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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이슬람 공간형식의 원형, 우마이야 모스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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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622년 헤지라 이후 이슬람 세력은 630년에 아라비아 반도를, 634년에는 중근동의 중심인 시리아 지역을 점령했다. 우마이야 이슬람 왕조는 다마스커스를 제국의 수도로 삼았다.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이곳은 철기시대부터 신앙의 중심지였다. 아람인들은 비의 신 하다드 신전을, 로마인들은 그 위에 주피터 신전을 세웠다. 비잔틴 제국은 이를 주교좌 성당으로 개조했다. 이슬람은 대성당 일부를 기도소로 이용하다 철거하고 715년 우마이야 대(大) 모스크를 건립했다.

공간과 공감

공간과 공감

신생 종교인 이슬람은 고유한 전례 문화와 건축 형식이 없었다. 가장 중요한 1일 5회 기도도 정해진 장소나 형식이 없었다. 그러나 금요일 정오에는 도시의 모든 교도가 모여 공동으로 기도드릴 시설이 필요했다. 자미 마스지드(금요 모스크)는 이슬람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으로도 필수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마이야 모스크는 동서 156m, 남북 97m의 규모로 ‘산’이라 부르는 북쪽 안뜰과 ‘하람’이라는 남쪽 기도소가 거의 반반으로 나누어졌다. 안뜰을 둘러싼 2층 아케이드는 비잔틴 기독교 건축의 요소다. 현재 대부분 파괴됐지만, 건물 내외벽을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했었다. 이 역시 비잔틴의 고유한 기법이지만, 우상이 될 인물이나 동물을 배제하고 강과 숲으로 둘러싸인 파라다이스를 묘사했다.

기도소 내부 또한 기독교의 바실리카 형식을 응용했다. 바실리카란 내부에 두 줄의 열주를 세워 공간을 긴 3개의 열로 나누고 장축의 끝에 제단을 설치한 공간 형식이다. 우마이야 모스크는 바실리카 공간을 90도 돌려 긴 면을 정면으로 삼고, 단축 끝에 메카 방향을 가리키는 미흐랍을 설치했다. 모스크 안에 들어서면 2줄의 기둥 열이 서로 겹쳐져 중심이 흩어진다. 개인의 기도공간을 모았을 뿐, 성상이나 사제를 인정하지 않는, 중심이 없는 평등한 이슬람적 공간을 추구한 결과다. 이 모스크의 분산적 공간과 탈우상적 장식은 이슬람적 건축의 원형이 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