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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 “오현경, 나도 곧 갈테니 만나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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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연극인장으로 엄수된 고(故) 오현경 배우 영결식. 고인과 활동했던 이순재 배우(오른쪽)가 헌화 후 과거를 회상하며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연극인장으로 엄수된 고(故) 오현경 배우 영결식. 고인과 활동했던 이순재 배우(오른쪽)가 헌화 후 과거를 회상하며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로배우 고(故) 오현경의 영결식이 5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야외공연장에서 대한민국연극인장으로 엄수됐다. 오전 9시쯤 치러진 영결식에는 유족과 동료 연극인 100여명이 참석해 연기와 화술에 관한 고인의 열정을 돌아보며 추모했다.

고인과 극단 실험극장 창립동인으로 활동했던 배우 이순재는 “실험극장으로 활동하던 당시 우리는 국어사전을 펴놓고 공부할 정도로 화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TBC 시작할 당시 함께했던 남자 배우들이 저와 고인을 포함해 6명 있다”며 “그중 이낙훈, 김동훈, 김성옥, 김순철 다 자네 기다리고 있다. 나도 곧 갈 테니 우리 가서 다 같이 한번 만나세”라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넸다.

배우 정동환은 “열심히 준비한 연극을 감상하신 선생님이 대사가 하나도 안 들린다 하셨을 때 그렇게도 야속하고 절망적이었다”며 “그 야속함과 절망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시간이 저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선생님 만난 반백 년 행복하고 감사했다. 가르침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배우로 활동하는 고인의 딸 오지혜는 “지난해 머리 수술을 받으시고 인지능력을 테스트하는데 직업이 뭐냐고 물으니 힘있게 배우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며 “아버지는 연기를 종교처럼 품고 한길을 걸어오신 분”이라고 추억했다.

고인은 생전 무대를 올렸던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본 뒤 식장을 떠났다. 영정을 든 유족과 연극인들이 뒤를 따르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지난 1일 88세로 세상을 떠난 고인은 1954년 서울고등학교 재학 시절 연극반 활동을 계기로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이듬해 전국고등학교 연극경연대회에서 ‘사육신’으로 남자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엔 연세극예술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졸업 후 실험극장 창립동인으로 활동하며 ‘휘가로의 결혼’ ‘맹진사댁 경사’ ‘동천홍’ ‘허생전’ 등 많은 대표작을 남겼다. KBS 드라마 ‘TV 손자병법’에서는 만년 과장 이장수를 연기해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고인은 2차례 암 수술을 이겨내고 2008년 연극 무대로 복귀해 ‘주인공’ ‘봄날’ 등의 작품에 출연하며 무대를 향한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연기상(1985), KBS 연기대상(1992) 등을 받았고 2013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됐다.

2017년 세상을 떠난 배우 윤소정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뒀다. 고인은 천안공원묘원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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