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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천후 출항, 불량 적재…반복된 어선 사고, 무리한 조업 화 불렀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잇따른 어선 전복·침몰 사고와 관련, 해경이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 가운데 기상 악화 속에 무리한 조업을 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나오고 있다.

지난 17일 오전 경북 포항해양경찰서 구조대원들이 남구 구룡포 동방 120km 해상에서 전복된 홍게잡이 연안통발어선(9.77t) 선원을 구조하기 위해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포항해경

지난 17일 오전 경북 포항해양경찰서 구조대원들이 남구 구룡포 동방 120km 해상에서 전복된 홍게잡이 연안통발어선(9.77t) 선원을 구조하기 위해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포항해경

“홍게 잡으러”…작은 배가 먼바다까지

18일 포항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전날(17일) 오전 2시44분쯤 경북 포항 구룡포읍에서 120㎞ 떨어진 해상에서 연안통발어선 A호(9.77t·자망어업 포함)가 전복됐다. 이 사고로 물에 빠진 승선원 6명 중 5명은 구조됐지만, 실종된 1명(인도네시아 국적)은 찾지 못하고 있다.

당시 바다에는 2.5~3m 높이 파도가 치는 등 기상이 좋지 않았다. 풍랑 예비특보도 출항 하루 전인 16일 오후 4시에 내려졌다. 이에 포항해경은 “큰 배는 몰라도 10t 정도 작은 배한테는 높은 파도”라고 설명했다. A호 선장도 “파도로 어선에 바닷물이 차면서 갑자기 전복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A호는 10t 미만 소형 ‘연안’ 어선이지만, 홍게(붉은 대게)를 잡으려고 ‘원거리 조업’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포항해경 관계자는 “사고 지점은 40~50t 되는 배가 나갈 수 있는 먼바다”라며 “홍게철인데 연안에서 잘 안 잡히니, 날씨가 좋으면 거기까지 나가는 (A호와) 비슷한 톤(t)급 배가 조금씩 있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오전 경북 포항 구룡포 동쪽 120km 해상에서 9.77t급 어선이 전복, 구조대가 사고 어선에 접근하고 있다. 연합뉴스=포항해경

지난 17일 오전 경북 포항 구룡포 동쪽 120km 해상에서 9.77t급 어선이 전복, 구조대가 사고 어선에 접근하고 있다. 연합뉴스=포항해경

몇 년 전 구룡포 앞바다에서는 이와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2022 해양안전심판사례집’을 보면, 2019년 4월 오후 포항 구룡포읍 동쪽 45㎞ 해상에서 홍게잡이 연안통발어선(9.77t·자망어업 포함) B호가 전복됐다. 출항하고 2시간 뒤 풍랑 예비특보도가 발효됐지만, B호 선장이 이를 듣지 못했다. 하지만 선장이 2.5m 높이 파도가 치는 등 기상이 악화하고 지속해서 바닷물이 어선에 유입되는 상황에서 항해를 계속하다 이런 사고가 난 것으로 조사됐다.

악천후 속 먼바다서 조업하다…

궂은 날씨 속 무리한 조업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9일 오전 경남 통영 욕지도 남쪽 68㎞ 해상에서 뒤집어진 채 발견된 근해연승어선 C호(20t)는 사고 당시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통영해경은 사고 추정 시각을 C호의 항적 기록이 끊긴 전날(8일) 오후 8시55분 이후로 보고 있는데, 약 14시간 전인 이날 오전 7시부터 욕지도 인근 해상에는 풍랑주의보가 발효됐다. 비슷한 시각 최고 4.8m 높이 파도와 초속 14m 강풍이 불었던 것으로 관측됐다.

지난 9일 오전 경남 통영 욕지도 남쪽 68km 해상에서 전복된 어선에 통영해경 구조대원들이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통영해경

지난 9일 오전 경남 통영 욕지도 남쪽 68km 해상에서 전복된 어선에 통영해경 구조대원들이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통영해경

이 사고로 배에 탔던 9명 중 한국인 선장 포함 4명이 숨졌다. 해경은 실종된 선원 5명을 찾으려고 열흘째 수색 중이다. 이들 사망·실종자는 지난 7일 제주 한림항에서 다른 배와 선단(船團)을 꾸려 출항, 옥돔을 잡으려고 욕지도까지 간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지난 1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도 서쪽 20㎞ 바다에서 전복된 갈치잡이 근해연승어선(33t) D호도 사고 당시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승선원 10명 중 7명은 구조됐지만,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됐다.

풍랑주의보가 발효되면 15t 미만 어선은 출항할 수 없지만, 이들 사고 선박처럼 15t 이상이면 2척 이상이 선단을 꾸리면 조업할 수 있다. 태풍주의보·태풍경보·풍랑경보 때 모든 어선은 출항이 금지되지만, 이런 기상특보가 발효되기 전 예비특보 때에는 출항 금지나 대피 명령을 권고만 할 수 있다.

제주해경 관계자는 “어민 처지에선 생계가 걸린 문제라 기상이 나빠도 조업을 나갈 때가 있다”며 “예비특보 단계에서도 선박 출항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해양수산부 등에 제도 개선 검토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어획물 그물째 쌓고 운항하다 침몰 

큰 어선이 나쁘지 않은 날씨에도 사고가 났다. 지난 14일 오전 4시20분쯤 통영 욕지도 남쪽 8.5㎞ 발생한 쌍끌이대형저인망어선(139t) E호 침몰 사고로, 승선원 11명 중 3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다. 통영해경이 구조된 선원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E호는 조업한 정어리 40t을 어창(魚艙)이 아닌 선미 갑판에 그물도 풀지 않은 채 쌓아둔 것으로 드러났다.

E호 최대 적재량은 96t으로 과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통영해경 관계자는“어획물이 어창에 두면 선체에 복원력이 생기는데, 갑판 위에 두면 무게 중심이 높아져 1~2m 낮은 파도에도 휘청일 수 있다”고 했다. 사고 당시 해역의 파고는 1~1.5m 내외로 잔잔했다. 사고 직전 E호는 이처럼 불량 적재한 상태로, 수협 위판 시간(오전 5시)에 맞추려고 급히 무리하게 운항하다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해경 설명이다.

지난 14일 오전 경남 통영시 욕지도 남쪽 8.5km 해상에서 쌍끌이대형저인망어선(139t)이 침몰, 해경이 실종자를 수색 중이다. 연합뉴스=통영해경

지난 14일 오전 경남 통영시 욕지도 남쪽 8.5km 해상에서 쌍끌이대형저인망어선(139t)이 침몰, 해경이 실종자를 수색 중이다. 연합뉴스=통영해경

이와 함께 해경은 E호가 조업금지구역에서 불법 조업을 했는지도 조사 중이다. E호가 침몰한 사고 장소가 쌍끌이대형저인망어선 조업금지구역이어서다. 게다가 E호는 사고 전날(13일) 오후 5시10분쯤 통영항에서 출항한 지 2시간여가 지난 오후 7시30분쯤부터 GPS 항적 기록도 사라졌다. 해경은 불법 조업을 위해 위치발신장치(V-PASS)를 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한편 이와 관련해 최근 삼치가 풍어(豐漁)인데도 삼치를 주로 잡는 쌍끌이 어선이 총허용어획량(TAC) 규제 때문에 삼치를 더 잡지 못하자 정어리 조업에 나선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삼치류 어획량은 지난해 4만5692t으로 전년(3만5655t) 대비 28.8% 늘었다. 정성근 제주대 해양생명과학과 교수는 “기후변화로 오래전부터 삼치 자원 증가를 말했지만, 실정에 맞지 않은 정부 TAC 규제 때문에 무리한 조업에 내몰리는 형편”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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