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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음양사의 놀라운 실존모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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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나원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나원정 문화부 기자

나원정 문화부 기자

영화 ‘파묘’가 개봉 11일만에 600만 관객을 동원했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 등 오컬트 영화 장인 장재현 감독의 신작이란 기대감도 있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제강점기 역사 비화가 관람 열기에 불을 붙였다.

영화 속 독립운동가 이름이나 삼일절·광복절에서 딴 차량 번호판만큼 쇠말뚝을 박아 한민족 정기를 끊으려 한 일본 음양사의 정체도 화제다. 풍수에 훤한 ‘무라야마 쥰지’란 인물인데, 실존 일본 민속학자 무라야마 지쥰(1891~1968)과 이름이 거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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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야마 지쥰이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20여년간 조선을 조사해 펴낸 책이 10권이 넘는다. 의식주, 사상과 성격, 시장, 전통놀이, 종교 등 폭넓고도 상세하다. 저서 『조선의 귀신』에는 “조선의 풍수설에서 자손의 운명은 조상 묘지의 좋고 나쁨에 영향을 받는다”고, 『조선의 풍수』에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가 조선 산맥에 쇠못을 박아 왕기를 제압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중요한 사료지만, 비판적으로 보란 게 학계 평가다. 효율적인 식민통치를 위한 자료였기 때문이다. ‘파묘’를 계기로 찾아보지 않았다면 잘 모르고 넘어갈 뻔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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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열기를 해묵은 반일(反日) 몰이로 보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관객 반응에선 반일 감정보단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놀라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일제 쇠말뚝설은 괴담일지 몰라도, 조선총독부를 등에 업은 무라야마 지쥰의 이름은 우리 풍속사 연구자료 곳곳에 지금도 말뚝처럼 남아있다. 역사를 제대로 아는 데서 양국의 진정한 미래도 싹틀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