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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치료제·2차전지…'몰빵형' ETF 주의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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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0호 12면

‘대박 아니면 쪽박’ ETF 봇물

대박 아니면 쪽박. 요즘 비트코인·엔비디아 등의 가격·주가가 수직 상승하면서 금융투자시장에는 어느 때보다도 ‘한방’을 노리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안전보다 고수익을 쫓는 ‘몰빵형’(집중투자의 속어) 상장지수펀드(ETF) 상품 출시 경쟁도 뜨겁다. 투자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분산 투자에 따른 안정성이 장점으로 꼽히는 ETF의 ‘쏠림’에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근 몰빵형 ETF의 최대 격전지는 비만치료제 분야다. 삼성자산운용은 지난달 14일 ‘KODEX(코덱스) 글로벌 비만치료제 TOP2 Plus ETF’를 내놨다. 전 세계 비만치료제 시장을 선도하는 두 기업인 일라이릴리와 노보노디스크에 각각 25%씩 투자한다. KB자산운용은 지난달 27일 ‘KB STAR(스타) 글로벌비만산업TOP2+’를 상장했다. 이 ETF 역시 일라이릴리와 노보노디스크에 몰빵 투자한다. 두 기업의 편입비중은 56%로, 앞서 출시된 경쟁 상품을 뛰어넘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지난달 29일에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이 ‘TIGER(타이거) 글로벌비만치료제 TOP2플러스’를 내놨다. 역시 일라이 릴리와 노보노디스크에 집중 투자한다. 출시 당일 이 ETF의 일라이릴리(28%)와 노보 노디스크(28%) 투자 비중은 총 50% 이상이다. 그동안 바이오·헬스케어 관련 ETF가 있었지만 영역을 세분화해 비만 분야 상품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미국에 상장된 헬스케어 ETF보다도 노보노디스크, 일라이릴리에 대한 편입 비중이 높은 편이다.

K팝의 인기를 업고 국내 4대 연예기획사에 집중투자하는 ETF도 등장하고 있다. 지난달 한국투자신탁운용은 하이브·SM엔터테인먼트·YG엔터테인먼트·JYP엔터테인먼트 등 4대 연예기획사에 95%을 투자하는 ETF를 내놨다. 기존에 미디어·콘텐츠주를 한 묶음으로 한 상품들은 많았지만, 유명 기획사로만 몰빵한 상품으로는 처음이다. 그런가 하면 인도 몰빵형 ETF도 출시 예정이다. 삼성자산운용은 6월 상장을 목표로 인도 최대 그룹인 타타그룹에 집중투자하는 ETF를 준비 중이다. 타타컨설턴시서비스·타타모터스·타타스틸 등 사실상 타타그룹만 담고 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비만치료제 몰빵형 ETF 중 선발주자인 KODEX 글로벌 비만치료제 TOP2 Plus ETF는 상장 후 7영업일 만에 순자산 430억원을 끌어모으며 초반 인기 몰이에 성공했다. 비만치료제 ETF의 실적도 아직은 쾌속질주 중이다. 삼성자산운용은 KODEX 글로벌 비만치료제TOP2Plus ETF가 상장 2주 만에 수익률 18.1%(2월 29일 기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체 ETF 수익률 1위다.

기존에 없던 상품이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몰빵형 ETF는 높은 변동성을 수반하기에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ETF는 기본적으로 10개 종목 이상(상장 최소 요건)으로 구성된다. 이 같은 규제를 둔 건 ETF가 기본적으로 리스크 헷지형 상품으로 개발됐기 때문이다. 여러 종목을 한 바구니에 담아 변동성을 줄이는 게 이 상품의 목적이다. 몰빵형 ETF도 기본적으로는 ETF이기 때문에 10개 종목 이상이 묶여 있지만, 실제 운용은 소수 종목에 과하게 쏠려 있는 게 특징이다. 코스피처럼 지수를 추종하거나, 안정적인 채권의 비중을 높여 리스크를 분산하는 일반적 ETF의 운용 방식과는 대조적이다. 유행에 잘 올라타면 대박을 거둘 수 있지만, 반대로 손실 위험도 크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실제 지난해 2차전지 열풍과 함께 관련 2차전지 몰빵형 ETF가 우후죽순 출시됐는데, 2차전지 대장주였던 에코프로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수익률도 곤두박질치고 있다. 에코프로는 지난해 7월26일 장중 153만원을 넘어서기도 했지만, 6일 현재 59만8000원으로 급락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들 ETF의 최근 6개월 수익률은 -25%를 넘나들고 있다. 레버리지 상품인 ‘KODEX 2차전지산업 레버리지’의 최근 6개월 수익률은 -54.54%로, 반토막이 넘는 손실을 냈다. 국내 테마형 ETF의 붐을 일으킨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차이나전기차SOLACTIVE’ ETF도 출시 이듬해인 2021년 2만선을 넘었으나, 현재는 7400원 수준으로 고점 대비 3분의 1 토막이 난 상태다.

그런데 최근 미국 월가에선 현재 780달러 수준인 일라이릴리의 목표 주가를 1000달러까지 상향한 전망이 나오는 한편, “파티에 가기엔 너무 늦었다”는 과열 경고도 상당하다. 최근 5년간 주가는 520% 이상 급등했고, 최근 1년간 100% 이상 상승한 피로감이 적잖아 급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만약 일라이릴리의 주가가 급락하면 비만 관련 ETF 역시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한 바이오 전문가는 “일라이일리 주가가 이미 매출 정점을 반영하고 있어 현재 가격에 적극적으로 매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거래소는 뒤늦게 ETF 규제에 나섰다. 4일 한국거래소는 “최근 테마형 상품과 관련해 테마를 지나치게 세부적으로 나누거나 일부 극소수 종목의 투자 비중을 극대화하면서 ETF의 분산투자 효과가 낮은 상품이 다수 등장하고 있다”며 신규 상장 종목 수를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유사 상품이 일시에 쏟아지는 ‘무분별한 베끼기’를 막기 위해 유사한 상품이 이미 시장에 상장돼 있다고 판단되면 상장 순위를 뒤로 미루거나, 특정 소수 종목에 ETF의 구성 종목이 편중되지 않도록 질적 심사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승훈 IBK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ETF는 구조상 주가가 올라가면 같이 따라갔다가 주가가 빠지면 매도가 일어나기 때문에 특정 종목에 치중될 경우 (투자자가 보유 시기를 결정할 수 있는) 주식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며 “분위기에 휩쓸려 변동성이 높은 테마 ETF에 고가에 들어가는 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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