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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정량표시제, 경동은 청년몰 조성…카드 결제 늘리고 배송 서비스도 시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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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9호 11면

서울 광장시장에서 파는 순대. 신수민기자

서울 광장시장에서 파는 순대. 신수민기자

“모둠전과 순대는 안 먹었어요. 비싸잖아요.”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안시은(20)씨는 “가격 논란이 거셌던 메뉴라 아예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일본인 관광객 타키(24)도 “광장시장은 재밌는 곳”이라면서도 “무슨 음식인지 잘 모르겠는데 값도 비싸 주문을 꺼리게 되더라”고 했다.

지난해 11월 중순 ‘1만5000원짜리 순대 모둠전’ 논란이 SNS를 뜨겁게 달군 지 100일. 중앙SUNDAY가 다시 찾은 광장시장은 2030세대부터 고령층에 외국인 관광객까지 몰려 여전히 붐비는 모습이었다. 한 점포에 들어가 보니 순대 1인분에 8000원. 포장해 무게 측정기로 중량을 재보니 520g이었다. 김지희(64)씨는 “아이고, 50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큰 순대가 16점이니 하나에 500원이네”라며 놀라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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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를 위해 서울 주변 전통시장 6곳을 함께 찾아가 봤다. 경동시장·광장시장·남성시장·아현시장·의정부 제일시장·통인시장 등을 둘러본 결과 순대 1인분 가격은 4000~8000원으로 시장마다 제각각이었고 광장시장 가격과도 차이가 컸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가격에 비해 지나치게 양이 적거나 같은 양인데 다른 곳보다 더 비쌀 경우 소비자들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며 “몇몇 상점의 과도한 가격 설정은 다른 상인들뿐 아니라 시장 전체 이미지에도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6곳 전통시장 모두 카드 결제가 안 되는 것도 여전했다. 계좌 이체를 해야 했고 일부 점포는 아예 현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상인들은 현실적인 고충을 호소했다. 광장시장에서 10년째 호두과자를 팔고 있는 한 상인은 “카드를 받고 싶어도 웬만한 점포는 사업자 등록이 안 돼 있어 단말기를 놓을 수 없는 실정”이라며 “소비자들도 불편하겠지만 우리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그런 가운데 변신을 꾀하려는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바가지요금’ 논란 이후 “이대로 가다가는 시장 존립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위기감이 돌면서다. 당장 광장시장은 지난해 12월부터 ‘정량표시제’를 시범 도입했다. 시장 상인회도 카드 결제 활성화를 위해 상인들의 사업자 등록 절차를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상인들도 친절 서비스를 다짐하고 나섰다. “이랏샤이마세, 오이시이오이시이(어서오세요, 맛있습니다).” 희끗한 머리의 나이 지긋한 상인이 광장시장에서 일본어로 손님을 끌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메뉴판과 간판에도 외국어가 추가됐다. 옛날 과자 판매점을 운영하는 백정순(66)씨는 “관광객 안내 필수 용어로 일본어·중국어·영어 등 3개 국어를 익히고 있다”며 “자꾸 까먹긴 하는데 이렇게라도 노력해야 손님이 더 찾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관광 명소로 소문난 맛집은 입장 예약 서비스도 도입했다. 한 일본인 관광객은 “예능 프로 ‘런닝맨’에 나온 육회 음식점을 찾아 왔는데, 줄이 길 줄 알았더니 대기 시스템이 있어서 편리했다”며 반겼다. 시장 자체적으로 체험 콘텐트를 만들기도 했다. 종로구 통인시장에선 ‘엽전 도시락’을 체험하려는 2030세대로 붐비고 있었다. 현금을 엽전으로 바꾼 뒤 식판을 들고 각 점포의 대표 음식을 엽전으로 구입하는 식이다. 시설 현대화에도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경동시장의 경우 시장 안에 청년몰도 따로 조성해 MZ세대의 호응을 얻고 있다.

동작구 남성시장은 프랜차이즈 마트처럼 배송 서비스도 시작했다. 남성시장 상인회 관계자는 “우리 시장은 야채와 과일·정육 등 1차 식품이 인기가 높은 만큼 이런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점포마다 배송 서비스에 적극 나서도록 독려하고 있다”며 “맞벌이 부부 등 유동 인구가 많은 동네 특성상 배송 서비스를 활성화할수록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문가들은 전통시장의 이 같은 변신 노력이 효과를 거두려면 보다 적극적인 지원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장흥섭 전 한국경영교육학회장(경북대 명예교수)은 “전통시장은 결국 상인과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곳”이라며 “지자체도 시장 현대화는 물론 각기 다른 지역적 특색을 잘 살려 나갈 수 있도록 적극 도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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