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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납치 당했어"…부모도 깜빡 속은 '딸 목소리' 정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엄마, 제가 납치를 당했어요. 

18일 서귀포경찰서에 따르면 제주도 서귀포에서 ‘한 달 살기’ 중이던 A씨는 지난 15일 밤 9시 10분경 미국 시카고에 가 있는 딸 번호로 온 카카오톡 보이스톡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 딸의 목소리는 겁에 질려 흐느끼고 있었고, 이를 들은 A씨의 마음은 덜컥 내려앉았다. 곧이어 한 남성이 통화를 가로채더니 “현금 1000만원을 보내지 않으면 딸에게 해코지하겠다”고 협박했다.

공교롭게도 A씨의 딸은 협박 전화가 오기 약 19시간 전인 같은 날 오전 2시 30분(한국시간)경 학교 행사 차 시카고에서 대만행 비행기에 타기로 돼 있던 상황이었다. 딸이 실제 납치를 당했는지, 아니면 아직 항공편에 탑승 중이라 연락이 닿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협박범은 A씨가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도록 A씨 남편 B씨도 휴대전화를 끄고 옆에 있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다행히 B씨는 A씨 통화를 함께 들으면서 먼저 경찰에 신고한 상황이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딸이 납치된 상황에서 신고자인 아버지 휴대전화가 꺼져 있자 최근 잇따르는 수법의 보이스피싱 범죄임을 직감하고 기지국 위치추적을 했다고 한다. 경찰 사이렌 소리를 들은 협박범은 이들 부부가 경찰에 신고했다는 것을 알아채고 질질 끌던 전화를 끊었다. 이후 부부는 혼비백산 상태에서 딸에게 연락했지만, 닿지 않았다.

경찰은 부부의 딸이 항공편에 탑승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시카고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 계속 연락을 시도했고, 마침내 신고자의 딸이 안전하게 항공기에 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B씨는 비행기에서 내린 딸과 연락해 신변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

부부가 들은 딸의 목소리는 인공지능(AI)으로 조작된 어린 여성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딸과 멀리 떨어져 지낸 부부는 속수무책으로 속을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이번 사건처럼 가족이나 지인을 사칭해 위급한 상황에 놓인 것처럼 속이는 보이스피싱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현장에 출동했던 안덕파출소 양진모 경위는 “최근 AI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연락이 쉽게 닿지 않는 해외 거주 가족을 사칭한 피싱 범죄가 증가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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