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득 따라 교육비 양극화…사교육이 계층이동 사다리 끊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2면

지난해 첫째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서울 대치동으로 이사한 이모(45)씨는 월급(700만원)의 절반을 사교육비로 쓴다. 국어‧영어‧수학은 기본이고, 과학과 피아노 학원까지 보낸다. 이씨는 “소득이 적은 편이 아닌데 두 자녀의 학원비와 대출 이자를 내고 나면 사실상 남는 게 없다”며 “그렇다고 안 보낼 수는 없는 게 주변 집들 모두 이 정도는 다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소득층이 학원을 더 많이 보내면서 소득에 따른 교육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의대를 비롯한 상위권 대학에 고소득층 자녀가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다. 사교육 양극화가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끊었다는 풀이가 나온다.

8일 서울 목동 학원가에 부착된 의대 입시 홍보 현수막. 연합뉴스

8일 서울 목동 학원가에 부착된 의대 입시 홍보 현수막. 연합뉴스

5분위, 1분위보다 교육비 8.3배 더 써

5일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분석 결과 지난해 2인 이상 가구의 평균 사교육비 지출액은 31만8000원으로, 전년(30만원)보다 6.1%(1만8000원) 늘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2020년 교육비 지출이 일시적으로 감소했다가 2021년부터 3년 연속으로 늘고 있다. 교육비 증가세를 이끈 건 고소득층이다.

지난해 2인 이상 가구 중 소득 상위 20%(5분위)는 월평균 교육비로 63만3000원을 썼다. 전년(58만6000원)보다 8.2% 증가하면서다. 특히 학원 및 보습교육비가 49만3000원으로, 전체 교육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 수치는 자녀가 성인이거나 없는 가구를 모두 포함한 것으로, 실제 초‧중‧고교 자녀가 있는 가구의 교육비는 이보다 훨씬 크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2인 이상 가구 중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는 지난해 월평균 교육비로 7만6000원을 썼다. 5분위 가구가 지출한 교육비의 8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2분위(18만1000원), 3분위(28만7000원), 4분위(41만3000원) 등으로 소득 분위가 높아짐에 따라 교육비가 크게 증가하는 구조다.

10년 전보다 늘어난 교육비 격차

소득이 늘어날수록 지출이 증가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교육비 차이는 이례적인 수준이다. 5분위 가구의 전체 소비지출은 536만원으로, 1분위(183만1000원)의 2.9배였다. 교육비 지출 차이(8.3배)와 비교하면 적은 격차다. 2분위 가구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5분위 가구는 2분위 가구보다 전체 소비지출액이 2배 많았는데 교육비로는 3.5배 더 썼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교육비 격차는 점차 커지는 추세다. 5분위 가구의 월평균 교육비 지출은 10년 전보다 25.6% 늘었는데 1분위 가구는 되레 줄었다. 같은 기간 2분위 가구의 교육비 지출도 감소했다. 고소득층 위주로 학원비가 크게 늘다 보니 1분위 대비 5분위 가구의 교육비 지출은 2013년 6.6배에서 지난해 8.3배로 증가했다.

SKY 의대 75%가 고소득층 자녀

소득에 따른 사교육비 지출 격차가 커지면서 계층 이동 가능성은 줄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처럼 혼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게 어려워져서다. 최수현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부연구위원이 1999년생을 표본으로 추적 조사한 결과 부모가 5분위인 집단의 자녀는 69%가 일반 대학에 진학했지만, 1분위 자녀는 40%만 일반 대학에 갔다. 이른바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에 들어간 학생 50% 이상은 부모 소득이 5분위에 속했다.

‘고소득→사교육→좋은 대학’으로 연결되는 현상은 최근 들어 더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1학기 SKY 의과대학에서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1050명 학생 중 고소득층인 소득 9‧10분위인 학생은 74.4%(781명)에 달했다. 2019년(58.5%) 이후 매년 고소득층 비중이 늘고 있다. 가구 월소득인정액 1080만원 이상이 9분위로 분류된다. 사교육 영향력과 의존도가 커지면서 고소득이 보장된 대학에 고소득층 자녀가 주로 진학했다는 의미다.

최수현 부연구위원은 “80~90년대 교육은 계층 이동 사다리 역할을 했으나 양극화 사회로 변해가면서 교육이 계층 간 장벽으로 변하고 있다”며 “대학이 사회진출 발판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이는 사회 전반의 계급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