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로기완'(감독 김희진)은 탈북 청년의 생존기다. 북한에서 탈출한 뒤 중국 옌지(延吉, 연길)에 숨어 사는 기완(송중기)은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그 시신을 판 돈으로 벨기에로 떠난다.
방수포에 담긴 피 묻은 유로화를 엄마의 몸으로 여기는 기완은 한겨울 공중 화장실에서 노숙하며 돈을 아끼고, 낮에는 공원을 돌며 유리병을 모은다. 추위를 피해 찾아간 코인 세탁소에서 잠이 든 기완은 자신의 돈을 훔친 마리(최성은)와 경찰서에서 맞닥뜨리게 되고 둘은 서로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된다.
배우 송중기가 저예산 영화 '화란'에서 조직 폭력배 중간 보스를 맡은 데 이어 또 다시 탈북 청년으로 연기 변신을 해 화제가 됐다. 삶의 희망을 찾아 낯선 땅에서 표류하는 기완과,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채 시들어가던 마리가 서로에게 구원의 빛이 돼주는 스토리가 따뜻한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는 장편소설『로기완을 만났다』(창비·2011년)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단, 기완의 연인 마리와 조력자 선주(이상희)는 소설에는 없는 설정이다. 영화가 기완과 마리의 로맨스라면, 소설은 기완의 행적을 쫓는 방송작가 '나'(김 작가)의 이야기다.
소설가 조해진(48)은 16년 전 우연히 벨기에를 떠도는 탈북인에 대한 기사를 읽고, 벨기에로 떠나 탈북인을 취재하며 소설을 썼다. 그를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창비 사옥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기사가 소설로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2008년 폴란드의 한 대학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던 중 벨기에를 떠도는 탈북인들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열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벨기에를 찾아갔고, 기자를 통해 실제 벨기에에 체류 중인 탈북인들과 그들의 난민 지위 취득을 돕는 조력자들을 만나 수차례 인터뷰를 거치며 소설을 완성했다.
-'로기완'의 실제 모델도 만났나.
=그를 취재한 기자를 통해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 직접 만나진 못했다. 23살 청년이었지만 1m60㎝의 작은 체구였고, 경찰에 의해 벨기에의 한 고아원으로 보내진 것까지는 실제와 소설이 동일하다. 그의 어머니 이야기를 포함한 나머지는 상상이다.
-'김 작가'와 조해진은 얼마나 닮았나.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작가의 모습을 '김 작가'에 녹였다. 김은 불우한 이웃의 사연을 내보내며 실시간 ARS 후원을 받는 방송 프로그램의 작가다. 방송을 만들면서도 끊임없이 '연민 장사'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하고, 내 연민이 다른 사람을 오히려 불행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걱정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김 작가처럼 훌륭한 사람은 못 된다.
-김 작가는 로기완이 거친 고난을 자발적으로 체험한다. 일부러 공중 화장실에서 빵을 먹는 식이다. 비위가 상해 더 먹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대목도 있다.
=김 작가는 자신의 섣부른 연민이 타인을 불행하게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그래서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세우는 것이다. 이것이 손쉬운 연민은 아닌지, 그 끝에 불행이 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그 계기가 '윤주'인가.
=그렇다. 김은 얼굴이 기형인 여고생 윤주의 후원금을 늘리기 위해 방송 날짜를 미루게 되는데 이 선의의 결정으로 수술을 미룬 사이 윤주의 혹이 악성 종양으로 바뀐다. 김 작가는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벨기에로 떠난다. 그런 비겁한 면도 있다.
-김 작가는 남의 불우한 처지를 이용해 밥벌이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소설가로서 공감하나.
=실존 인물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을 쓸 때는 특히 그렇다. 기사에 나온 탈북 청년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브뤼셀에 가서 캐릭터의 뼈대와 배경을 만들 때 '내가 이 사람의 불행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했다. 그럴 때 내가 소설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로기완이 살아서 펄떡이는 인물처럼 읽히도록 글을 쓰는 것 뿐이다.
-로기완을 대상화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로기완의 고통에 기어이 다가가는 인물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
-스스로 사회파 작가라고 생각하나.
=소설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다. 시대와 역사를 외면할 수 없다.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사회의 문제를 짚어보려는 사람들이 찾는 장르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래서 나도 그렇게 쓴다.
-우리 사회엔 난민에 대한 차가운 시선도 있다.
=이 소설이 그런 시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정치적인 시선이 아닌 인간적인 시선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계기도 될 수 있길 바란다. 거기까지 가지 못해도, 타인에 대해 한 번 쯤 생각해보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