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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 원작소설가 조해진 "난민의 삶 생각하는 계기 되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로기완'(감독 김희진)은 탈북 청년의 생존기다. 북한에서 탈출한 뒤 중국 옌지(延吉, 연길)에 숨어 사는 기완(송중기)은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그 시신을 판 돈으로 벨기에로 떠난다.

방수포에 담긴 피 묻은 유로화를 엄마의 몸으로 여기는 기완은 한겨울 공중 화장실에서 노숙하며 돈을 아끼고, 낮에는 공원을 돌며 유리병을 모은다. 추위를 피해 찾아간 코인 세탁소에서 잠이 든 기완은 자신의 돈을 훔친 마리(최성은)와 경찰서에서 맞닥뜨리게 되고 둘은 서로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된다.

배우 송중기가 저예산 영화 '화란'에서 조직 폭력배 중간 보스를 맡은 데 이어 또 다시 탈북 청년으로 연기 변신을 해 화제가 됐다. 삶의 희망을 찾아 낯선 땅에서 표류하는 기완과,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채 시들어가던 마리가 서로에게 구원의 빛이 돼주는 스토리가 따뜻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 '로기완'에서 '로기완' 역을 맡은 배우 송중기. 벨기에에 밀입국한 탈북 청년 로기완은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한인 여성 마리(최성은)와 사랑에 빠진다. 사진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에서 '로기완' 역을 맡은 배우 송중기. 벨기에에 밀입국한 탈북 청년 로기완은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한인 여성 마리(최성은)와 사랑에 빠진다. 사진 넷플릭스

이 영화는 장편소설『로기완을 만났다』(창비·2011년)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단, 기완의 연인 마리와 조력자 선주(이상희)는 소설에는 없는 설정이다. 영화가 기완과 마리의 로맨스라면, 소설은 기완의 행적을 쫓는 방송작가 '나'(김 작가)의 이야기다.
소설가 조해진(48)은 16년 전 우연히 벨기에를 떠도는 탈북인에 대한 기사를 읽고, 벨기에로 떠나 탈북인을 취재하며 소설을 썼다. 그를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창비 사옥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영화 '로기완'의 한 장면. 마리(최성은)가 경찰서에 찾아가 기완의 면회를 요청하는 장면이다. 사진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의 한 장면. 마리(최성은)가 경찰서에 찾아가 기완의 면회를 요청하는 장면이다. 사진 넷플릭스

-기사가 소설로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2008년 폴란드의 한 대학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던 중 벨기에를 떠도는 탈북인들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열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벨기에를 찾아갔고, 기자를 통해 실제 벨기에에 체류 중인 탈북인들과 그들의 난민 지위 취득을 돕는 조력자들을 만나 수차례 인터뷰를 거치며 소설을 완성했다.

-'로기완'의 실제 모델도 만났나.
=그를 취재한 기자를 통해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 직접 만나진 못했다. 23살 청년이었지만 1m60㎝의 작은 체구였고, 경찰에 의해 벨기에의 한 고아원으로 보내진 것까지는 실제와 소설이 동일하다. 그의 어머니 이야기를 포함한 나머지는 상상이다.

-'김 작가'와 조해진은 얼마나 닮았나.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작가의 모습을 '김 작가'에 녹였다. 김은 불우한 이웃의 사연을 내보내며 실시간 ARS 후원을 받는 방송 프로그램의 작가다. 방송을 만들면서도 끊임없이 '연민 장사'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하고, 내 연민이 다른 사람을 오히려 불행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걱정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김 작가처럼 훌륭한 사람은 못 된다.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창비 사옥에서 소설가 조해진을 만났다. 조해진은 "『로기완을 만났다』는 공감과 증여에 관한 소설"이라고 했다. 권혁재 기자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창비 사옥에서 소설가 조해진을 만났다. 조해진은 "『로기완을 만났다』는 공감과 증여에 관한 소설"이라고 했다. 권혁재 기자

-김 작가는 로기완이 거친 고난을 자발적으로 체험한다. 일부러 공중 화장실에서 빵을 먹는 식이다. 비위가 상해 더 먹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대목도 있다.
=김 작가는 자신의 섣부른 연민이 타인을 불행하게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그래서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세우는 것이다. 이것이 손쉬운 연민은 아닌지, 그 끝에 불행이 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그 계기가 '윤주'인가.
=그렇다. 김은 얼굴이 기형인 여고생 윤주의 후원금을 늘리기 위해 방송 날짜를 미루게 되는데 이 선의의 결정으로 수술을 미룬 사이 윤주의 혹이 악성 종양으로 바뀐다. 김 작가는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벨기에로 떠난다. 그런 비겁한 면도 있다.

-김 작가는 남의 불우한 처지를 이용해 밥벌이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소설가로서 공감하나.
=실존 인물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을 쓸 때는 특히 그렇다. 기사에 나온 탈북 청년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브뤼셀에 가서 캐릭터의 뼈대와 배경을 만들 때 '내가 이 사람의 불행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했다. 그럴 때 내가 소설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로기완이 살아서 펄떡이는 인물처럼 읽히도록 글을 쓰는 것 뿐이다.

조해진 장편 『로기완을 만났다』 개정판 표지. 사진 창비

조해진 장편 『로기완을 만났다』 개정판 표지. 사진 창비

-로기완을 대상화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로기완의 고통에 기어이 다가가는 인물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

-스스로 사회파 작가라고 생각하나.
=소설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다. 시대와 역사를 외면할 수 없다.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사회의 문제를 짚어보려는 사람들이 찾는 장르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래서 나도 그렇게 쓴다.

-우리 사회엔 난민에 대한 차가운 시선도 있다.
=이 소설이 그런 시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정치적인 시선이 아닌 인간적인 시선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계기도 될 수 있길 바란다. 거기까지 가지 못해도, 타인에 대해 한 번 쯤 생각해보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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