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고택, 19세기 사당…시간이 멈춘 호이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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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1호 22면

동서양 문화 교차로 베트남 중부

하얏트 리젠시 다낭 리조트 앤 스파는 다낭에서 가장 길고 넓은 백사장을 끼고 있다. 유주현 기자

하얏트 리젠시 다낭 리조트 앤 스파는 다낭에서 가장 길고 넓은 백사장을 끼고 있다. 유주현 기자

변덕스런 날씨가 지겹다. 꽃샘추위가 한창인 3월, 때 이른 휴가가 주어졌다면 초여름을 만나러 베트남 다낭을 찾아도 좋겠다. 딱 이맘때 건기가 시작되어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고, 낮에도 습하지 않고 햇살만 따사로운 쾌적한 날들의 연속이다. 차로 30분 거리에는 낭만적인 근대 풍경으로 시간여행이 가능한 ‘호이안 올드타운’도 있어 힐링에 제격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잠시라도 잊고 멈춘 시간 속에 머물 수 있다.

호이안 올드타운의 옛 건축물들은 노란색으로 통일되어 있다. 유주현 기자.

호이안 올드타운의 옛 건축물들은 노란색으로 통일되어 있다. 유주현 기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호이안 올드타운은 북미 최대 여행정보사이트 트래블오프패스가 ‘2024년 세계 7대 여행지’로 꼽은 핫플레이스다. 16세기 중엽 신항로 개척에 나선 유럽 상인들이 페르시아만에서 중국 명나라를 잇는 중간기착지로 삼은 덕에 동남아 최대 무역항으로 번성한 곳이다. 동서양 문물이 유통되고 무역상들의 집단 거주지가 형성됐던 이국적인 근대 풍경이 그대로 얼어 붙었달까, 노란색으로 통일되어 도시에 확실한 컬러를 부여하는 건축물들은 대부분 그 옛날 중국·일본·스페인·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지어졌다.

베트남전쟁서도 훼손 안 된 행운의 땅  

사극 세트장처럼 고색창연한 18세기 건축 ‘떤키 고택’이 대표적이다. 호이안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부유한 중국 상인의 집이었기에 ‘재력을 부른다’며 관광객이 몰려든다. 베트남과 중국, 일본의 건축양식이 뒤섞인 1급 문화재인데, 지금도 떤키 집안 7대손이 살고있는 ‘살아 숨쉬는 유적’이라 묘하게 낭만적이다. 호이안 최초로 2층 발코니를 만든 집 ‘풍흥 고가’, 19세기 중국 광동 출신 상인들이 모시던 신들을 모아놓은 사당 ‘광동회관’까지 ‘호이안 3대 건축’으로 꼽힌다.

호이안 3대 건축의 하나인 광동회관. 유주현 기자.

호이안 3대 건축의 하나인 광동회관. 유주현 기자.

베트남전쟁 당시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은 행운의 땅이라니 더 귀한 보물이 아닐 수 없다. 몇백년 묵은 집에서 파는 구두나 가방 등 수제 가죽제품들은 꽤 세련됐고, ‘소원배’와 ‘소원등’을 띄우는 투본강가엔 ‘콩카페’ ‘모닝글로리’처럼 유명 맛집도 많다.

투본강변의 콩카페 풍경. 유주현 기자.

투본강변의 콩카페 풍경. 유주현 기자.

알록달록 풍등이 흔들리는 거리를 걷다 보면 손바닥만한 공원에 한 서양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전세계 건축문화가 녹아있는 호이안의 진가를 알아본 폴란드 건축가 카지미에시 크비아트코프스키(1944~1997). 호이안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호이안의 19세기 고택에 차려진 프랑스 사진가 레한의 ‘프레셔스 헤리티지 뮤지엄’. 유주현 기자

호이안의 19세기 고택에 차려진 프랑스 사진가 레한의 ‘프레셔스 헤리티지 뮤지엄’. 유주현 기자

호이안을 호이안답게 만드는 건 예로부터 눈 밝은 외국인들이었나 보다. 또 다른 명소 ‘프레셔스 헤리티지 뮤지엄’은 프랑스 사진작가 레한(Rehahn)의 갤러리다. ‘세계 10대 초상 사진가’로 불리는 레한은 2011년부터 호이안에 머물며 베트남 소수민족의 유산과 장인정신을 기록하는 ‘프레셔스 헤리티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54개 이상의 소수민족이 자기네 전통의상을 입은 사진을 찍고, 2016년 19세기 고택에 갤러리를 열었다. 저들의 영혼을 붙잡은 사진 200여점과 부족장들이 기증한 전통의상들이 호이안을, 아니 베트남을 더욱 특별한 곳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투본강변을 걷는 사람들. 밤에는 소원등과 소원등으로 수면이 가득 채워진다. 유주현 기자.

투본강변을 걷는 사람들. 밤에는 소원등과 소원등으로 수면이 가득 채워진다. 유주현 기자.

레한 갤러리는 최고의 휴양도시 다낭에도 있다. 럭셔리 패밀리 리조트인 ‘하얏트 리젠시 다낭 리조트 앤 스파’가 레한과 협업해 지난해 리조트 내에 문을 열고 투숙객들에게 예술사진을 선보이고 있다. 축구장 8.5배 면적의 부지에 다낭 내 가장 길고(750m) 넓은 백사장을 낀 논 누옥 비치와 5개의 수영장이 산재한 하얏트 리젠시는 이른 아침 대자연을 독점하는 기분을 맛볼 수 있는 한적함이 가장 큰 매력이다.

호텔부터 풀빌라, 레지던시까지 다양한 형태의 숙박 시설을 갖추고 있어 3대가 함께 하는 대가족 투숙객이 많지만, 아시아 최대 규모 키즈존을 비롯해 청소년까지 수용하는 게임 아케이드, 테니스 코트와 주니어 축구장 등 수많은 시설이 있어 어딜 가나 유유자적하다. 지난해부터 팬데믹 극복을 위해 가열찬 업그레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결과다. 아드리안 풀리도 총지배인은 “지난 1년여 매달 새로운 서비스를 론칭했다”면서 “영유아부터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여러 세대가 함께 오는 대가족에게 환영받고 있다”고 자랑했다.

하얏트 다낭의 독채스파 ‘Vie’. 철저히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힐링할 수 있다. [사진 하얏트 리젠시]

하얏트 다낭의 독채스파 ‘Vie’. 철저히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힐링할 수 있다. [사진 하얏트 리젠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스파 ‘Vie’였다 . 스파라기보단 명상 공간이랄까, 몹시 유니크하게 스파만을 위해 설계된 별도의 건축이다. 마치 일본 전통 여관의 노천온천들처럼 마당을 가로질러 10개의 독립된 공간에 대리석 야외 욕조를 갖췄다. 베트남 전통 의료기법에 기반한 마사지를 받다가 스르르 꿀잠에 빠져들었다.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자리한 휴식의 낙원’이라는 설명 그대로다.

하얏트 ‘풀하우스’에서 맛본 베트남 요리 ‘반제오’. 유주현 기자

하얏트 ‘풀하우스’에서 맛본 베트남 요리 ‘반제오’. 유주현 기자

다낭은 ‘경기도 다낭시’로 불릴 만큼 한국인 관광객이 많고, 영어보다 한국말이 더 잘 통할 정도로 여행하기 편한 곳이다. 서울·부산·대전·대구에서 하루 20개의 항공편이 출발하는 등 접근성도 뛰어나다. 하얏트 리젠시도 한국인 점유율이 50% 이상이라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셰프를 6개월마다 초청해 한국인 입맛에 맞춘 메뉴 등 한국인 특화 서비스 개발이 한창이다.

최근 론칭한 펀 다이닝 레스토랑 ‘르 쁘띠 셰프’는 레스토랑 자체를 레드카펫이 깔린 극장처럼 꾸며 이색 체험에 방점을 찍었다. 그밖에 해변에서 불쇼와 라이브 디제이쇼를 감상하며 식사를 할수 있는 ‘오션 바이 더 풀’, 메인 수영장 바로 옆에서 베트남 전통 요리를 맛볼 수 있는 ‘풀하우스’, 영화를 보면서 칵테일을 즐기는 ‘테라스’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와 결합된 식도락이 즐비하다.

펀다이닝 레스토랑 '르 쁘띠 셰프'. [사진 하얏트 리젠시]

펀다이닝 레스토랑 '르 쁘띠 셰프'. [사진 하얏트 리젠시]

다낭 랜드마크 ‘용다리’선 불쇼·물쇼

주말 저녁 9시가 되면 한강 용다리에서 불쇼와 물쇼가 펼쳐진다. 유주현 기자

주말 저녁 9시가 되면 한강 용다리에서 불쇼와 물쇼가 펼쳐진다. 유주현 기자

아드리안은 “한국인들은 외국인과 네트워킹을 좋아하더라. 인근 관광지 투어 프로그램에서 외국인 가정과 소통하며 좋은 시간을 갖는 걸 많이 봤다”고 했는데, 하얏트 리젠시는 차로 5~10분 거리에 위치한 주요 관광지에 투숙객을 직접 인솔해 가는 서비스를 운영하며 자연스런 네트워킹을 추구하고 있다.

오행산 동굴의 불상. 유주현 기자

오행산 동굴의 불상. 유주현 기자

베트남 전쟁 격전지였던 다낭은 그런 역사를 품은 볼거리가 많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500년간 갇혀 있었던 걸로 유명한 오행산(Marble Mountains)이 대표적이다. 용 한 마리가 논 누옥 해변에서 올라와 이 곳에 낳은 알에서 1000일 후 아름다운 여인이 나왔고, 부서진 알껍데기들이 5개의 석회암 봉우리가 되었다는 관능적인 전설도 손님을 끈다. 해안 모래톱에 솟아있는 토산·화산·수산·목산·금산 중 수산에 올랐다. 미로처럼 이어진 동굴마다 석굴암 같은 불상이 들어서 있어 그 스케일에 놀라게 된다. 베트남전쟁 때 미군의 폭격을 맞아 뚫린 구멍으로 들어오는 한줄기 빛이 묘하게 신령스러운데, ‘손오공을 꺼내준 게 삼장법사가 아니라 미군이었다’는 농담도 있다.

베트남 중부

베트남 중부

다낭에선 불을 뿜는 용도 한 마리 볼 수 있다. 도심을 흐르는 ‘한강’을 굽이굽이 꿈틀거리며 용솟음칠 준비를 하는 용 한 마리가 가로지르고 있는데, 다리 전체를 용 모양으로 디자인한 다낭의 랜드마크 ‘용다리’다. 다낭 시내와 해안을 연결하는 중요 교통시설이지만, 밤에는 최고의 관광자원으로 변신한다. 1만 5000개의 LED가 무지개 색으로 빛나고, 주말 저녁 9시에는 용의 입에서 불과 물을 뿜는 쇼를 보러 시민과 관광객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불쇼와 물쇼의 연출이 썩 아름답진 않았지만, 모여든 사람들의 열기만큼은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분수쇼에 뒤지지 않게 후끈후끈했다.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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