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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공백 장기전 대비하는 정부…예비비 1200억 긴급 투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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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증원을 둘러싼 의료계의 반발이 전공의에서 시작돼 의대 교수까지 전방위로 확산하지만, 정부는 꿈쩍하지 않고 있다. 비상진료대책을 위한 1200억원대 예비비 투입을 결정, 진료공백 메우기에 나섰다. 동네의원에서 상급종합병원으로 직행하는 길을 막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임시 대책만으로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비상진료 인건비 580억 투입  

정부는 6일 국무회의에서 비상진료대책을 위한 1285억원의 예비비 지출을 심의·의결했다. 이 돈은 전공의가 이탈해 발생한 의료공백을 메우는 데 사용된다. 절반 가량인 580억원이 상급종합병원의 교수·전임의 당직 근무와 비상진료인력의 인건비로 사용된다. 국립중앙의료원과 지방의료원 같은 공공의료원의 평일 연장 진료, 주말·휴일 진료를 위해서도 393억원이 쓰인다.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와 신생아 집중치료 지역센터 등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분야에도 12억원을 투입한다.

복지부는 상급종합병원에 경증 환자가 몰리지 않도록 의료이용 및 공금체계 개선을 위한 예산도 새로 짰다. 일반병원이 상급종합병원 전원 환자를 진료하면 총 40억원 규모로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상급종합병원의 진료협력센터를 통해 1, 2차 병원으로 전원하는 환자에게는 구급차 이용료도 지원한다.

동네의원→상급종합병원 직행, 일시적 불허 

동네의원에서 상급종합병원에 바로 갈 수 없도록 의료법 시행 규칙을 고쳐서 한시적으로 시행하는 방안도 복지부는 검토 중이다. 상급종합병원이 중증환자 진료에 집중하도록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지금은 상급종합병원(3차 의료기관)에 가려면 동네의원(1차 의료기관)이나중소병원·지역종합병원(2차 의료기관)을 거쳐야 한다. 동네의원에서 바로 가거나 2차병원에서 가면 된다. 진료 의뢰서를 갖고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 진료 차질이 심해지면 1차 의료기관에서 상급종합병원으로 갈 수 없게 된다. 2차 병원의 진료 의뢰를 의무화하겠다는 것이다. 웬만한 질환은 2차 병원에서 해결하고 거기서 진료하기 힘든 중증 질환 환자만 상급종합병원으로 보내라는 뜻이다. 지금은 상급종합병원 가는 걸 환자가 선택하지만, 앞으로는2차 병원의 판단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정부는 다른 방안으로 진료비 부담을 높여 3차 병원행을 막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1차에서 3차 병원으로 갈 경우 진료비를 100% 환자가 부담하는 방안이다. 80%, 90% 부담하는 방안도 같이 검토 중이다.

응급실 이용도 제한한다. 응급상황이 발생해 119에 신고하고 구급대가 이송하는 경우, 병원 간에 전원한 경우만 응급실에서 수용하게 된다. 환자가 스스로 응급실에 가면 진료를 받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만들어 곧 입법 예고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진료 차질이 장기화하더라도 응급실·중환자실이 제대로 운영되고, 고난도 수술도 웬만큼 유지돼야 한다. 그리하려면 상급종합병원이 중등증(중증과 경증 사이)이나 경증 환자는 2차로 내려보내야 하는데, 상급종합병원이 그리하기 어렵다. 그래서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서 중증환자에 집중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병원 곳곳 진료공백으로 병동 축소  

현장에서는 전공의 공백에 따른 병원 축소 운영에 들어갔다. 서울대병원은 암 단기병동 등 일부 병동을 축소 운영하고 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은 정신과 폐쇄병동 운영을 잠정 중단했다. 전남대병원은 이날 2개 병동을 폐쇄했으며, 부산대병원은 유사한 진료과 2개를 1 병동으로 묶는 식으로 축소해 운영 중이다. 전공의 94%가 이탈한 제주대병원은 이날부터 간호·간병서비스통합병동을 2개에서 1개로 통폐합했다. 서울아산병원 등은 환자 감소로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급 휴직 신청도 받고 있다. 빅5 병원 관계자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대로라면 병동은 계속 줄어들고 병원 운영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앞에서 열린 경기도의사회 의대 정원 반대 수요 반차 휴진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앞에서 열린 경기도의사회 의대 정원 반대 수요 반차 휴진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의대 교수들의 반발은 이날도 이어졌다. 경남의 유일의 의대인 경상국립대 의대의 보직교수 12명이 보직 사직원을 냈고, 보직이 없는 교수 2명은 사직서를 냈다. 경상국립대는 지난 4일 현재 76명인 정원을 200명으로 늘리겠다고 교육부에 신청했다. 전날 전국 33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는 정부를 상대로 의대 증원 취소소송을 제기한바 있다. 수도권의 한 의대 교수는 "동시다발적인 움직임까진 몰라도 전국 의대 교수 모두가 '이대로 가만히 있어야 하느냐'는 심상찮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박은철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예비비를 넣고 군의관, 공보의로 전공의 공백을 메우는 것은 일부 완화효과는 있겠지만, 이대로 강대강 대치를 계속하면서 버틸 수는 없다"면서 "정부가 의협, 전공의, 교수, 의대생 대표가 만나서 대화를 해야 한다. 이제는 정말로 대화를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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