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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하겠다더니 1m 불법담장…서울 아파트 인센티브 '먹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8일 서울 은평구 수색동 DMC롯데캐슬더퍼스의 공개공지에 담장이 설치돼있다. 한은화 기자

지난 8일 서울 은평구 수색동 DMC롯데캐슬더퍼스의 공개공지에 담장이 설치돼있다. 한은화 기자

서울 은평구 수색동 ‘DMC롯데캐슬더퍼스트’(수색 증산뉴타운 4구역)아파트 단지. 2022년 입주한 이 아파트(1192가구) 한가운데에는 5416㎡ 규모의 공개공지가 있다. 폭 33.5m, 길이 160m에 달하는 이 공간에는 대형 분수대, 돌을 쌓아 산처럼 만든 조경 시설인 석가산, 티하우스 등이 있다. 이 공간은 아파트 입주민은 물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8일 찾은 이곳은 높이 1m가량의 철제 담장이 설치돼 일반인 접근이 쉽지 않았다. 마치 입주민 전용공간 같았다. 주민 강모씨는 “아파트 입주 때부터 담장이 쳐져 있어 들어가면 안 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너비 33.5m, 길이 160m에 달하는 공개공지가 담장에 가로막혀 있다.  한은화 기자

너비 33.5m, 길이 160m에 달하는 공개공지가 담장에 가로막혀 있다. 한은화 기자

공개공지에 불법 담장치고 입주민 전용공간으로 

서울시에 따르면 당초 이 공간은 도시계획시설 일종인 선형(線形)녹지로 사업자가 기부채납하기로 했다. 하지만 "녹지를 너무 넓게 확보하면 사업성이 부족하다"며 반발했다. 이에 서울시는 공원과도 같은 공공시설물을 공개공지로 바꿔주는 대신 개방하게 했다. 이후 조합 측은 결국 혜택만 챙기고 결국 불법 담장을 만든 셈이 됐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은평구청 측은 “조합에 공문을 보내 철거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단지 가운데 위치한 공개공지에는 분수대부터 각종 조경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한은화 기자

단지 가운데 위치한 공개공지에는 분수대부터 각종 조경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한은화 기자

서울 아파트 단지에 불법 담장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최근 들어 서울시는 재개발이나 재건축 같은 정비사업을 할 때 아파트 단지에 공공보행통로를 만들거나 담장을 치지 않는 열린 단지를 조성하면 용적률을 더 올려주고 있다. 담장으로 둘러쳐진 대단지가 주변 지역과 단절되는 문제를 막기 위한 조치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대단지 아파트는 길을 끊어 놓기 때문에 시민이 불편을 겪는다"라며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공공보행로 조성 등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시, 담장 없는 아파트에 용적률 인센티브 

지난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정비계획안이 통과된 재건축ㆍ재개발 구역 13곳 중 10곳이 공공보행통로나 열린 단지 조성을 조건으로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았다. 최고 49층으로 재건축될 서초구 신반포4차 아파트 용적률은 299.98%인데, 이 중 10%가 단지 내 공공보행통로를 만들기로 약속했다. 공공재개발 구역으로 2228가구가 들어서는 양천구 신월7동 2구역은 공공보행통로(10%), 열린 단지(5%) 조성을 조건으로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았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하지만 이런 약속을 어겨도 견제장치가 별로 없다. 현행법상 공공보행통로 설치 등을 위반해도 징역 1년 이하, 1000만원 이하 벌금 정도만 받는다.

용적률 인센티브만 받고 '먹튀' 우려

최근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아너힐즈가 공공 보행통로에 불법 담장을 설치했지만, 재건축조합장이 벌금 100만원을 받고 철거하지 않았다. 건축법에 따라 불법 담장을 철거할 때까지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지만, 2m 미만 담장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강남구 관계자는 “지난 1월 인근 단지인 개포래미안블레스티지도 불법 담장 때문에 경찰에 고발했다”라며 “현재 구에서 할 수 있는 조치가 고발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아너힐즈 정문 출입구 보행통로에 철제 담장이 설치돼있다. 아파트 입주민 출입증을 찍어야 진입할 수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아너힐즈 정문 출입구 보행통로에 철제 담장이 설치돼있다. 아파트 입주민 출입증을 찍어야 진입할 수 있다. 중앙포토

이와 관련,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지구단위계획에 지정된 공공보행통로 설치 등을 위반할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국회에서 아직 처리되지 못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대단지 아파트를 지을 때 보행로를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라며 “법 개정과 동시에 서울시가 지상권이나 지역권을 설정해 불법 담장을 설치할 수 없게 하고, 공공보행통로를 설계할 때도 지하보도로 동선을 분리해 만들지 않도록 세밀한 지침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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