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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우간다 트라우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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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1호 30면

배현정 경제선임기자

배현정 경제선임기자

“도대체 우간다의 금융산업이 어떻길래 우리보다 낫다는 건지 제가 직접 가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2015년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한국 금융의 경쟁력을 아프리카 우간다와 비교’하는 지적에 한탄하며 던진 말이다. 이는 한국 금융의 낙후성을 얘기할 때 상징적으로 회자하곤 한다. 그해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간다의 금융시장 성숙도가 140개 국가 가운데 81등인데, 우리나라는 87등이라는 부끄러운 성적표를 받으면서 불거졌다. 기업인(CEO)들 대상 설문을 바탕으로 한 이 평가에서, 삼성전자·현대차와 같은 글로벌 기업에 비해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인 국내 금융산업에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가 주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여론은 ‘금융업의 삼성전자’를 만들어야 한다며 혁신론이 들끓었다.

DLF→ELS, 반복은 이제 그만
금융 윤리·투자 인식 개선해야

그로부터 4년 뒤인 2019년 “한국의 금융산업이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자조 섞인 평가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파생결합펀드(DLF) 사태가 발생하면서다. 당시 김동원 전 고려대 초빙교수는 한 심포지엄에서 “대규모 원금 손실 사태를 일으킨 DLF 사태가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나라 금융이 우간다보다 못한 시절로 회귀했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2019년 8월 DLF의 총 판매 금액은 7950억원. 피해자만 3600명이 넘었다. DLF는 독일·영국·미국의 채권금리 등을 기초자산으로, 장단기 금리 차가 일정 수준(60%) 이상을 유지하면 수익을 내지만 금리 차가 급격히 줄면 손실을 보는 구조였다. 그런데 그해 전세계 채권 금리가 급락해 대규모 손실 사태를 불러왔다. 운영 과정에서 불법적인 돌려막기 등으로 피해는 더 커졌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손해액의 40~80%를 배상하도록 하는 분쟁조정 기준안을 내놨으나, 은행과 피해자들의 의견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2024년.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손실로 금융권이 다시 휘청거린다. 판매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18조8000억원. DLF 사태 때보다 20배 이상 규모가 크다. 당국이 부랴부랴 조정에 나섰지만 투자자와 금융권 모두 분통을 터트리는 모양새다. 분쟁조정 기준안에 따르면 불완전판매 여부에 따라 기본 배상 비율 20~40%를 적용하며, 사례별로 최대 45%포인트까지 배상 비율을 높이기로 했다. 업계는 주로 40% 수준에서 배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

이번 ELS 사태는 ‘시장리스크’에서 비롯됐다. 만기(3년) 안에 홍콩 H지수가 반 토막 나지 않는다면 수익을 얻는 구조인데, 미·중 분쟁으로 시장이 급변했다. H지수는 2021년 2월 1만2229포인트에서 지난 2월말 5678포인트로 급락했다. 투자자들은 “예금처럼 안전한 상품인 것처럼 설명했다”며 손실의 100%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금융권은 “투자의 자기 책임을 훼손하며 판매사에 책임을 과도하게 전가하고 있다”며 난색을 표한다. 일부 불완전판매가 확인됐지만, 금융사들이 강화된 금융소비자보호법 등에 따라 대부분 절차를 준수했음에도 판매 자체가 ‘죄’로 몰리는 상황에 우려를 나타낸다. 당국의 배상 압박은 ‘총선을 앞둔 포퓰리즘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적잖다.

홍콩 ELS의 경우 불법 운용이 문제됐던 DLF 사태와는 출발점이 다르다. 그럼에도 “규정에 따르는 것과 윤리를 지키는 것은 현저히 다른 일로, 금융업계 스스로 윤리와 내부통제를 통해 고객과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김동원 전 교수)는 지적은 그때나 지금이나 되새겨들을 부분이 있다. “투자 상품이지만, 손실 가능성을 몰랐다”는 미성숙한 투자 문화도 뼈아프다. 은행권에 ELS 판매를 허가한 당국이 은행의 고위험상품 판매 책임을 압박하는 것도 모순적이다. 뒤늦게 고치는 ‘울타리’일지라도, 이번에는 ‘금융 후진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제대로 된 자성과 개선이 뒤따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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