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당제 도입·사기업허용 등 민주화 박차|아시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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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한>
중소 양국과 등거리 외교를 통해「국익극대화」를 추구했던 북한은 소련의 정책변화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소련의 대 북한 군사원조 및 경제원조가 현저하게 감소하자 김일성이 지난 9월 중국을 방문, 경제원조를 호소하게 됐다.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의 변화는 북한에 정치·경제·외교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
정치적으로는 소련 및 동구유학생들을 소환하고 부르좌 사상의 북한유입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대남 정책에서 남북총리회담과 예술공연단체의 교류에 응하고, 심지어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인정 가능성까지 비치고 있을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경제적으로 대일 수교를 전제로 일본으로부터 배상을 받아내기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외교접촉을 하고 있으며, 대미접촉도 북경에서 잇따라 열고 있다.
북한의 대일·대미 관계개선 시도는 소련의 대 북한 정책변화와 동구사회주의의 몰락에 따른 국제적 고립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반영하고 있다.

<몽골>
인구 2백만 명의 약소국 몽골은 동구 버금가는 소련의 위성국의 위치에서 탈피, 최근 다당제선거를 실시하는 등 민주화개혁과 탈 소 자주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경제적으로 소련에 크게 의존해온 결과 쇠못하나 자체 생산할 수 없을 정도로 공업이 낙후한 몽골은 국내 축산업을 바탕으로 한 자주경제개혁에 적극 나서고있다.
집권 몽골사회당은 지난해 12월부터 일기 시작한 국민들의 개방과 민주화개혁 요구를 수용, 다당제 선거를 실시해 재집권하면서 지난 70년간 유지해온 공산주의체제의 해체를 급속히 추진하기 시작했다.
국영기업과 공장 등 국유 자산의 주식을 전 시민들에게 균등 분배하는 한편 토지 일부도 국민들에게 분배했다.
이에 따라 몽골에서는 하루 2개사 꼴로 소규모 사기업이 창립, 수도 울란바토르에서만도 지난 8월 이후 총7백여 명을 고용하는 1백80여개의 민영회사와 공장들이 등록을 마쳤다.
이와 함께 다쉬인 비암바수렌 몽골총리는 내년부터 본격적인 시장경제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아프가니스탄>
소련의 대외정책이 전쟁종식과 평화공존, 자국 실리 추구 등으로 대폭 수정됨에 따라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은 국가는 10년 전쟁을 겪고 왔던 아프가니스탄이다.
79년 12월 27일 아프가니스탄을 전격적으로 장악한 소련군은 9년간에 걸쳐 1백억 달러 이상의 전비만 소비한 채 지난해 2월 철수했다.
소련군 철수에도 불구, 회교반군의 내부분열로 계속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나지불라는 지난 5월 권력독점 종식을 비롯한 정치·경제개혁을 추진하기로 결정하는 한편 지난해 2월 실시했던 비상사대도 해제하는 등 민주개혁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집권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은 비상사대 해제에 이어 대폭적인 헌법수정안을 채택키 위해 국민대회의(로야 지르가)를 소집할 예정이다.
나지불라는 이와 같은 개혁조치로 이미지 쇄신과 함께 78년의 마르크스 혁명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셈이다.

<베트남>
86년 12월 공산당서기장에 취임한 구엔 반 린 서기장은 베트남 판 페레스트로이카인 「도이 모이」(개혁)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린 서기장은 베트남의 낮은 생산성과 높은 실업률, 1천%에 육박하는 만성적인 인플레를 극복하기 위한 첫 조치로 사기업 설립을 허용하는 개인이익을 인정하는 등 시장경제체제를 일부 도입했다.
집단화과정에서 몰수된 토지는 개인에게 재분배됐다.
만성적자를 기록하던 국영기업에 대한 보조금도 폐지하고 식량에 대한 보조금 지급도 철폐, 인플레억제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은 지난해 9월 12년만에 2만6천여 명의 캄보디아주둔 베트남 군을 철수했다.
날로 악화되는 경제사정으로 외국주둔비용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던 데다 지금까지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해온 소련으로부터의 원조도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진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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