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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돈맥경화'…건설사 844곳, 중개소 월 1000곳 문닫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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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 은평구 대조동 대조1구역 주택재개발 현장 입구에 공사비 미지급으로 인한 공사 중단 안내문이 걸려 있다. 뉴스1

서울 은평구 대조동 대조1구역 주택재개발 현장 입구에 공사비 미지급으로 인한 공사 중단 안내문이 걸려 있다. 뉴스1

지난 2022년부터 가파르게 오른 금리 인상으로 촉발된 부동산 침체가 2년 가까이 이어지며 건설·부동산업 전반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고금리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로 건설 현장에 돈이 돌지 않는 이른바 ‘돈맥경화’가 심해지며 부동산 개발업체(시행사)부터 건설사(시공사), 하도급 업체 등으로 위기가 전이되고 있다.

13일 부산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이곳에서 석 달 간 건설 인부들 점심 밥을 지어줬다는 함바집 아주머니는 “외상값 5000만원이 밀렸는데 받을 길이 막막하다”며 눈물을 쏟았다. 함바집은 건설 현장에 지어 놓은 간이식당이다. 통상 공사를 진행하는 여러 하도급 업체가 갹출해 함바집에 인부들 밥값을 건네는데, 이 업체들도 공사를 총괄하는 건설사로부터 공사비를 받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하도급 업체 관계자는 “우리도 인부 월급을 못 주고 있는데 건설사는 기다려 달라고만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지방의 유력 건설사가 쓰러지는가 하면 건설업 임금 체불도 급증하고 있다. 주택 거래가 급감하며 문 닫는 부동산 중개업소가 전국적으로 매달 1000곳 이상 나오는 실정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건설사(종합·전문) 폐업 신고 건수는 844건(13일 기준)으로 집계됐다. 작년 같은 기간(751건)보다 11%가량 늘었고, 동 기간 기준으로 10년 만에 최대치다.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부도 처리된 지방 건설사도 올 들어 총 6곳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3월(3곳) 대비 배로 늘었다.

경남 지역의 한 부동산 개발업체 대표는 “3년 전 부동산 호황기 때 비싸게 땅을 사서 아파트를 다 지었는데 하필 금리가 치솟고 물가가 뛰는 상황을 맞았다”며 “미분양이 속출해 자금 회수를 하지 못하니 도산하는 업체가 한두 곳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시행사나 건설사가 쓰러지면 결국 하도급 업체까지 부실이 이어진다”며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건설업 전체가 연쇄적으로 벼랑 끝으로 몰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부동산 사업은 크게 시행사가 토지 매입부터 시공·준공에 이르는 전 과정을 관리하고 건설사는 시행사로부터 공사를 발주 받아 하도급 업체와 함께 공사를 진행하는 구조다. 시행사는 부동산 개발비용 대부분을 금융회사로부터 빌리는데 이게 바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다. 하지만 고금리 상황에선 부동산 시장이 침체돼 미분양 가능성이 커지고 그만큼 자금 회수가 어려워진다. 금융회사도 사업 리스크가 커지면 만기 연장을 꺼리게 되고 사업장은 다시 ‘돈맥경화’가 심화되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특히 전국 미분양(6만3755가구·1월 기준)의 약 85%(5만3595가구)가 지방에 집중돼 있다. 주로 수도권에 아파트를 짓는 대형 건설사가 자체적으로 긴축하며 버틸 체력이 남아 있다면, 미분양을 떠안은 지방 중소 건설사에서 부도·폐업이 잇따르고 있는 이유다.

건설업 불황 속에 일자리를 잃는 사람도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1월 건설업 구직급여(실업급여) 신청자 수는 2만700명으로 지난해 11월 1만600명, 12월 1만2700명에 이어 증가 추세다. 건설업 임금 체불액이 지난해 총 4363억원으로 1년새 49% 급증한 탓이다. 신규 취업자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건설업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지난해 8월부터 7개월째 내리막길이다. 국내 부동산 신탁사 14곳의 지난해 연간 당기순이익도 2491억원으로 전년 대비 61%가량 급감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또 다른 서민업종인 부동산 중개업소도 울상이다. 휴·폐업이 지난해부터 전국적으로 매달 1000여 건씩 나오는 상황이다. 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지난 1월 폐업업소는 1177곳, 휴업업소는 127곳으로 신규 중개업소(1117곳)를 넘었다. 1월 기준으로 폐업 업소가 신규를 뛰어넘은 것은 2015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처음이다. 개업 업소 수도 2018년(2250곳)과 비교하면 반토막이 났다. 통상 봄 이사철 직전으로 거래가 많은 1월에 폐업이 증가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10년 간 일하면서 올해가 가장 힘들다”며 “고금리에 전·월세만 찾고 매매가 뚝 끊기니 수입도 반토막”이라고 말했다. 강원도 춘천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직원 10명이 올해 전·월세 거래 4건밖에 못했다. 임대료도 내지 못해 문을 닫아야할 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나비효과’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며 그 파장이 전방위적으로 미치고 있는 셈이다. 실제 건설업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건설업은 국내 산업군 중에서 부가가치 335조818억원(2022년)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5.5%를 차지한다. 건설업 취업자가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7.4%(2023년)에 달한다.

건설·부동산업이 내수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은 만큼 건설 경기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막아햐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건설 경기 활성화를 위해 사회간접자본(SOC) 등 공공공사 예산의 65%인 12조4000억원을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기로 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건설업계의 한계 상황은 올 상반기가 피크일 것 같다”며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 경제 전반으로 시름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속한 재정 집행을 통해 우량한 중견·중소건설사라도 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반기에 금리가 떨어지더라도 중금리 수준이 지속돼 건설 경기가 단박에 좋아지긴 힘들 거란 전망도 나온다.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실장은 “건설업 침체가 2~3년은 더 이어질 수 있다”며 “차제에 건설 투자로 경기를 부양하는 비중을 낮추고 과감한 기업 규제 철폐로 기업 자체의 자생 능력을 키우는 식의 산업 구조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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