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하현옥의 시선

카르텔과 전쟁의 사회적 비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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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논설위원

하현옥 논설위원

 집권 3년 차에 접어든 윤석열 정부는 ‘카르텔과의 전쟁’ 중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권 카르텔’과의 전면전을 펼치고 있다. ‘이권 카르텔’은 이 정부와 함께 등장한 신조어로, 권력과 이익을 독점하고 이를 나눠 먹는 세력을 뜻한다. 전선도 넓다. 노조와 은행·통신사, 토건 세력, 사교육 업체, 과학기술계, 의사 등이 이권 카르텔에 이미 이름을 올렸다. ‘카르텔 인플레이션’이다.

 카르텔은 동일 업종의 기업이 경쟁의 제한이나 완화를 목적으로 가격·생산량·판로 등에 협정을 맺고 형성한 독점 형태 또는 담합 등 부당한 공동 행위를 의미하는 경제 용어다. 공정 경쟁을 훼손하고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만큼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된다. 배타적 이익 공동체나 패거리를 일컫기도 하지만 이 정부에는 ‘정부에 반하는 세력이나 집단’을 통칭하는 의미로까지 확장된 듯하다. 이권 카르텔에 이전 정부가 주장했던 마피아나 적폐의 그림자가 어른댄다.

‘반(反) 카르텔’ 정부라는 정체성도 확인했다. 지난해 7월 3일 차관 임명식 오찬에서 윤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반 카르텔 정부다. 이권 카르텔과  가차 없이 싸워달라. 민주 사회를 외부에서 무너뜨리는 것은 전체주의와 사회주의고 내부에서 무너뜨리는 건 부패한 카르텔”이라고 말했다.

 노선과 방향을 향한 지침도 이어졌다. 이튿날(7월 4일)에는 “공정하고 정당한 보상 체계에 의해서 얻어지는 이익과 권리가 아니라 자기들만의 카르텔을 구축해 이권을 나눠 먹는 구조는 철저히 타파해야 한다. 이권 카르텔은 외견상 그럴듯하게 보일지 몰라도 손쉽고 편리하게 그리고 지속해서 국민을 약탈하는 것으로서 모든 공직자는 이와 맞서기를 두려워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사회를 갉아먹는 카르텔 타파는 필요하다. 곪은 곳을 도려내고 새 살이 돋게 해야 한다. 문제는 전의에 불타는 정부의 카르텔 깨기가 무리수일 때다. 대표적인 예가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다. ‘R&D 카르텔’ 혁파를 내세우며 정부는 올해 과학기술 R&D 예산을 14.8% 줄였다. 당초 삭감 폭(16.6%)보다 소폭 줄었지만 충격은 크다. 아시아 외환위기 때도 하지 않았던 예산 삭감에 대학과 연구 기관 등에서 추진하던 연구는 줄줄이 중단됐다. 이공계 인재 엑소더스(탈출)도 본격화했다. 해외로 짐을 싸거나 의대 진학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R&D 예산 삭감에 이공계 대탈출
킬러 문항 배제로 사교육비 늘어
전공의 압박, 필수의료 붕괴 가속

 제대로 실체도 밝히지 못한 ‘R&D 카르텔’ 발 예산 삭감의 후폭풍이 거세자 정부는 뒤늦게 사태 수습 중이다. 혁신선도형R&D 기구를 출범시키고, 내년도 R&D 예산 대폭 증액 입장을 밝혔다. 심지어 증액 규모의 상한선도 두지 않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민생토론회에서 국가 R&D에 참여하는 이공계 대학원생에 연구생활장학금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지원금은 매달 석사는 최소 80만원, 박사는 최소 110만원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지경이 되자 급해진 것이다.

 사교육 카르텔은 현직 교사와 사교육 업체의 거래 의혹 등이 감사원 감사 결과 밝혀지며 일부 그 실체가 드러났다. 그렇지만 사교육 카르텔과의 전쟁은 한편으로는 각종 부작용과 풍선 효과를 낳았다. 교육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27조1000억원)은 2년 전보다 4.5% 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사교육 학생 참여 비율도 78.5%로 역대 최대였다. 킬러 문항이 사라지며 의대 진학 등을 노린 ‘N수생’이 늘며 이공계를 비롯한 대학 교육도 흔들리고 있다. 사교육 카르텔을 깨기 위해 전격 시행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킬러 문항’ 배제 조치가 입시의 혼란을 키우며 오히려 사교육 시장의 팽창을 가져왔다는 지적이다.

 지역 의료와 필수 의료 강화를 위해 추진한 의대 증원은 의사 카르텔과의 전쟁으로 비화했다. 전공의 줄사직으로 대형종합병원과 대학병원의 진료 공백이 심화하자 정부는 의료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연일 강공 모드다. 전공의의 사직 수리와 개원 및 재취업을 막고 군 미필 전공의 출국금지 조치를 취하며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의대를 졸업 후 전공의 과정에 들어가지 않고 개원 등을 선택한 일반의는 놔두고 전공의만 때리는 현 상황이 필수 의료의 붕괴를 가속할 수 있다는 우려는 들리지 않는 듯하다.

 실체 없는 혹은 잘못된 방향의 카르텔 깨부수기는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 문제를 야기한 근본 원인과 제대로 된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은 채 그저 때려잡기에만 집중한다면 보여주기일 뿐이다. 카르텔과의 전쟁이 헛발질로 그치면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