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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규제 완화에도 갈등 고조...앞으로 못가는 재개발·재건축

중앙일보

입력

서울시 모아타운 사업에 반대하는 강남3구 등 주택 소유주와 임대사업자들이 6일 서울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독자제공

서울시 모아타운 사업에 반대하는 강남3구 등 주택 소유주와 임대사업자들이 6일 서울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독자제공

정부가 도심 정비사업을 통한 주민 주거환경 개선과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혼란만 가중하고 있다.

9일 부동산 업계 등에 따르면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등 단독·다가구·상가주택 소유자 연합과 모아타운 반대 비상대책위원회 500여명(주최 측 추산)은 지난 6일 서울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모아타운은 사업성이 떨어져 재개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10만㎡이내 저층 주거지를 한데 묶어 개발하는 서울시의 소규모 재개발 사업이다. 2022년 1월 정책이 도입돼 현재 85곳이 대상지로 선정됐다.

이날 집회에 모인 이들은 모아타운이 외지 투기세력이 사업을 주도하면서 원주민들의 재산권이 침해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가 모아타운 신청 요건(토지 등 소유자 동의율 30%·노후도 50%)을 완화하면서 사업 추진 문턱이 낮아져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진화에 나선 서울시는 7일 “주민 반대가 높고, 투기 우려가 있는 지역은 선정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해 나갈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개발을 반대하는 소유주가 적지 않아 사업 추진 과정에서 한동안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 정비사업 관계자는 “외지인이 노후 빌라촌에 이사한 뒤 재개발 추진을 선동하며 집값을 띄운 뒤 발을 빼는 사례가 서울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며 “투기 세력이 한몫을 챙긴 뒤 빠져나가면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원주민에게 남는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소규모주택정비 관리지역인 서울 중랑구 모아타운 사업지를 방문해 주민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소규모주택정비 관리지역인 서울 중랑구 모아타운 사업지를 방문해 주민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규제 완화로 재개발 사업을 활성화하려는 정부의 구상에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 1월 ‘1·10 주택공급 대책’에서 30년 이상 건축물이 전체 3분의 2를 충족해야 사업에 착수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노후주택이 60% 정도만 돼도 재개발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주변에 신축 빌라가 있으면 재개발 추진이 불가능했던 지역도 사업 추진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재개발에 반대하는 소유주들은 “규제 완화가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서대문구 재개발 추진 지역에 거주하는 박모씨는 “거주에 전혀 불편함이 없고, 오랜 생활터전을 떠날 생각이 없는데도 정부에서 등 떠밀며 나가라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주민은 “정부에서는 재개발 반대 의견도 반영하겠다고 하지만 일단 사업이 시작된 뒤에는 반대 의견을 취합하는 것부터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했다.

공사비 급등에 따른 사업성 악화도 재개발·재건축 추진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코로나19 등을 겪으면서 원자잿값, 인건비 등이 크게 오른 데다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금융비용이 더해지면서 공사비가 크게 올랐다.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재료·노무·장비 등의 가격 변동을 나타내는 지표인 건설공사비지수는 2020년 말 121.80에서 지난해 12월 153.26(잠정치·2015년 100 기준)으로 3년 새 25.8%나 뛰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조사).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이로 인해 조합원들간, 시공사와 조합간 분쟁이 늘고 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규제 완화에 나서고 있지만 사업주체간 갈등까지 해소하는데는 역부족이다. 기존 사업지의 경우 공사비 증액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한다. 최악의 경우 공사가 중단되거나 시공사 또는 조합 집행부가 교체되는 사례도 있다.

공사비 분쟁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건설사들은 사업성이 확보되지 않은 신규 사업에 뛰어들기를 꺼리는 상황이다. 입지가 좋은 강남권 아파트 재건축에서도 시공사 선정에 실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실제 서울의 정비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대형 건설사들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올해 목표 수주액을 지난해 실제 수주액보다 최대 20% 이상 낮췄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 침체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나타나는 갈등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부동산 호황기에는 재개발·재건축을 통한 자산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 사업 추진이 원활하지만, 침체기에는 기대 이익이 줄면서 진통을 겪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한 부동산업계 전문가는 “정부의 규제 완화책이 당장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당장은 금리 인하가 이뤄지고 자잿값 등이 안정돼야 재개발·재건축 사업성 확보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런 상황이 장기화하면 정부가 추진하는 도심 주택 공급에 빨간불이 켜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런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2~3년 후 주택 공급 부족을 야기할 수 있다”며 “좀 더 구체적이고 파격적인 주택 공급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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