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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남규의 글로벌 머니

올해 금값은 비트코인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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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강남규 기자 중앙일보 국제경제 선임기자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금값 강세 흐름이 올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온스(31.1g)당 2000달러를 웃돌고 있다. 최근 상승세는 미국 산업생산과 소비심리가 둔화 조짐을 보인 탓이다. ‘경기 둔화→기준금리 인하→달러 약세’ 가능성에 금 매수 주문이 늘었다. 이처럼 순간순간의 재료가 금 강세를 부추기고 있지만, 현재 상승세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사태로 시작됐다. 만 2년이 된 긴 상승 사이클이다.

그런데 자산의 가격 상승을 위협하는 요인은 ‘오른 기간이 길었다는 사실 그 자체’라는 격언이 있다. 올해 금값이 이 격언을 무색하게 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우선 글로벌 금시장의 핵심 매수세력의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값 2022년부터 계속 오름세
미의 러 보유외환 동결이 계기
신흥국 중앙은행, 공격적 매집
개미들은 비트코인에 더 몰려

중앙은행, 공격적 금 매집

금과 비트코인. 블룸버그

금과 비트코인. 블룸버그

최근 2년 동안 글로벌 금시장엔 아주 강력한 매수세력이 움직였다. 영국 경제분석 회사인 옥스퍼드이코노믹스의 상품시장 애널리스트인 디에고 카치아푸오티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금을 공격적으로 사들인 중앙은행, 특히 신흥국 중앙은행”이라고 말했다. 이들 중앙은행이 2022년 사들인 금은 한해 세계 생산량 3000t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1100t을 매집했다. 지난해엔 1037t을 사들였다. 장식용과 공업용 수요가 꾸준한 가운데 중앙은행의 매수가 이전의 두 배로 늘어났다.

카치아푸오티는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미국이 러시아 외환보유액을 동결했다”며 “그 바람에 인도와 싱가포르 등의 중앙은행이 외환보유액 다변화 차원에서 달러와 유로를 금으로 바꾸었다”고 설명했다.

상승을 이어가는 급값

상승을 이어가는 급값

미국의 러시아 외환보유액 동결은 냉전시대에도 없던 일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1950년대 후반에 미국이 동결 가능성을 내비쳤다. 순간 소련은 미 시중은행에 맡겨둔 돈을 인출해 유럽계 시중은행으로 옮겼다. 이른바 ‘유로달러 시장(미국 밖 달러 저수지)’은 이렇게 시작됐다.

카치아푸오티는 “중앙은행 금 사재기가 올해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중국 인민은행(PBOC)이라는 큰손의 배가 여전히 고프기 때문이다. PBOC의 외화보유액 가운데 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4% 남짓이다. 미국과 프랑스 등과 견줘 낮다. 미국 등의 금 비중은 두 자리 숫자다. 중국이 미국이나 프랑스 수준까지 높일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금시장에서 중앙은행은 예외적인 매수세력이다. 꾸준한 매수세력은 따로 있다. 바로 헤지펀드와 부호 등이다. 이 민간 세력은 지정학적인 갈등과 인플레이션, 통화정책 리스크 등에 대응하기 위해 금을 사들인다. 카치아푸오티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 인상에서 인하로 전환(pivot)할 시점 가까워지고 있어 통화정책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금 수요가 크다”고 설명했다.

올해 금값이 더 오르기 위해서는 새로운 매수세력이 절실하다. 카치아푸오티는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 수단인 금상장지수펀드(ETF)의 부활이 변수”라고 말했다. 금ETF는 펀드 가격(주가)이 금값에 따라 움직이도록 설계된 투자수단이다. 개인 투자자는 금덩이를 직접 사들일 필요 없이 ETF에 투자하면 금값 상승에 따른 이익을 챙길 수도 있다.

금ETF 움직임이 변수

금ETF의 위력은 2010년대에 검증됐다. 그때 금값이 대세상승했는데, 금ETF가 강한 흡입력을 자랑했다. 반면에 지난해 금 ETF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자금 이탈 탓이다. 카치아푸오티는 “올해 금 ETF가 본격적으로 나선다면 중앙은행과 헤지펀드의 매집과 맞물려 새로운 스토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럴듯한 전망이다.

금과 비트코인 ETF 자금흐름

금과 비트코인 ETF 자금흐름

그러나 카치아푸오티가 말한 ‘새로운 스토리’가 실현될 가능성은 최근 떨어지고 있다. 미국 내 금ETF에 맡겨진 투자금(자산)이 올해 들어 늘어나기는커녕 539억 달러(약 72조원) 수준까지 감소했다. 반면에 비트코인ETF에 흘러든 투자금은 1월 등장 이후 눈에 띄게 증가해 375억 달러(약 50조원)에 이르렀다. 금값 상승률이 비트코인에 미치지 못한 탓이다. 올해 들어 금값은 1.42% 정도 올랐다. 반면에 비트코인은 무려 46.6% 정도나 뛰었다. 가격 상승기 ETF는 선순환이 특징이다. 어떤 자산 가격이 조금이라도 더 오르면 해당 ETF에 더 많은 돈이 몰려든다. 개미 투자자의 쏠림 현상이다.

그 바람에 비트코인이 금을 대신해 안전자산 지위를 차지할 것이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파이(Phi)코인 개발자인 니엘레 베르나르디는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금 공급은 꾸준하지만, 올해 비트코인 채굴(공급)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며 “비트코인이 금을 대신해 인플레이션과 지정학적 갈등을 헤지하는 자산이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골드버그(금 예찬론자)의 반론이 만만찮다. 제임스 리카즈는 “안전자산은 가격 변동성이 작아야 한다”며 “비트코인 가격이 2008년 1차 급등 이후 얼마나 출렁거렸는지를 보라”고 주문했다. 실제 비트코인 가격의 변동성이 금보다 3.5배 정도 더 크다. 더욱이 비트코인 가격은 미국 등 글로벌 경기가 침체에 빠질 조짐이 나타나면 가파르게 떨어지곤 했다. 리카즈는 “비트코인 지지자들이 한때 법정화폐를 대신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여의치 않으니 이제는 금의 자리를 넘보는 듯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어느 쪽의 말이 맞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다만, 올해 금값이 개미 투자자의 등에 업혀 상승세를 이어가려고 했는데, 비트코인이란 복병을 마주친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