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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돕다 '집토끼' 놓칠라…美, 네타냐후 '경쟁자'와 대화

중앙일보

입력

이스라엘 지원에 대한 미국인들의 부정적 여론이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전 등을 놓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갈등이 확산되는 가운데 미국은 네타냐후와 경쟁 관계에 있는 야당 실력자와 대화를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긴급 방문해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지만, 이스라엘 지원에 대한 미국인의 부정적 여론이 급격하게 확대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긴급 방문해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지만, 이스라엘 지원에 대한 미국인의 부정적 여론이 급격하게 확대되고 있다. AP=연합뉴스

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의 42%가 “이스라엘의 하마스 추적이 도를 넘었다”고 답했다. 친(親)이스라엘 행보를 보여온 바이든 대통령의 대응 방식에 대해선 60%가 “반대한다”고 했다. 찬성 비율인 31%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반대로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에 대한 동정 여론이 높아졌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나치게 많이 돕는다는 응답은 30%를 기록했고, 팔레스타인을 너무 적게 돕는다는 의견은 33%에 달했다. 12월 비슷한 조사와 비교하면 각각 8%포인트와 7%포인트 높아졌다.

특히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부의 강경론에 대해선 민주당 지지자가 오히려 더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원 가운데 하마스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응이 지나쳤다고 답한 비율은 70%로, 16%에 그친 공화당원의 응답 비율을 크게 앞섰다.

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은 바이든 행정부의 이스라엘 지원에 대한 부정 여론이 확대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

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은 바이든 행정부의 이스라엘 지원에 대한 부정 여론이 확대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에서 이스라엘 측의 강경 대응을 그대로 두다간 자칫 핵심 지지층인 ‘집토끼’를 잃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실제 지난달 28일 미시간주의 프라이머리에서 무려 13%의 유권자가 ‘지지후보 없음’(uncommitted)에 투표했다. 민주당 내에서 표출된 친이스라엘 정책에 집단 반발이란 분석이다.

이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두 개의 전쟁’ 중 이스라엘 관련 언급을 줄이고 우크라이나만을 강조하고 있다. 백악관은 부인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사석에서 네타냐후 총리를 “나쁜 XX”라고 불렀다는 보도도 나왔다. 특히 지난달 29일 이스라엘군이 구호품을 받기 위해 몰려든 민간인에게 총격을 가해 100여명이 사망한 사건 뒤로는 비판의 수위가 더 높아졌다.

이날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앨라배마주 연설에서 이스라엘의 민간인 총격을 “인도주의의 재앙(catastrophe)”이라고 지칭하며 “명백한 인도주의 참사로 고통받는 가자의 모든 무고한 사람들 때문에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을 향해선 “변명의 여지가 없다(No Excuse)”며 “즉시 휴전”을 촉구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험관 시술로 얻은 쌍둥이 자녀와 남편을 잃은 팔레스타인 여성이 사망한 쌍둥이 아이의 시신을 안고 오열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험관 시술로 얻은 쌍둥이 자녀와 남편을 잃은 팔레스타인 여성이 사망한 쌍둥이 아이의 시신을 안고 오열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해리스 부통령의 언급에 대해 영국의 가디언은 “해리스는 상당량의 발언을 이스라엘을 지적하는데 할애했다”며 “특히 가자지구의 상황을 언급한 미국 고위 지도자의 발언중 현재까지 가장 날카로운 힐책”이라고 평가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더 나아가 4일엔 네타냐후의 최대 경쟁자이자, 전시 내각에 참여해온 국민통합당 베니 간츠 대표를 만날 예정이다. 야당인 이스라엘 국민통합당에 따르면 이날 미국에 도착한 간츠 대표는 해리스 부통령에 이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토니 블링컨 국무부장관까지 만난다. 사실상 대통령을 제외한 외교·안보 핵심 인사들을 모두 만나는 셈이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최대 경쟁자로 꼽히는 베니 간츠 이스라엘 국민통합당 대표. 간츠 대표는 네타냐후 총리의 승이 없이 3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해 해리스 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핵심 인사들과 만날 예정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최대 경쟁자로 꼽히는 베니 간츠 이스라엘 국민통합당 대표. 간츠 대표는 네타냐후 총리의 승이 없이 3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해 해리스 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핵심 인사들과 만날 예정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백악관 관계자는 뉴욕타임스(NYT)에 “간츠 대표가 인질 협상과 휴전, 가자 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 확대, 민간인 사상자 축소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미국이 중도파인 간츠 대표를 사실상 이스라엘의 대표로 인정하고 전쟁 상황을 논의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바이든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총출동하는 이번 방미가 네타냐후 총리와의 조율 없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이스라엘 매체에 따르면 간츠 대표는 방미 이틀 전인 지난 1일 총리실에 통보했고,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의 총리는 한 명 뿐”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간츠 대표는 전쟁이 발발한 이후 정부를 지지한다는 의미로 전시 내각에 참여했지만, 이후 강경론으로 일관하는 네타냐후 총리와 사사건건 대립했다. 현지 여론조사에서 간츠 대표의 중도 국민통합당은 큰 격차로 네타냐후의 보수 리쿠드당을 비롯한 보수 연합을 앞서고 있다. 가디언은 “지금 총선이 열리면 집권당은 의석을 대폭 잃을 것”으로 전망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마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경론을 굳히지 않고 있다. AP=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마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경론을 굳히지 않고 있다. AP=연합뉴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해 사법부 권한 축소 파동으로 전국적인 항의 시위에 직면한 데 이어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허를 찔리는 안보 실패까지 노출하며 여론의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 일각에선 네타냐후 총리가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을 묵살하고 전쟁의 장기화를 전제한 강경 행보를 이어가는 배경이 국내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목적이란 분석도 나온다. 실제 그는 전쟁 등을 이유로 사실상 자신의 퇴진 여부를 가릴 조기 총선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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