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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공 차올리자 "대한독립만세"…4월 뜬금없는 3·1운동 기념,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1운동 기념행사를 한달이 지난 4월에 세차례 여는 울산 울주군 언양읍, 온양읍 남창리, 중구 병영동. 사진은 지난해 행사 때 모습. 사진 울산시

3·1운동 기념행사를 한달이 지난 4월에 세차례 여는 울산 울주군 언양읍, 온양읍 남창리, 중구 병영동. 사진은 지난해 행사 때 모습. 사진 울산시

3·1만세운동 기념행사를 4월에만 내리 세 차례나 여는 곳이 있다.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과 온양읍 남창리, 중구 병영동이다. 이 마을은 각각 4월 2일, 5일, 8일 주민 주관으로 독립운동 행사를 개최한다.

서울서 보고 배워, 장날 만세운동

3·1운동 기념행사를 한달이 지난 4월에 세차례 여는 울산 울주군 언양읍, 온양읍 남창리, 중구 병영동. 사진은 지난해 행사 때 모습. 사진 울산시

3·1운동 기념행사를 한달이 지난 4월에 세차례 여는 울산 울주군 언양읍, 온양읍 남창리, 중구 병영동. 사진은 지난해 행사 때 모습. 사진 울산시

6일 울산시 등에 따르면 이들 마을이 만세운동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19년 3월 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에 있던 김교경 옹(천도교 울산교구장)이 탑골공원에서 열린 만세운동 행사 소식이 실린 국민회보(항일 지하신문)과 독립선언문을 울주군 언양읍으로 보냈다. 이 소식을 접한 언양지역 천도교 신자들은 "우리도 해보자"며 의기투합, 별도 만세운동을 계획했다. 1910년대 언양지역은 교구가 설립될 정도로 천도교 세력이 성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 종교인을 중심으로 서울 탑골공원과 유사한 독립 만세운동이 준비됐다. 주민 등 2000여명은 3·1운동 한 달이 지난 4월 2일 언양 장날을 맞아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 일순간 흔들었다. 장터 곳곳에서 "대한독립만세"가 울려 퍼졌다. 시가행진도 이어졌다. 이를 지켜본 일본 경찰은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고 한다. 17명이 총에 맞아 다치고, 26명이 체포됐다. 이게 울산지역 첫 독립 만세운동이다. 이후 언양에서 3·1운동 기념행사가 해마다 4월 2일 열리고 있다.

축구공 차올리면 '대한독립'  

3·1운동 기념행사를 한달이 지난 4월에 세차례 여는 울산 울주군 언양읍, 온양읍 남창리, 중구 병영동. 사진은 지난해 행사 때 모습. 사진 울산시

3·1운동 기념행사를 한달이 지난 4월에 세차례 여는 울산 울주군 언양읍, 온양읍 남창리, 중구 병영동. 사진은 지난해 행사 때 모습. 사진 울산시

언양장터에서 독립 만세운동이 열린 지 이틀 뒤인 4월 4일. 이번엔 울산시 중구 병영동에서 독립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서울에 공부하러 갔다가 돌아온 청년들이 탑골공원의 3·1운동 소식을 동네에 전한 게 발단이 됐다. 동네 청년들은 비밀리에 만세운동을 준비했다. 청년을 주축으로 한 주민들은 일신학교(현 병영초등학교)에서 축구경기를 한다고 일본 경찰을 속였다. 이렇게 주민들은 별다른 감시 없이 학교로 하나둘 모일 수 있었다. 병영청년회 회원들이 축구공을 차올리는 것으로 시작으로 일제히 태극기를 흔들었다.

주민들은 "대한독립만세"를 힘껏 외쳤다. 이 과정에서 14명이 체포됐다. 병영지역 청년들은 다음 날인 5일 일신학교 근처에 다시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주민 등 1000여명이 함께했고, 이들은 전날 체포된 주민을 석방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일본 경찰은 총을 쐈다. 청년 4명이 총에 맞아 사망했다. 병영3·1운동은 당시 전국적에서 독립 만세운동을 재점화하는 계기가 됐다.

서울 소식 전한 울산 주민  

3·1운동 기념행사를 한달이 지난 4월에 세차례 여는 울산 울주군 언양읍, 온양읍 남창리, 중구 병영동. 사진은 지난해 행사 때 모습. 사진 울산시

3·1운동 기념행사를 한달이 지난 4월에 세차례 여는 울산 울주군 언양읍, 온양읍 남창리, 중구 병영동. 사진은 지난해 행사 때 모습. 사진 울산시

사흘이 지난 4월 8일엔 울주군 온양읍 남창리에서도 독립 만세운동이 발생했다. 울산 주민 이재락 옹이 서울 탑골공원에서 3·1운동을 목격하고 울산에 돌아와 학성 이씨 문중에게 독립선언서와 함께 이 사실을 전한 것이 계기가 됐다. 남창 독립만세운동은 학성 이씨 문중 원로 8명이 주도했다고 한다.

병영지역과 남창리 등에서 열리는 기념행사는 축구공을 높이차 올리는 것을 신호로 시가행진 등을 한다. 과거 만세운동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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