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사교육업체, 조직적 ‘문항 장사’ 적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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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일타강사가 수능 문제를 적중시킨 건 우연이 아닌 ‘작업’의 결과로 의심되는 정황이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감사원은 11일 이 같은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번에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밝혔다.

감사원은 2022년 11월 치러진 수능 영어 지문 23번과 동일한 지문을 수능 전, 자신이 출제한 문제집에 담아 적중 논란을 일으킨 일타강사 A의 사례를 조사했다. 해당 시험엔 베스트셀러 『넛지』의 저자인 하버드대 교수 캐스 R 선스타인이 쓴 『Too Much Information』(너무 많은 정보, 총 246p)의 79p 내용 중 일부가 나왔다. 당시 이 책은 한국 출간 전이었다. 이 지문으로 문제를 처음 만든 이는 현직 고교 교사이자 EBS 집필진인 B였다. B는 2022년 3월 문제를 만들어 EBS에 납품했다. 문제가 출간되기 5개월 전인 그해 8월, EBS 교재 집필진으로 활동하며 B와 가까워진 현직 교사 C가 이 지문을 그대로 활용한 문제를 강사 A에게 팔았고, A는 이를 자신이 만든 사설 모의고사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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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수능 출제와 EBS 문제집 검수를 동시에 맡았던 대학교수 D는 해당 지문의 문제 유형만 바꿔 그해 11월 수능에 출제했다. EBS에는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 감사원 조사에서 이들은 “서로 모르는 관계”라거나 “우연의 일치”라고 주장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유독 그해에만 A의 모의고사 문제집을 사전 검증하지 않았다. 수능 후 이의 제기가 잇따르자 평가원 관계자들은 “A의 문제집은 수강생만 접근할 수 있었다”고 둘러댔다.

학원에 EBS 문제 빼돌려 6년간 5억8000만원 챙긴 교사도

그러나 그 문제집은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살 수 있었고, 수능 출제 사전 워크숍에선 출제위원에게 “사설학원의 지문과 똑같은 지문이 출제되면 안 된다”고 강조한 사실이 드러났다.

감사원은 일타강사 A와 현직 교사 B·C, 대학교수 D 및 평가원의 유착 가능성을 의심해 해당 사안에 대한 수사 참고자료를 경찰청에 송부했다.

현직 교사 다수가 가담해 문제를 사고판 정황도 포착됐다. 교사들은 피라미드식 조직(사교육 업체→중간 관리 교사→문항 공급 교사)을 꾸려 문제를 사고팔았다. 주로 대학 동문인 이들은 서로 “선배님” “후배님”으로 부르며 함께 골프를 치는 등 끈끈한 관계였다고 한다. 문제를 주고받을 때는 텔레그램 단톡방을 활용하는 등 보안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또 고교 교사 E는 교사 8명과 짜고 2019년부터 2023년 5월까지 2000여 개 문항을 유명 학원 강사들에게 팔아 6억6000만원을 챙겼다. 2015년부터 EBS 수능 영어 교재를 집필한 또 다른 고교 교사 F는 EBS 교재가 출간되기 전에 빼돌린 파일을 활용해 8000여 개 변형 문제를 만들어 유명 학원 강사에게 팔았다. 이런 식으로 2015년부터 2021년까지 F가 챙긴 돈은 5억8000만원. F 등은 자신이 근무 중인 학교의 중간·기말고사에 문제를 그대로 내기도 했다. 이 밖에 교사 G는 EBS 교재 집필 등을 통해 알게 된 교사로 구성된 문항 제작진을 구성해 자신의 부인 출판사를 통해 사교육 업체에 문항을 제공했다. G부부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18억9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감사원은 카르텔이 의심되는 현직 교사 27명, 교육과정평가원 관계자 4명, 일타강사 A를 포함한 유명 학원 강사들과 사교육 업체 관계자 20여 명 등 총 56명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감사원은 “학원에 문항을 공급한 교사가 학원 강사들과 별도 계약을 맺었더라도 이는 국가공무원법 등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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