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은희의 미래를 묻다

기능 잃은 신체 인쇄해서 다시 쓰는 시대 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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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어린 시절, 겨울의 기억 중 하나는 난로 위에서 끓고 있는 주전자와 그 주전자 주둥이에 걸려 있는 털실이었다. 작아진 스웨터에서 풀린 꼬불꼬불한 털실이 주전자 속 뜨거운 증기를 만나 처음처럼 매끄럽게 변하고, 이내 엄마의 뜨개바늘 끝에서 장갑이며 모자며 목도리로 엮이는 광경은 어린 나의 눈에는 마법처럼 보였다.

뜨개질은 인류가 습득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효용성 높은 기술 중 하나다. 실이라는 1차원적 물질이 뜨개바늘이라는 도구와 만나면 2차원적 직물에서부터 3차원 공간을 구성하는 수예품까지 다양하게 변주된다. 그런데 현대 과학의 발전은 뜨개질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몸에 걸치는 직물뿐 아니라, 우리의 몸 그 자체에도 시도하기 시작했다. 바로 바이오 잉크를 통해 생체를 찍어내는 ‘바이오 프린팅’을 통해서 말이다.

생체 찍어내는 바이오 프린팅
신약 개발 사전 테스트에 유용
치아·뼈 보완은 이미 현실화
신기술 적용 사회적 합의 필요

3D 프린터, 생체를 찍어내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의 한 연구원이 바이오 프린터로 출력한 인간 심장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 크기의 100분의 1이지만, 실제 심장 세포를 활용했다. [신화사=연합뉴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의 한 연구원이 바이오 프린터로 출력한 인간 심장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 크기의 100분의 1이지만, 실제 심장 세포를 활용했다. [신화사=연합뉴스]

바이오 프린팅이란 뜨개질을 통해 편직물을 만들어내듯, 신체를 구성하는 물질을 엮어 조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뜨개질을 하기 위해서는 뜨개실과 뜨개바늘이 필요하듯, 바이오 프린팅에는 바이오 잉크와 바이오 프린터가 있어야 한다. 특히나 생체 조직은 대부분 입체이므로, 입체 구조물을 출력할 수 있는 3D 프린터가 필요하다.

살아있는 세포의 출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명한 이는 미국 텍사스의과대학의 로버트 클레베다. 1986년, 그는 단백질로 구성된 얇은 막을 종이처럼 이용해 그 위에 세포를 프린터기로 출력해 결착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박막 형태로 2차원 구조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미 시중에는 3D 프린터가 나와 있었기에 세포를 면으로 찍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면 입체물을 만드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이는 곧 사실이 되었다.

바이오 프린팅의 적용 분야는 매우 다양하지만, 가장 관심을 받는 분야는 바로 의료 분야다. 살다 보면 다양한 이유로 신체의 일부가 손상되거나 기능을 잃을 수 있는데, 그때 바이오 프린팅은 이를 보완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의료용 바이오 프린팅 구조물을 만드는 과정은 크게 전 단계→출력 단계→후처리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전 단계에서는 프린팅에 필요한 정보를 작성한다. 손상된 부위를 정확히 스캐닝하고 프린팅할 부위를 세세하게 모델링하여 출력 정보로 변환하는 것까지가 전 단계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가장 적합한 바이오 잉크를 선택하여 3차원 구조물을 제작하는 것이 출력 단계이다. 그리고 생체 출력물이 무너지거나 변형되지 않도록 안정화하고, 이식 후 생착을 돕는 물질로 코팅하는 등의 후처리 단계까지 거쳐야 비로소 사용 가능한 조직이나 장기가 온전히 갖추어진다.

바이오 프린팅의 의료적 쓰임새는 크게 의료적 예측과 실질적 대치로 나뉜다. 사람의 몸은 저마다 다르기에 표준 치료법이 모두에게 동일한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수술 전에 환자의 병변을 미리 스캐닝해서 복제하면 충분한 사전 연습이 가능하고 부수적 손상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환자의 몸에 번진 암세포를 복제하면 환자에게 추가적인 고통을 주지 않고도 가장 적합한 항암제를 빠르게 찾을 수 있다. 또한 이런 사전 테스트는 신약개발 때에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즉, 윤리적으로나 실질적 문제가 있는 동물실험을 대체하거나 임상 테스트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는 데도 효율적이다.

바이오 프린팅의 다양한 쓰임새

여기서 나아가면 바이오 프린팅은 그야말로 신체를 대치하는 기술로 이어진다. 바이오 프린팅을 통해 손상된 치아나 뼈를 보완하는 임플란트 형태의 의료 보철물의 제작은 이미 현실화됐다.

생체에서 유래한 세포로 출력된 신체 분야 중 가장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는 분야는 방광이다. 2010년대, 미국 웨이크포레스트대학의 알라타 교수팀은 방광암 환자를 대상으로 출력된 방광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환자의 몸속에서 수년간 기능하며 바이오 프린팅을 통한 조직 및 장기 이식 가능성을 밝히는 신호탄이 되었다. 뒤이어 미국의 생명공학 회사 오르가노보는 바이오 프린팅을 통해 제작한 간을 배양기 내에서 90일 이상 생존시키는 데 성공했다. 또 다른 생명공학 회사인 3D바이오쎄라퓨틱스는 선천적으로 소이증을 가지고 태어난 여성의 몸에서 추출한 연골세포를 이용해 완벽한 모양의 귀를 출력해 이식했다. 이처럼 바이오 프린팅을 통한 신체의 보완과 대치 분야의 가능성은 여전히 밝다.

인체의 타고난 복잡성과 다양한 문제로 인해 바이오 프린팅을 통한 출력물이 신체 조직을 완벽하게 대치하고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발전 속도에 비추어 보건대 인류는 그다지 머지않은 미래에 기능을 잃은 신체 부위를 몇 번이고 인쇄하여 재사용하는 시대에 들어설 것이다. 문제는 치료 개념으로 시작했던 의료 기술의 발달은 곧 신체 강화와 개조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안면 손상을 입은 환자를 돕기 위해 시작했던 성형수술이 곧 미용수술로 발전했고, 유전성 질환의 대물림을 방지하기 위해 시도된 유전자 검사가 맞춤 아기의 가능성으로 이어졌듯이 말이다. 인체에 대한 치료와 강화의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