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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병필의 인공지능 개척시대

인공지능 시대의 외국어 공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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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인공지능 번역기의 성능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 이제 휴대폰만 있으면 낯선 나라도 언어의 장벽 없이 여행할 수 있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어느 나라 글이라도 곧바로 번역해 보여준다. 통역 이어폰도 나와 있다. 대화 상대방과 이어폰을 하나씩 나누어 끼면, 서로의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통역해준다. 외국인과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럼, 이제 더는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게 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외국어를 왜 공부하는지에 따라 달렸다. 그저 별다른 불편함 없이 외국어로 된 정보를 습득하고, 외국인과 소통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언어를 배우는 것에는 더 근본적으로 여러 이점이 있다. 언어는 우리가 사고하는 틀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 말을 배우다 보면 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자라나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넓어질 수 있다. 이렇게 서로에 대한 포용력을 높이는 것은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일이다.

AI 번역기 아무리 발전해도
외국어 학습은 여전히 중요
AI가 ‘보편교육’ 도움 주지만
과잉 의존 등 부작용 막아야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나이가 들어서도 외국어 학습은 중요하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우리의 뇌 건강을 지키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치매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고들 한다. 그러니 외국어 공부는 어릴 때나 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버릴 때가 되었다.

또한 감정을 연구하는 심리학자에 따르면 외국어 학습은 우리 감정을 다스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각각의 언어마다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사뭇 다르다. 그래서, 여러 나라말을 배우면 자신의 감정을 더 풍부하게 느끼고 타인의 감정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더라도 이처럼 우리가 외국어를 공부해야 할 이유는 넘쳐난다. 반드시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쓸모’가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배움의 과정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공부도 마찬가지다. 많은 공부에 있어 결과 자체보다 배움의 과정이 중요하다. 인공지능은 사람의 능력을 대체해 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향상하는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 예컨대, 바둑 인공지능이 발전해서 세상 그 누구보다도 바둑을 더 잘 두게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바둑을 배운다. 오히려 알파고 대국 이후 바둑에 관한 관심이 더 커졌다. 마찬가지로 수학 인공지능이 있더라도 우리는 수학을 배워야 하고, 그림 인공지능이 있더라도 그리는 방법은 계속 배워야 한다.

인공지능과 인간 학습의 관계에서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더 손쉽고 효과적으로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각각의 학습자의 수준을 평가하여 그에 따른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학습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숙제를 내고 적절히 채점해서 곧바로 피드백을 줄 수 있다. 값비싼 교육비를 낮추어 교육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처럼 인공지능은 교육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가져올 잠재력이 있다. 이미 많은 스타트업이 등장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특히 충분한 교육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못한 지역에서의 인공지능 활용 가능성이 높게 평가되고 있다. 미래에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여느 선진국 아이들과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교육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일까. 그에 따른 부작용은 없을까. 만약 부작용이 있다면 자녀 교육에 있어 언제부터 인공지능을 활용해도 괜찮은 것일까. 교육 효과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아주 어릴 때부터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가령 아이들이 언어를 습득하기 시작할 때부터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모든 아이를 이중 언어 구사자로 키우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 그러면 굳이 비싼 영어 유치원을 보낼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인공지능이 항상 곁에 있어 말동무가 되어 준다면 교육의 효과는 더 커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 효과도 클 수 있다. 아직 인지 능력이 제대로 자라나지 않은 영유아 단계에서 인공지능과 지속적으로 접촉했을 때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인공지능에 묻기만 하면 정답을 알려줄 것인데,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이 충분히 자라날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한다. 인공지능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어 인간에게 꼭 필요한 사회적 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하게 될 위험도 있다.

이 문제에 대한 합의된 답을 찾는 일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누구라도 인공지능을 활용해 배움의 기회를 얻음으로써, 많은 이들이 꿈꾸던 ‘보편 교육’의 이상을 달성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부작용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국가 수준의 중장기 연구가 시급하다.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