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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호 “국정원 전문성 인정하고 인사 흔들지 말아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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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0호 06면

이병호

이병호

좌파정권은 왜 국정원을 무력화 시켰을까

좌파정권은 왜 국정원을 무력화 시켰을까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책을 펴냈다. 정보기관 수장 출신으로서는 이례적이다. 통상 재직시절 일을 함구하는 것이 국정원장의 뒷모습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2년3개월 동안 국정원장을 지냈던 그의 책 제목은 『좌파정권은 왜 국정원을 무력화 시켰을까』(사진)다. 사연이 담긴 듯한 제목이다. 그가 국정원장 시절 만든 새 원훈은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였다. 그가 ‘소리 없는 헌신’을 깨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8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 이유를 물었다.

책을 펴낸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은 국정 수행에서 1순위였다. 350명이 넘는 전·현직 국정원 직원들이 검찰 조사를 받았고, 국정원장 3명을 포함해 46명의 직원들이 감옥에 갔다. 국정원은 적폐 청산의 사냥터였으며 범죄 소굴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이를 뒤늦게나마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책을 쓰게 됐다.”
책에 어떤 내용을 담았나.
“국정원이 입은 치명적인 상처에 관해 설명하고 그 치유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국정원 직원들은 통상적인 정보업무로 여겼던 일이 어느 날 갑자기 범죄로 둔갑하고 동료·선후배들이 형사처벌을 받는 것을 목격했다. 이로 인해 정보기관이 가져야 할 정신(spirit)에 타격을 받았다. 이런 상태로는 국가 안보의 중추인 국가 정보기관로서의 소명을 다 할 수 없다. 정보 운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프로페셔널이 해야 하는 일이다. 이 같은 국정원의 역할을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다. 국정원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국정원 비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첫째, 국정원법 개정이다. 현 국정원법은 국내외 정보 수집·작성·배포를 주 업무로 규정하고 있고, 이외에 방첩, 국제범죄, 대테러 등을 업무로 한정하고 있다. 정보기관의 직무를 이처럼 구체적으로 세분화해 규정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선진국 정보기관처럼 기본 임무 중 하나인 비밀공작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규정이 있어야 한다. 둘째, 국내 보안정보 기능을 복원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숨어있는 내부의 적을 골라내기 위해서다. 경찰에게 넘어간 대공수사권도 국정원에 되돌려야 한다. 셋째,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해 정보 역량의 고도화를 추진해야 한다. 북한의 해킹 공격 등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넷째, 정보 분야별로 최고의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인사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직원 모두가 공유하고 예측할 수 있는 인사 시스템이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원 내에서는 인사 잡음이 있었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해결 방안은.
“정치 지도자들이 정치라는 잣대로 국정원을 재단하고 인사를 흔든 측면이 있다. 또 보수와 진보 정권의 교체에 따른 불가피한 점도 있다. 정치권이 국정원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력을 양성하고 활용한다면 인사 잡음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재임 시절 에피소드도 책에 담겨 있다. 먼저 2016년 4월 8일 중국 류경식당 여종업원 13명의 집단 탈북 사건이 눈에 띈다. 이때 4·13 총선을 앞둔 국정원의 공작이라는 얘기도 있었는데.
“국정원이 아닌 국군정보사가 주도한 사건이다. 국정원은 단지 탈출 방법에 대한 조언을 정보사 측에 제공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의 입국을 총선 직전에 공개한 것을 두고 선거용 공작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사실 이는 그해 5월 초에 열리는 북한의 제7차 노동당 대회에 대한 물타기용이었다. 당시 북한은 체제 선전을 하면서 김정은 우상화에 열중했는데 여기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입국 사실을 공개한 것이다. 4·13 총선에서는 결국 야당이 승리하지 않았나.”
2017년 2월 13일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암살됐다. 당시 국정원 또는 미국 중앙정보국(CIA)가 김정남과 사전 접촉했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이와 관련, 아무런 언급을 할 수 없는 입장이다. 다만, 김정은이 김정남 암살 명령을 이미 오래전에 내렸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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