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시인의 ‘결국 나의 천적은 나였던 거다’라는 시 구절을 기억하면서 늘 맞는 말씀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 시 구절이 너무 당연한 말씀이 된 지 오래다. 요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또 하나의 당연한 말은 ‘결국 나의 친구는 나였던 거다’ 아닐까 싶다. 어디서나 ‘진정한 우정 같은 거 없다’ 같은 제목들이 넘쳐난다. 부담스러운 진심을 남에게 기대하지 말자는 영리해진 현대인의 마음 자세일지 모른다.
점점 소중해지는 혼자의 시간
선물인지도 모르고 보낸 날들
오늘도 나의 귀한 하루를 썼다
언젠가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에서 지인 몇이 점심을 먹고 있는데, 유명 시인 J 선생님이 혼자 들어와 맞은편 자리에 앉으셨다. 혼자 오셨나 물으니 그렇다 하셨다. 맛집이라 소문나서 일부러 와봤다 하신다. 속으로 의아했지만, 나이 들면서 그 기분을 이해한다. 나도 요즘 부쩍 혼자 다니는 걸 즐긴다. 할 일을 마치고 식당 창가에 앉아 가장 친한 친구 ‘나’ 자신과 함께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식사한다. 맥주 한 잔이 정취를 더한다. 이럴 때 산다는 건 선물이다. 타인에 대한 애착이 점점 없어지는 건 어쩌면 자기 자신에 대한 애착 버리기의 연습일지 모른다.
애착뿐 아니라 낡은 생각들도 버려야 한다. 서른 살 조카가 사랑하는데 동성이든 이성이든 상관없는 양성애자라고 떳떳이 말하는 걸 보면서 한 방 두들겨 맞은 기분이던 날도 오래전 일이다. 현실이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연애 감정을 느끼지 않는 또 하나의 성, ‘에이섹슈얼(asexual)’이란 낯선 단어가 떠오른다. 우리말로 무성애자다. 그에 비하면 양성애자는 따뜻하게 들린다. 문득 ‘너는 뭔데?’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점점 한 친구와 만나기보다는 여럿이 모이는 게 즐겁다. 그것도 아주 가끔이라야 한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그가 지닌 인품과 성숙함과 유머를 함께한다는 것이다. 원래 그랬던 건지, 세월이 지날수록 후퇴하는 건지, 점점 낯설어지는 오래된 친구와의 시간이 아까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 가장 친한 친구 ‘나’랑 노는 게 낫다. 시간 깍쟁이가 되어가는가 보다. 오늘도 내 귀한 목숨의 하루분을 다 써버렸다. 젊을 때는 못 느끼던 죄책감이 살짝 스치고 지나간다. 밑도 끝도 없이 긴 넷플릭스 중국 드라마를 이제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끝이 나 버리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럴 것이다. 엉뚱하게도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의 구호, ‘하루를 이틀만큼 일하자’는 문구가 생각난다. 나는 그 문구를 ‘하루를 이틀처럼 놀자’로 바꾸고 싶다. 젊을 땐 늘 누군가 그리웠다. 지금은 나 자신이 그립다. 귀한 줄도 몰랐으므로 지나간 시간은 아쉽지도 않다.
늙음은 때로 참 좋다. 마일리지를 모으고 모아 내 나이 환갑에 내가 내게 주는 생일 선물로 뉴욕 가는 일등석을 타본 적이 있다. 일등석은 비즈니스석하고도 달라 더 독립적이고 좀 외롭다. 자고 있으면 방해될까, 식사 시간이 와도 깨우지 않는다.
오래전 마카오 여행길에 비싼 새 호텔과 비싸지 않은 오래된 호텔의 장단점을 물으니 비싼 호텔은 명품을 파는 면세점과 연결되어 있고, 덜 비싼 호텔은 옛 골목들을 둘러보기 좋다는 답이 돌아왔다. 인생도 그렇다. 부잣집에 시집가서 시집살이에 주눅이 들어 많지 않은 나이에 치매에 걸린 분을 본 적이 있다. 사별한 그분은 사실 돈밖에 가진 게 없을 정도인데, 본인은 그걸 모른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한다. 인생이라는 게 그렇게 터무니없다.
우리의 그 터무니없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비록 타인의 경험이라도 늘 무언가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일까? ‘그대여 그대에게서 나를 본다.’ 그게 인생이니까. 개인이 아닌 사회도 국가도 세계도 우주도 다 그럴 것이다. 우리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 지금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삶을 이어간다. 비록 지구의 수명이 다해 결국은 끝날지라도.
나는 가끔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던 초등학교 시절의 교실 풍경으로 되돌아간다. 오래된 내 인생의 호흡법이다. 지구의 신비로운 자연을 담은 다큐멘터리에서 세상 곳곳에 사는 희귀한 동식물들을 볼 때마다 내 크고 작은 걱정거리들은 아무것도 아닌 듯하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의 그 시 구절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구십 살 정신과 의사의 절절한 말씀이 오늘도 내 멍때림을 깨운다.
인생은 긴 지루함과 기다림, 초조함과 외로움, 순간의 기쁨과 슬픔, 내게만 주어진 것처럼 느껴진 고통, 선물인지도 모르고 흘려보낸 많은 무사한 날들, 그리고 그 끝은, 아니 완성은 언젠가 결코 미룰 수 없이 다가올 원고 마감이다.
황주리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