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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국가 위기 때마다 앞장"…대구 들어서는 2500억 건물 정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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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열린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특별기획전에서 전시됐던 당시 자료들. 사진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2021년 열린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특별기획전에서 전시됐던 당시 자료들. 사진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2030년까지 구국운동기념관 건립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경북대에서 열린 16번째 민생토론회에서 구국운동기념관 설립을 제안했다. 윤 대통령은 “국채보상운동을 비롯해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앞장서 일어났던 대구 정신을 알리고 계승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라며 이같이 제안했다.

이에 국가보훈부는 2030년까지 2530억원을 들여 대구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 인근 4000여평(1만3200㎡) 대지에 지하 3층, 지상 3층 규모의 기념관과 공원을 만들 예정이다. 국가보훈부는 구국운동기념관 건립을 위해 건립 타당성과 기본구상 연구용역을 오는 9월까지 실시할 계획이다.

2·28 민주운동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조성된 중구 동성로 일대에 있는 2·28 기념중앙공원도 젊음의 광장으로 단장한다. 이는 윤 대통령이 이날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힌 대구 ‘동성로 르네상스 프로젝트’ 추진 계획의 일환이다. 공원 중앙에 잔디광장을 만들고 야외 무대를 정비한다. 이후 다양한 행사를 열어 젊은이가 모이는 동성로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대구는 구국운동이 전국에서 가장 활발했던 지역으로 꼽힌다. 대구는 1907년 일제의 경제주권 침탈에 대항한 국채보상운동 발원지다. 또 1915년 대표적인 항일결사 단체인 대한광복회가 결성된 지역이다. 6·25 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 전투의 핵심 거점이었다.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서상돈 선생. 중앙포토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서상돈 선생. 중앙포토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1월 29일 대구의 출판사인 '광문사' 김광제 사장과 서상돈 부사장이 “나랏빚을 갚자”며 범국민적 모금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확산했다. 도로와 학교 등을 지으려 대한제국이 일본에서 ‘강제로 빌린’ 차관 1300만원(현 3300억원 상당)을 갚기 위해서였다. 차관 규모는 당시 대한제국 1년 국가 예산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남자들은 금주와 금연을 통해 돈을 마련했고, 여자들은 비녀와 가락지를 내다 팔았다. 전국적으로 3개월여간 4만명이 넘게 참여해 230만원을 모았다. 이 모금 운동이 ‘국채보상운동’이다.

그로부터 90년 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가 터졌다. 많은 국민은 국채보상운동을 떠올렸고, 외환 위기를 극복하자며 ‘금 모으기 운동’에 나섰다. 전국적으로 351만 명이 참여해 21억7000만 달러에 해당하는 약 227t을 모았다.

대구 중구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최초로 시작한 서상돈 선생의 고택이 보존돼 있다. [사진 대구 중구]

대구 중구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최초로 시작한 서상돈 선생의 고택이 보존돼 있다. [사진 대구 중구]

대한 광복회도 대구서 결성 
국내외 독립운동 핵심 단체로 평가받는 대한광복회가 1915년 대구 달성공원에서 조직됐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대한광복회에 투신한 독립운동가를 비롯해 구한말 최초 의병장인 문석봉 지사, 민족시인 이육사·이상화 등 대구에서 배출한 독립운동가는 셀 수 없을 정도다.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대구에 본적을 둔 독립운동유공자는 123명에 달한다.

1960년 대구에서 일어난 2·28 민주운동은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2·28 민주운동은 60년 자유당 정권이 야당 유세장에 학생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대구 시내 8개 공립고등학교에 일요 등교 지시를 내린 게 발단이 됐다. 대구시내 고교생들은 이에 반발해 곳곳에서 시위했다. 2월 28일은 2018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대구 중구 2·28기념중앙공원 리뉴얼 사업 조감도. [사진 대구시]

대구 중구 2·28기념중앙공원 리뉴얼 사업 조감도. [사진 대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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