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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누구보다 빠르게 봄맞이하는 푸른 꽃의 이름은

중앙일보

입력

3월이 되니 햇살도 조금 더 따듯해지고, 해도 길어졌습니다. 아직 꽃샘추위가 간간이 찾아오지만 그래도 봄이 온 것은 맞는 것 같아요. 올해는 2월부터도 따듯한 날이 많아서인지 개구리도 좀 더 일찍 깨어나고 식물들도 움을 일찍 틔워낸 것들을 볼 수 있었는데요. 그래도 대부분의 생물들은 완연한 봄이 되어야 제시간에 맞춰서 싹을 내거나 피어납니다.

봄의 전령사라고 하면 흔히 개나리나 진달래를 꼽는데요. 그 꽃들은 조금 더 나중에 피고, 보다 더 빨리 꽃을 피우는 것들이 있어요. 나무 중에서는 매화나 동백, 풍년화, 납매, 영춘화 등이 있고요. 풀 중에서 보면 냉이나 큰개불알풀의 경우 2월 말에도 꽃을 피워냅니다. 이번 달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른 봄에 피는 꽃 중에서도 신비함을 품고 있는 푸른빛을 띤 큰개불알풀이에요.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48 큰개불알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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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개불알풀이라니 이름이 조금 특이하지요. 개의 생식기관과 관련된 이름이라 조금 민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봄까치꽃이라고도 불러요. 봄이 왔다는 반가운 소식을 알려주는 꽃이라고 해서 봄과 까치를 합해서 만든 이름인데, 식물의 학명 중 53%가 생김새를 보고 지어진 것을 생각하면 봄까치꽃이란 이름은 조금 어색합니다. 어차피 관념적으로 이름을 붙일 거라면 ‘봄맞이’가 좋을 텐데 이미 그 이름을 가진 식물이 있으니 ‘봄마중꽃’ 정도는 어떨지 혼자 생각해 봅니다.

원래 큰개불알풀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열매의 모양이 개의 불알을 닮았기 때문이에요. 직관적인 이름이라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죠. 일본에서도 오오이누노후구리(オオイヌノフグリ·大犬の陰嚢)라고 똑같은 뜻의 이름으로 부릅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정서로 공교롭게 같은 이름을 붙였을 수도 있지만,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똑같은 것은 아무래도 어느 한쪽이 이름을 그대로 번역해서 사용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영어로는 새의 눈(bird's eye)이라고 하는데요. 아마도 숲속에서 작지만 밝은 푸른빛으로 피어 있어서, 혹은 작은 꽃 안에서 길게 뻗은 수술 2개가 마치 눈처럼 보여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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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파란색을 띤 꽃을 만나기는 쉽지 않지요. 달개비의 꽃이나 도라지의 꽃이 푸른빛을 띱니다만, 보통 꽃들 중에선 푸른빛이 흔하지 않아서 큰개불알풀의 꽃은 색깔부터가 신비하고 눈에 잘 띕니다. 꽃은 작지만 줄무늬도 있고 암술과 수술의 모양도 특이해요. 꽃잎은 4장처럼 보이지만 하나이기도 하죠.

좀 더 주목할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 일찍 꽃을 피운다는 거죠. 큰개불알풀만이 아니라 체격이 작은 풀꽃들은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경우가 많아요. 체격이 큰 다른 식물, 특히 나무가 잎을 내기 시작하면 그 아래까지 햇빛이 도달하지 않고 그늘이 져서 식물이 제대로 생장하기 어렵죠. 더군다나 꽃까지 피면 곤충들이 대부분 나무에 몰려갑니다. 체격이 큰 나무들은 꽃도 많이 피우기 때문이지요. 나무가 잎이나 꽃을 피우기 전에 먼저 꽃을 피워내야 꽃가루받이를 도와줄 곤충들을 선점할 수가 있습니다. 부지런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아직 겨울이 가시지 않은 이른 봄 풀꽃들은 대부분 큰개불알풀처럼 부지런합니다. 이런 풀꽃들은 체격이 작아서 많은 양분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 얼른 서둘러 적은 에너지로도 꽃을 피울 수가 있죠. ‘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걸어라’라든가 ‘아무리 바빠도 실을 바늘허리에 묶어 못 쓴다’라거나 하며 느긋하고 여유롭게 행동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경우가 많지만, 때론 좀 서두르고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가능한 일들도 있습니다. 아직은 겨울의 찬 기운이 남아 있는 시기에 남보다 부지런히 꽃을 피워낸 큰개불알풀을 보며 스스로 기운 내라고 다독이는 시간을 가져 보면 좋겠습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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