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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돈보다 더 환원?"vs"주가 저평가"…울프팩 타깃 된 삼성물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번 주에 본격 개막한 기업 정기 주주총회에선 행동주의 펀드의 존재감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주주가치 제고에 힘을 실어주면서 이들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어서다. 특히 오는 15일 열리는 삼성물산 주총은 5개 행동주의 펀드가 연대한 ‘울프팩’(Wolf Pack‧늑대 무리) 전략으로 기업을 압박하고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 강남에 있는 삼성 사옥. 연합뉴스

서울 강남에 있는 삼성 사옥. 연합뉴스

주주연대, “주주환원 8200억원 더 해라”

영국계 자산운용사인 시티오브런던, 미국계 화이트박스 어드바이저스, 한국 안다자산운용 등 5개 자산운용사가 모인 주주연대는 주주제안을 통해 보통주 한 주당 4500원(우선주 4550원)의 현금 배당과 자사주 매입 5000억원 등을 요구했다. 이를 현금 환산하면 1조2364억원 규모.

주주연대의 요구 중 배당액만 놓고 보면 삼성물산이 지난 1월말 주당 2550원(우선주 2600원) 등 총 4173억 여원을 현금 배당하겠다고 한 것보다 76% 이상 더 배당해달라는 것이다. 삼성물산은 또 올해 1조원대 자사주 소각을 시작으로 3년간 보유중인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겠다고도 발표한 상태다. 현재 시세 기준으로 소각 규모는 총 3조8000억원에 이른다. 삼성물산 입장에선 올해만 1조7000억원 규모의 주주환원 방안을 내놨지만, 주주연대의 요구를 수용하면 추가로 8200억원을 더 써야 한다. 이 때문에 오는 15일 주총에서 양측간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재계에선 삼성물산을 주주친화적인 기업으로 본다. 2019년 주당 2000원 배당 이후, 매년 배당 규모를 늘려왔고 자사주 소각에도 적극적이라는 평가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내놓기 전부터 삼성물산은 대규모 자사주 소각 계획을 내놨었는데 행동주의 펀드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으니 억울한 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주주연대의 생각은 다르다. 현재 16만3000원(12일 종가 기준)인 주가가 저평가됐고 주가 상승을 위해서는 더 큰 주주환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주주연대 중 한 곳인 안다자산운용은 13일 “한국 경제에 가장 중요한 삼성의 가치가 적절한 평가를 받는다면 이는 한국 주식시장 전반에 변화를 촉진해 자본시장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화이트박스 어드바이저스는 2017년부터 삼성물산에 투자했다며 “주가가 순자산 가치 대비 68% 할인된 가격”이라고 주장했다.

경영권 소송, “울프팩 타깃으로 딱” 

삼성물산이 주주연대의 울프팩 타깃이 된 데는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서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 회장은 삼성물산 최대주주로서 보유 지분(18.10%)을 통해 ‘이재용→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 구조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5.59%),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의 지분(6.23%)까지 합치면 삼성물산 지분의 29.92%를 이 회장과 여동생들이 보유 중이다. 삼성물산은 삼성생명의 최대주주(19.34%)이며, 다시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최대주주(7.48%)다. 이 때문에 이 회장(삼성전자 1.44%)을 비롯한 총수 가족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4.37%로 많지 않지만, 삼성물산·생명을 통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여기에 소송이 끝나지 않은 영향도 있다. 지난달 초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 소송 1심에서 이 회장은 기존에 제기된 회계부정 혐의 등에 대해 모두 무죄를 받았지만, 검찰 항소에 따라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들 주주연대는 2015년 합병 당시부터 합병비율(삼성물산 3, 제일모직 1)이 부당해 물산 주주들이 손해를 봤다고 주장해왔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의 경영권이 달린 형사 재판이 진행 중이다보니 행동주의 펀드들은 공격시 요구를 관철하기 수월하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번 돈 보다 더 많이 환원하라니…”

주주연대 요구가 삼성물산에 실질적 위협이 되긴 어렵다는 게 금융투자업계 평가다. 울프팩으로 묶인 5개 행동주의 펀드가 보유한 지분을 다 합쳐도 2%에 못 미친다. 반면 이 회장 등 총수 일가(30.89%)와 삼성 재단 등 우호 지분을 합치면 33%가 넘는다. 지분률 33%가 넘으면 정관변경, 이사 또는 감사 해임 등 특별결의를 할 수 있다.

현재 삼성물산은 주주연대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남긴 이익보다 더 많은 규모를 주주환원에 쓰기는 어렵다는 이유다. 삼성물산 측은 “(주주연대가 요구한)주주환원 1조2364억원은 2023년뿐 아니라 2024년 당사의 잉여현금흐름(바이오로직스 제외)의 100%를 초과하는 금액”이라고 대응했다. 지난해 삼성물산의 잉여현금흐름(기업이 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익 중 세금‧영업비용‧설비투자액 등을 제외한 나머지 현금)은 9000억원 수준이다. 삼성물산은 “(주주제안대로 현금 지출을 해야한다면) 미래 성장동력 확보 및 사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 재원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다른 주주들에게 주주연대의 제안에 반대해달고 설득하고 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문제는 분위기다. 정부가 앞장서 기업에 주주친화정책을 강조하고 있고 이 회장 소송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주주연대는 “삼성물산이 주주가치 제고 제안을 번번히 무시했다”며 공격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주주제안 측과 면담 7회, 이사회에서 논의 11회 등 주주들의 의견을 충분히 이사회에 전달했고 정책 수립에 반영했다”는 입장이다.

조동근 명지대(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주주제안 증가 등 경영에 참여하려는 소액 주주들의 움직임이 두드러지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주주가치 제고라는 명목으로 중장기적으로 기업 체력을 저하하는 주주제안에 대해서는 기업이 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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