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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누르고 차트 휩쓴 24년 전 그 곡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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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000년 발매된 가수 최재훈의 원곡을 리메이크 한 임재현의 ‘비의 랩소디’. [사진 새벽테잎]

2000년 발매된 가수 최재훈의 원곡을 리메이크 한 임재현의 ‘비의 랩소디’. [사진 새벽테잎]

아이돌 신곡들이 포진한 음원차트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발라드곡이 있다. 24년 전 발매된 노래 ‘비의 랩소디’다. 가수 최재훈의 정규 4집(2000년) 타이틀곡인데, 지난해 12월 가수 임재현이 리메이크해 음원을 냈다. 발매한 지 약 한 달 만에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 멜론 ‘톱 100’에서 정상을 찍었고, 발라드로선 21개월 만에 지니뮤직 1월 월간 차트 1위에 올랐다. 아이유·르세라핌·태연 등 강한 팬덤을 지닌 가수들 사이에서 석 달 가까이 차트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아이돌 음악과 리메이크, 요즘 국내 음원 차트는 크게 이 두 가지로 압축된다. 대형 팬덤을 거느린 아이돌 음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면, 그밖에 차트에 이름을 올리는 노래는 1990~2000년대 명곡을 다시 부른 리메이크곡들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리메이크곡의 특징은 롱런(long-run), 즉 오랜 기간 차트에 머무른다는 점이다.

2000년 발매된 가수 최재훈의 원곡을 리메이크 한 임재현의 ‘비의 랩소디’. [사진 새벽테잎]

2000년 발매된 가수 최재훈의 원곡을 리메이크 한 임재현의 ‘비의 랩소디’. [사진 새벽테잎]

멜론 2월 월간 차트에서 8위를 차지한 너드커넥션의 ‘그대만 있다면’은 1999년 발매된 일기예보의 노래를 다시 불렀다. 지난해 8월 리메이크된 이후 반년 넘게 차트에서 사랑받고 있다. 같은 차트에서 31위에 오른 임영웅의 ‘사랑은 늘 도망가’는 2010년 이문세의 노래가 원곡인데, 원곡의 힘과 함께 임영웅의 거대 팬덤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리메이크된 지 2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차트에서 장기집권 중이다. 해당 차트 41위 DK(디셈버)의 ‘심(心)’은 2002년 록가수 얀의 노래를 다시 부른 것이다. 1년째 차트에 머무르고 있다.

이처럼 가시적인 성과가 잇따르자 리메이크곡 발매는 ‘다시 부르기’ 열풍 수준으로 활발하다. 4일 멜론에 따르면, 한 해 동안 발매된 리메이크 음원은 2022년 1227곡에서 지난해 1384곡으로 늘었다. 이중 상당수는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탄생했다. 경연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리메이크 제작 증가세는 뚜렷하다. 가수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리메이크곡 역시 2022년 262곡에서 지난해 338곡으로 증가했고, 올해는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52곡이 발매됐다. 가수 이승기는 1997년 발매된 임재범의 ‘비상’을 다시 불렀고, 이수영은 2002년 가요순위 프로그램 첫 1위를 달성한 곡 ‘라라라’를 다시 부를 계획이다. 올해 발매된 리메이크 음원은 지난달 21일 기준 2.5억 회 재생됐고, 전체 멜론 이용자 중 78%가 청취했다.

리메이크 열풍에 대해 김진우 써클차트 수석연구위원은 “음악 업계가 불황일 때면 기존 인기곡을 리메이크하며 안정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패턴이 반복됐다”고 짚었다. 김 위원은 이어 “리메이크나 머니코드(대중에 친숙한 상업적 멜로디 코드), 샘플링(기존 곡의 일부를 발췌해 새 곡에 삽입) 등 과거의 경험을 활용한 노래 제작으로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이 업계의 오랜 방식”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경향이 음악의 다양성 측면에서 우려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는 “가수의 기록을 만들어내는 팬덤은 활발하지만, 그 외 대중은 신곡이나 새로운 가수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것 같다”며 “제작 역시 아이돌 음악 위주로 진행되면서 다양성이 많이 위축된 듯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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