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레이건 집권 막으려 “당선 땐 미·소 핵전쟁” 퍼뜨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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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0호 26면

[제3전선, 정보전쟁] 미국과 소련의‘영향력 정보전’

허위조작 정보(misinformation)를 통해 여론을 왜곡하는 러시아의 영향력 정보전을 비판하는 만평. [사진 미국의회도서관]

허위조작 정보(misinformation)를 통해 여론을 왜곡하는 러시아의 영향력 정보전을 비판하는 만평. [사진 미국의회도서관]

‘악띠브니 메라쁘리야띠예’(активный мероприятие)는 ‘적극적 조치’를 뜻하는 러시아어다.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다. 그러나 정보 세계에서는 극도의 긴장감을 불러오는 용어로 바뀐다. 다른 나라의 여론과 정책이 러시아에 우호적으로 변하도록 은밀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고도의 정보전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를 영향력 정보전(influence operation)이라 한다. 볼셰비키 혁명 당시 레닌이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리고 공산 혁명을 완성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냉전 시에는 이를 변용해 미국을 무너뜨리는 핵심 정보전으로 사용했다. 흑백갈등처럼 미국이 안고 있는 상처들을 들추어내 분열과 갈등에 시달리게 해 총 한 발 쏘지 않고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미국은 서둘러 중앙정보국(CIA)을 창설하고 소련의 영향력 차단에 나서면서 창과 방패의 싸움이 시작됐다. 베일에 쌓여 있던 양국간 영향력 정보전의 실체는 냉전 이후 조금씩 밝혀졌다.

8년 전 미 이슬람 찬반집회 배후 조종도

소련의 초기 영향력 정보전은 미국 지식인 사회에 대한 친소세력 확보였다. 소련의 코민포름은 1949년 3월 뉴욕에서 양국 지식인 교류 행사를 주최했다. 소련의 음악 거장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등이 참석하고 미국에서는 JP 모건 투자은행의 아들로 전형적 금수저인 콜리스 라몬트 등이 참여해 미국 여론의 우호적 관심을 끌었다. 이 행사는 소련에 대한 미국 지식인들의 거부감을 완화시키는 데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었다. 소련은 미국과 유럽 지식인 간의 사상적 균열을 내는 활동도 시도했다. 코민포름은 평등과 평화라는 이상주의적 이념을 도구로 삼고 미국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부각시켜 유럽 지식인들을 흔들었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탐욕스러운 미국 자본주의보다 도덕성 높은 소련 공산주의가 낫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미국 국가정보국장실 산하에 설치된‘외국의 악성 영향력 차단센터’로고.

미국 국가정보국장실 산하에 설치된‘외국의 악성 영향력 차단센터’로고.

영향력 정보전의 가장 중요한 무대는 선거다. 선거에 영향을 미쳐 친소 인사들을 많이 당선시키는 것만큼 효과적인 영향력 확보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1968년 미 대선 당시 민주당의 휴버트 험프리 후보에게 전폭적인 선거 지원을 은밀히 제안한 것이 그 예이다. 1980년 대선 때는 레이건의 대통령 당선을 막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영화배우 시절 레이건이 연방수사국(FBI)의 정보원이었다는 허위정보는 기본이었다. 극우적 성향의 레이건이 대통령이 되면 미·소간 핵전쟁이 일어난다는 소위 ‘레이건 공포’도 조성했다. 이를 명분 삼아 미국 전역에서 반(反)레이건 시위가 일어나도록 배후 조종했다. 비록 레이건 낙선이란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선거를 혼탁하게 만들어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과 갈등의 씨앗을 뿌리는 데는 성공했다. 오늘날 미국 사회가 대통령 선거를 놓고 미증유의 분열상을 보이는 것도 소련의 영향력 정보전이 장기간 축적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인종갈등을 부추겨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1968년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사건 때는 미국 정부의 개입설을 퍼트려 인종갈등 논란을 증폭시켰다. 최근에는 인종갈등을 유혈 충돌로 유도하는 등 악질화되고 있다. 2016년 5월 21일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이슬람 찬반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텍사스의 이슬람화 중단’이란 이름의 집회를 주최한 단체 ‘텍사스의 심장’은 참석자들에게 총을 소지하라고 독려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열린 ‘이슬람 지식수호’ 맞불 집회는 미국무슬림연합이 주도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이 두 단체는 모두 러시아 정보기관이 배후조종한 것으로 드러났다. 러시아 정보당국이 꿈꾼 것은 미국인들 간의 총격전이었다.

KGB의 영향력 정보전 실상을 서방에 널리 알린 유리 베즈메노프 전(前)KGB국장. 1970년대캐나다로 탈출해 소련의 대(對) 서방 영향력 정보전 실상을 드러내는 노력을 많이 했다. [사진 유튜브]

KGB의 영향력 정보전 실상을 서방에 널리 알린 유리 베즈메노프 전(前)KGB국장. 1970년대캐나다로 탈출해 소련의 대(對) 서방 영향력 정보전 실상을 드러내는 노력을 많이 했다. [사진 유튜브]

미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정보전도 활발했다. 무엇보다 나토(NATO) 동맹에 균열의 씨앗을 뿌리는 데 공을 들였다. 특히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을 못마땅하게 여긴 프랑스 사회의 자존심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1961년 6월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하자,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는 그 해 4월 프랑스 장교들의 반(反)드골 쿠데타 시도는 CIA가 배후였다는 허위정보를 터뜨렸다. 유럽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자 프랑스 여론은 KGB의 예상대로 정상회담 즉각 취소를 요구했다. 미국과 영국이 나서 겨우 수습했으나 자칫 유럽에서 미국에 대한 불신이 급격히 확산하는 계기가 될뻔 했다.

이처럼 소련의 대미 영향력 정보전은 미국을 분열시키고 고립시켜 언젠가는 비틀거리게 한다는 장기포석이 깔려있다. 이를 통해 냉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보았다. 1982년 4월 안드로포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KGB의 대미 영향력 정보전은 시대적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냉전이 끝난 지금도 러시아는 이를 계승하고 있다.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논란이 그 실례다.

KGB로고. [사진 유튜브]

KGB로고. [사진 유튜브]

미국은 냉전 초부터 소련의 영향력 정보전을 차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CIA를 창설해 소련의 영향력 차단을 가장 중요한 임무로 규정했다 (1948년 6월 8일 NSC 정책지침). 영국과 공조도 강화했다. 영국은 1948년 정보조사국(IRD)을 설립해 30년간 비밀리에 운영하면서 미국과 공조했다. 케네디와 드골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결렬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었던 것도 이 공조 덕택이었다.

냉전이 정점으로 치닫던 레이건 정부 때에는 범정부 차원의 전담조직을 만들어 대응하는 등 방어 역량을 한단계 더 끌어올렸다. 1981년 국무부에 소련의 영향력 정보전 차단을 위한 워킹그룹(AMWG)을 만들어 분산된 업무를 체계화하고 대응방식도 공개적으로 전환했다. 은밀하게 전개되는 소련의 영향력 정보전을 만천하에 적극 알려 세계가 속지 않도록 한다는 전략이었다. 1984년 LA올림픽 보이콧을 위한 KGB의 흑색선전을 막는데도 ‘적극 알리기’ 전략이 주효했다. KGB가 “미국 백인우월주의단체인 KKK단이 LA올림픽을 백인들의 잔치로 만들기 위해 유색인종들을 공격할 것”이라는 허위조작 정보를 퍼트리자, 국무부와 CIA가 KGB의 소행임을 적극 알려 아시아·아프리카의 동요를 막았다.

SNS로 여론전 쉬워져, 한국도 대비해야

최근 미국은 중국의 대미 영향력 정보전에 맞서 대응 전열을 재정비하는 모습이다. 2019년 12월 20일 안보문제를 규정한 미 연방법 제50편을 개정해 외국 정부가 은밀히 미국의 정치, 경제, 군사, 선거, 여론에 영향을 미칠 경우 적대적 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전담할 ‘외국의 악성 영향력 차단센터(FMIC)’를 국가정보국장실(ODNI) 산하에 설치토록 규정했다. 이 센터에는 CIA 등 16개 정보기관은 물론 국무부, 법무부 등도 참여토록 규정했다. 정보기관과 정부가 합동으로 대응하도록 법으로 강제한 것이다.

정보전쟁

정보전쟁

냉전의 유산인 영향력 정보전은 오늘날 더 확대되는 추세다. 미국도 FMIC처럼 외국의 영향력 차단을 위한 전담조직을 두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미 정보기관이 다른 나라의 정치, 경제, 군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연방법 제50편 3093조). 이율배반적이지만 현실이다. 권위주의 국가들이 정치전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공공외교라는 이름으로 타국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가의 영향력 확대에 있어서 정치,외교와 정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적대국의 사회적 갈등이 상시화되도록 부추겨 이를 관리하는데 국력을 낭비하도록 하는 방법도 사용되고 있다. SNS의 발전으로 다른 나라의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도 쉬워졌다. 바야흐로 영향력 정보전이 새로운 비밀 병기가 되고 있다는 의미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주변국의 영향력 정보전에 항상 노출돼 있다. 하지만 2013년 국정원 댓글사건 등의 여파로 영향력 정보전에 관한 종합적 논의를 회피하는 분위기가 있다. 영향력 정보전에 대한 대응은 회피해서는 안되는 중대한 안보 현안이다. 미국과 유럽처럼 공론을 통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최성규 고려대 연구교수. 국가정보원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국제안보 분야에 종사했다. 퇴직 후 국내 최초로 비밀 정보활동의 법적 규범을 규명한 논문으로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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