"좋아해요." "이 눈, 빠져들 것 같아."
지난 1월 말부터 일본 지상파 TBS에서 방영 중인 인기 드라마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에 한국어가 자막 없이 흘러나온다. 드라마는 한국인 유학생 태오(채종협)와 일본인 직장 상사 모토미야 유리(니카이도 후미)의 로맨스물이다. 눈으로 사람들의 속마음을 읽는 유리는 한국어로 생각하는 태오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궁금해 하다가 점점 태오의 매력에 빠져든다.
제작진은 시청자들이 한국어를 모르는 유리의 답답한 심정에 감정 이입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한국어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냈다. “귀여워”,“사랑해” 등 태오의 속마음을 유리가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둘의 로맨스에도 불이 붙는다.
문화 차이에서 비롯된 섬세한 연애 감정을 그려내기 위해 차현지 프로듀서가 제작에 참여했다.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래요?” “(꽃을)오다 주었다” 등 한국식 구애 대사가 탄생한 배경이다. 드라마에는 비빔밥·순두부·잡채가 등장하고, 한국인도 발음하기 힘든 ‘간장공장공장장’을 일본인이 따라하는 장면도 나온다.

‘횹사마’의 등장

극중 눈을 맞추면 상대방의 속마음이 들리는 유리는 한국어로 생각하는 태오의 마음을 궁금해 한다. 사진 TBS '아이 러브 유'

극중 눈을 맞추면 상대방의 속마음이 들리는 유리는 한국어로 생각하는 태오의 마음을 궁금해 한다. 사진 TBS '아이 러브 유'

이같은 설정 때문에 일본 여성 시청자들은 적극적이고 직설적인 애정 표현을 하는 한국 남자와의 판타지 같은 연애를 꿈꾼다고 말한다. 한일커플 유튜버 아이챤네루는 “일본 여성들은 한국 드라마 속 남자처럼 잘 챙겨주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런 색다른 매력이 일본 여성들의 마음을 훔쳤다”고 말했다.
드라마 인기에 힙입어 극중 주인공이 먹은 한국 음식을 판매하는 ‘아이 러브 유’ 카페가 도쿄 시부야에 생겼고, 주인공들이 사용하는 라인 이모티콘이 출시됐다. 20일엔 현지에서 팬미팅 행사도 열린다.

주인공이 사용하는 라인 이모티콘. 한국어와 일본어가 함께 표기되어 있다. 사진 TBS

주인공이 사용하는 라인 이모티콘. 한국어와 일본어가 함께 표기되어 있다. 사진 TBS

배우 채종협도 일본에서 스타가 됐다. ‘횹사마’란 별명도 얻었다. 현지에서 방송 러브콜이 쏟아지고, 극중 태오가 사는 집 부근은 관광 명소가 됐다. 최근 서울 북촌에서 촬영할 땐, 일본 팬들이 몰려 촬영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사진 MBC '라디오스타'

사진 MBC '라디오스타'

국내에서도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높다. 넷플릭스 국내 톱10 주간차트에서 4위까지 올랐다. 웨이브에선 지난달 15일 공개와 동시에 해외시리즈 시청자수 1위에 등극했다.

'아이 러브 유'는 20일 종영 기념 팬미팅 행사를 연다. 사진 TBS

'아이 러브 유'는 20일 종영 기념 팬미팅 행사를 연다. 사진 TBS

‘유통의 투명화’가 가져온 한류

한국어 대사와 한국 문화가 스며든 일본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것에 대해 동덕여대 방송연예과 이동규 교수는 “세계 문화 유통의 투명화로 문화 소비 방식이 ‘가공’이 아닌 ‘직수입’으로 바뀐 결과”라고 봤다.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콘텐트 유통이 직접적으로 이뤄지면서, 다른 나라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트렌드로 나타나게 됐다”는 것이다.

일본 온천 사우나에서 양머리를 한 주인공 모습. 사진 TBS

일본 온천 사우나에서 양머리를 한 주인공 모습. 사진 TBS

국내 방영과 시간 차를 두고 일본어로 번역해 현지에서 인기를 끌었던 ‘겨울연가’(2003년 일본 방영) 때와는 다른 양상의 한류가 시작됐다는 의미다. K콘텐트의 인기 덕분에 일본 내에서 한국산 식품, 화장품 등이 불티나게 팔리는 등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이같은 현상에 한 몫 하고 있다.

한국어 콘텐트와 문화를 그대로 소비하는 건 예능과 음악 분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일본 넷플릭스는 ‘K-드라마 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라는 리얼리티 예능을 방영했다. 한국에 온 네 명의 일본 여배우들이 오디션을 거쳐, 한국 남자 배우들과 연애 시리즈에서 연기하는 과정을 담았다.

사진 넷플릭스

사진 넷플릭스

세븐틴은 미니 11집 ‘세븐틴스 헤븐’으로 일본 오리콘 주간 앨범 차트(12일자) 정상에 올랐다. 르세라핌 또한 미니 3집 ‘이지’로 같은 차트(4일자)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일본어 앨범이 아닌, 한국어 앨범으로 거둔 성과다. 한국어 앨범으로 오리콘 정상을 차지하는 건 방탄소년단(BTS) 등 최정상 보이그룹의 몫이었는데, 그 수혜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현지 음악상도 국내 가수들이 휩쓸고 있다. 뉴진스는 지난 연말 TBS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한국어곡 ‘디토’·‘뉴진스’·‘ETA’ 무대를 꾸미고 우수작품상과 특별상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뉴진스는 또 지난 13일 일본레코드협회가 발표한 ‘제38회 일본 골드디스크 대상’에서 라이즈, 르세라핌과 함께 아시아 부문 ‘베스트3 뉴 아티스트’에 선정됐다. SM엔터테인먼트는 “라이즈가 현지 정식 데뷔 전인데도 트로피를 받으며 K팝 라이징 스타로 주목받았다”고 전했다. 오는 8월 열리는 일본 대표 음악축제 ‘서머소닉 2024’에는 악뮤, 베이비몬스터가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패션 매거진 '엘르 재팬' 5월호 표지를 장식한 뉴진스 혜인. 사진 엘르 재팬

패션 매거진 '엘르 재팬' 5월호 표지를 장식한 뉴진스 혜인. 사진 엘르 재팬

이에 대해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한류의 진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1999년 가수 보아로 일본 내 한류가 시작된 이래 현지 언어로 일본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필수였지만, 25년이 흐른 지금은 K콘텐트의 위상 등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면서 "일본 내에 깊숙히 파고드는 한국 콘텐트가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