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겨울의 행복한 북카페

끊이지 않는 분서갱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김겨울 작가·북 유튜버

김겨울 작가·북 유튜버

작년 8월, ‘도서관은 살아 있다’라는 글에서 지적했던 분서갱유 사태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당시 한 민간단체가 충남 지역 도서관에 무려 153종의 책을 폐기하라는 압박을 가했던 일이 벌어졌는데, 그즈음 다른 민간단체는 경기도교육청에 학교 도서관의 도서를 폐기하라는 공문을 보내 압박을 가했다. 성평등 교육 연구모임 아웃박스에 따르면, 이러한 공문을 받은 경기도교육청은 각 학교에 해당 책을 폐기하고 올해 3월까지 그 결과를 정리하여 보고하도록 조치했다.

[일러스트=김지윤]

[일러스트=김지윤]

여기서 문제 삼고 있는 책들에는 『청소년을 위한 양성평등 이야기』, 『생리를 시작한 너에게』, 『소년들을 위한 내 몸 안내서』등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동성애를 조장’하고 ‘성관계 행위 표현’을 접하게 하기 때문이라는데, 이런 공문을 볼 때마다 그 나이브함에 한참 웃게 된다. 그걸 막으면 정말 학생들이 성관계를 ‘건전하게’ 접할 거라고 기대하는 건가? 그런 기대를 하고 있다면 미안하지만, 나만 해도 중학교 때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충분히 많은 ‘성관계 묘사’와 ‘신음소리’를 접했다. 그게 불만이라면 어디 한번 도서관에서 하루키 책을 다 빼라고 해보시든지. 차라리 책을 통해 제대로 접하는 게 낫지, 그걸 막아봐야 청소년들이 접할 것은 책에서보다 훨씬 지저분하고 왜곡된 성관계 동영상들일 확률이 높다.

공문에는 ‘적나라한 성기 노출’이라든지 ‘성관계 시 흥분 상태 자극적 표현 사용’과 같은 이유를 주렁주렁 달고 있지만, 그런 게 포함되지 않은 책도 리스트에 있는 걸 보면 차라리 청소년들이 ‘올바른 성의식’을 갖는 걸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아들의 자위 현장을 목격하고 자위를 금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부모님 같달까. 그런 일이 소용도 없을뿐더러 되레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점까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김겨울 작가·북유튜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