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포트홀’ 민원 ‘보수로 길막혀’ 또 민원…공무원 PC엔 “힘들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이른바 ‘좌표 찍기’에 따른 항의성 민원 전화에 시달리다 숨진 9급 공무원이 근무했던 김포시청에 고인의 명복을 비는 현수막이 걸렸다.

이른바 ‘좌표 찍기’에 따른 항의성 민원 전화에 시달리다 숨진 9급 공무원이 근무했던 김포시청에 고인의 명복을 비는 현수막이 걸렸다.

포트홀(도로 파임) 공사 관련 항의성 민원에 시달리던 공무원이 숨진 채 발견됐다. 6일 경찰과 김포시공무원노조 등에 따르면, 김포시 9급 공무원 A(39)씨는 전날(5일) 오후 인천 서구 한 도로에 주차된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차 안에선 극단적 선택을 한 정황이 발견됐다.

A씨는 회사에 다니다 공무원이 된 지 1년 6개월 된 늦깎이 신입으로, 시에서 도로 관리 및 보수 업무를 맡고 있었다. 이번 겨울 잦은 폭설로 도로 제설 민원, 이후엔 포트홀 발생 민원, 최근엔 김포한강로 포트홀 노면 보수공사에 따른 교통체증 항의 민원에 시달리며 괴로워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포 전호대교 일대 도로 보수공사로 일부 차로가 통제돼 교통체증이 빚어지자 지난달 29일 지역 부동산정보 온라인 카페에 불편을 지적하는 글이 올라왔다. 한 네티즌은 “A주무관이 승인해줬고, 그 주무관은 퇴근했다고 한다”며 A씨 실명을 공개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A씨의 담당 업무, 직통 번호 등을 공개하며 “집에서 쉬고 있을 이 사람 멱살 잡고 싶다”고 썼다. 휴일인 지난 1일에도 “도로 재난 상황을 만든 담당자, 부서는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다” 등 비난 글이 올라왔다.

A씨는 연휴 직후인 지난 4일 출근했다가 빗발치는 항의 전화에 시달렸다. 한 동료는 “4일 하루에만 전화가 50통 넘게 온 것 같다. 전화 받느라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고 전했다. 이튿날인 5일 A씨는 평소처럼 집을 나섰으나 출근하지 않았고,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동료들은 “A씨가 민원으로 많이 힘들어 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겨울 춥고 따뜻한 날씨가 반복되면서 유난히 포트홀 민원이 많았고, 실제로 A씨는 관련 민원 전화에 시달렸다고 한다. “포트홀로 차가 망가졌으니 수리비를 내놓으라”며 소리 지른 민원인도 있었다고 한다. A씨는 동료들에게 “시민들이 무섭다” 했다고도 한다.

숨진 공무원의 실명과 소속, 직통번호 등이 공유된 온라인 카페의 민원 글. [연합뉴스]

숨진 공무원의 실명과 소속, 직통번호 등이 공유된 온라인 카페의 민원 글. [연합뉴스]

한 동료는 “(A씨는) 새벽 5시부터 나와 공사 현장을 감독하고 주말에도 출근했던 친구인데, 카페에 이름이 올라오면서부터 힘들어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동료도 “김포한강로에만 100여 개의 포트홀이 발생했다”며 “공사를 휴일이나 야간에 할 수밖에 없어 밤에 진행했던 것인데, (퇴근했다고) 좌표까지 찍혀 괴로워했다”고 전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사건 후 유족이 확인한 개인 PC에는 “일 때문에 많이 힘들다”는 글이 있었다고 한다. 유족은 빈소 없이 장례만 치르기로 했다. 김포시는 시청 본관에 추모공간을 마련하고 12일까지를 애도 기간으로 정했다. 또 유사 사건 발생을 막기 위해 진상 조사 후 경찰 고발 등 법적 대응도 검토하기로 했다. 경찰도 A씨 사인에는 범죄 혐의점이 없는 것으로 보고, 시의 조사 결과를 참고해 정확한 사건 경위를 파악할 방침이다.

해당 카페 운영자는 “당시 신상털이나 마녀사냥식 글이 올라온 지 확인하지 못했고, 불미스러운 일에 카페가 연관돼 해당 공무원과 유가족들께 너무 죄송한 마음”이라며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카페 관리에 힘쓰겠다”고 공지했다. 한편, 카페에 A씨 신상 정보 등을 올린 민원인을 겨냥한 ‘역 신상털이’도 벌어졌고, 신상 유포자로 지목된 민원인의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계정이 폐쇄되기도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