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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소리장도(笑裏藏刀)와 제갈량(諸葛亮)

중앙일보

입력

소리장도. 바이두

소리장도. 바이두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녀~”라는 드라마 대사처럼 인류의 웃음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가 상대방의 웃음에도 어느 정도는 주의를 기울이며 사는 이유다. 겉웃음, 너스레웃음, 반웃음, 선웃음, 억지웃음, 헛웃음, 여우웃음, 염소웃음, 그리고 특히 간살웃음에 대해서는 한번 깊게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웃음들은 공통적으로 뭔가 개운치 않은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까투리웃음, 비웃음, 쓴웃음 등 부정적인 감정 상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웃음이 차라리 더 낫다는 이도 있다.

이번 사자성어는 ‘소리장도(笑裏藏刀)’다. 앞의 두 글자 ‘소리’는 ‘웃음 속’이다. 다음으로 ‘장도’는 ‘칼을 숨기다’라는 뜻이다. 둘을 합하면 ‘겉은 미소를 짓고 있으나, 안으론 칼을 숨기고 있다’라는 의미다. 세 글자로 줄여 ‘소중도(笑中刀)’라고도 쓴다. 중국에서 속담집처럼 대중에게 익숙한 책 ‘삼십육계’의 제2부 ‘적전계(敵戰計)’에도 이 군사적 지략이 나온다. ‘적전계’에는 양측의 군사력이 ‘대등한 상황’일 때의 계책들이 적혀있다.

고대 중국의 빼어난 군사 전략가로 세 인물이 손꼽힌다.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孫武), 초한 전쟁 시대의 장량(張良), 삼국시대의 제갈량(諸葛亮). 이 3명 가운데 한·중·일 대중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를 누리는 이는 누굴까. 단연코 제갈량이다. 물론 유방의 지낭(智囊)으로 활약한 신비한 인물인 장량도 상당한 인기가 있다. 그래도 부동의 ‘인기 1위’는 삼국지에서 촉(蜀)나라의 군사(軍師)이자 ‘넘버2’였던 공명(孔明) 선생 제갈량이다.

공명의 직업을 현재 기준에서 바라보면 어디에 속할까. 거창하게 사상가나 철학자로 분류했다면 분명 오답이다. 정치인 또는 행정가로 분류했다면 아주 틀린 답은 아니지만 말이다. 만약 더 세밀한 분류를 선호한다면 요즘의 국방부 장관 또는 합참의장으로 상상해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분류들은 카리스마 넘치는 이 ‘일 중독(workaholic)’ 천재를 너무 좁은 틀에 가두는 한계를 지닌다.

이 시대에 비춰, 가장 근접한 제갈량의 직업은 전문 경영인이 아닐까 싶다. 요즘으로 보면, 그는 갑자기 스카우트를 당한 인공지능 전문가 CEO다. ‘중3 수준’의 의협심과 실패를 무릅쓰는 ‘벤처 기업가’ 마인드를 밑천으로 황건적에 맞서 창업했다가 도산(倒産) 직전까지 몰린 유비는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하는 등 제갈량 영입에 많은 공을 들였다. 유비와 그의 조직은 제갈량을 만난 후에야 처음으로 ‘큰 판’을 제대로 읽었다. 지피지기(知彼知己) 분석과 군량미 대비책 등을 마련한 뒤 전투를 치를 수 있었다.

첫 약속을 물리지 않고, 평생 제갈량 한 사람에게 힘을 실어준 유비의 리더십도 대단하다. 무직 청년 제갈량에게는 ‘어지러운 시대에 태어났으나 천하 경영에는 참여한다’는 큰 포부가 없지 않았다. 교류하던 당대의 인재들 사이에 이름도 알려진 상태였다. 하지만 본래 그는 ‘때를 기다린다’는 심정으로 난세를 피해 은둔자의 길을 택했던 젊은 현인이었다.

안타깝게도 제갈량은 50대에 과로사했다. 그가 저술한 병법서도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없다. 그는 약체(弱體) 촉나라의 군사(軍師) 직위를 맡아 거의 매년 쉽지 않은 전쟁을 치렀다. 승상의 지위를 맡아 국정 전반에 기강을 세우는 등 매우 분주한 일정을 가냘픈 몸매로 버텨냈다. 덕분에 그가 살아 활약하던 시기에 촉나라는 남북으로 광활한 영토와 세력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정치에 있어서도 심모원려(深謀遠慮)와 신상필벌을 키워드로 삼아 안정을 유지했다. 고성능 인공지능이라도 달성하기 쉽지 않을 업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의 승패는 시작하기도 전에 미리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패배의 모든 원인은 적을 깔보는 데서 기인한다.” 제갈량은 이렇게 조운, 강유, 마속 등 휘하의 장수들에게 자주 조언했다. 이 말에는 적으로 하여금 아군을 깔보게 유도하라는 의미도 있겠으나, 적장이 구사하는 ‘소리장도’ 계책에는 더 각별히 주의하라는 의미에 방점이 찍혀있다. 당시나 지금이나, 웃는다고 꼭 복(福)이 오는 것은 아닌 세상살이 이치 때문이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 독서인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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