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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천년 역사(?)의 매운 닭고기, 동안쯔지(東安子鷄)

중앙일보

입력

닭고기가 매운 고추와는 음식 궁합이 잘 맞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 불닭 볶음이나 숯불구이, 닭갈비가 발달한 것처럼 중국에서도 닭고기를 매운 고추로 조리한 음식들의 인기가 높다.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요리로는 한국의 중국 음식점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라조기(辣子鷄)가 있고 중국에서는 매운 빨간 고추를 닭고기와 함께 볶은 궁바오지딩(宮保鷄丁)이 흔하다. 유명하기로는 동안쯔지(東安子鷄)도 빼놓을 수 없다.

동안쯔지(東安子鷄)

동안쯔지(東安子鷄)

중국의 10대 명품요리인 데다 국빈만찬 메뉴에 올랐다는 등 엄청난 수식어가 붙는 것과는 달리 동안쯔지는 비교적 단순한(?) 음식이다. 연한 영계 찜에 생강과 식초, 산초와 고추 등을 넣어 조리하는데 하얀 닭고기와 빨간 고추, 파란 파와 노란 생강 등 적백녹황의 색감과 맛이 조화를 이룬다.

명품요리라고 찬사를 받는 만큼 동안쯔지라는 요리가 만들어진 과정과 배경 또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동안쯔지는 일단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닭고기 요리라고 한다. 당나라, 그중에서도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속삭이던 시기인 개원 연간(713~741년)에 만들어졌다니까 대략 1,300년 전이다.

이 무렵 후난 성동안(東安)현의 작은 마을에 여관을 겸해 음식도 파는 주점이 있었다. 어느 날 어두워져 문을 닫을 무렵, 한 무리의 상인들이 투숙하며 아직 저녁 식사를 못했으니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영업시간은 끝났지만 배고픈 표정이 간절해 보였기에 팔고 남은 두 마리의 닭을 잡고 여기에 주방에 남아 있던 빨간 고추와 파, 마늘, 생강, 식초 등으로 양념을 해 뚝딱 음식을 만들어냈다. 시장한 탓인지 음식을 먹어 본 상인들, 맛있다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요리 이름을 물었고 주인이 얼떨결에 동안현의 닭 요리라는 뜻에서 동안지(東安鷄)라고 대답했다. 이후 입소문이 나면서 이 요리가 후난 성에 널리 퍼졌는데 더욱 맛있는 요리를 위해 어린 닭(子鷄)을 쓰면서 동안현의 영계 요리, 동안쯔지로 이름이 굳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흘러 송, 원, 명을 거쳐 청나라에 이르러서는 관청 연회 요리로 승격해 관바오지(官保鷄)라는 이름을 얻었고 오늘날에는 후난 성의 대표 요리, 중국의 10대 명품 요리가 됐다는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또 인터넷을 통해 퍼진 동안쯔지의 유래설인데 재미있자고 만든 이야기를 굳이 다큐로 따져보면 중국 음식문화와 관련된 몇 가지 상식을 알아볼 수 있다.

동안쯔지 맛의 핵심은 닭고기와 빨갛고 매운 고추의 조화다. 그런데 1,300년 전 당나라는 남미가 원산지인 고추가 중국은 물론 유럽에도 전해지기 훨씬 전이다. 고추가 임진왜란을 전후해 한반도에 들어온 것처럼 중국도 비슷한 시기인 명나라 말에 전해졌다.

처음에는 고추 대신 후추나 산초로 요리했다가 훗날 고추로 대체했을 수도 있지 왜 별걸 다 갖고 시비냐고 할 수도 있겠는데 그래도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당나라 때 후추는 신선이 되려는 도사들이, 엄청난 부자들이 양생을 위해 먹는 신비의 영약이었고 산초 또한 음식점에서 팔다 남은 닭고기 양념으로 쓸 만큼 값싼 향신료가 아니었다.

흔히 중세 유럽에서는 인도, 동남아가 원산지인 후추 등의 향신료가 금값과 맞먹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같은 아시아인 중국도 마찬가지였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국에 후추가 퍼진 것은 명나라 이후, 고추가 퍼진 것은 청나라 이후이니 중국에서 매운맛을 즐긴 것도 이 무렵부터다.

또 하나, 동안쯔지의 유래설 중 왜 하필 후난 성동안현이 무대로 등장했을까 싶은데 여기에도 배경이 있다. 동안현은후난 성 성도인 장사, 그리고 삼국지의 무대인 형양에서 서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상강(湘江)이 지나는 곳이다. 역사적으로 알려진 곳이 아니지만 당나라 때는 달랐다. 이 무렵 차 무역이 번성하면서 강남의 차를 싣고 수도인 장안으로 떠나는 배와 마차가 이곳에서 줄을 이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무대 배경은 제대로 설정한 셈이다. 동안쯔지 유래설에서 찾아본 잡학 상식이다.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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