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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입은 작품, 실시간 말 걸고 ‘가상 애완동물’도 키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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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9호 18면

순수미술도 변화 바람

인공지능(AI)이 본격적으로 순수미술계에도 스며들기 시작했다. 지금 서울 미술현장에서 그것을 실감할 수 있다. 최근 개인전을 시작한 국내외 유명 아티스트 3명의 공통점이 모두 AI를 중요한 도구로 활용한 것이니 말이다.

파레노, 작품 위한 새로운 언어 만들어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 [사진 리움미술관]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 [사진 리움미술관]

프랑스 출신으로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작가인 필립 파레노는 지난달 28일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개막한 대규모 개인전 ‘보이스(VOICES)’에서 AI를 탑재해 주변 환경의 변화에 반응하고 배우 배두나의 목소리로 새로운 언어를 말하는 탑 형태의 신작을 선보이고 있다. 13.6m 높이에 달하는 이 신작 ‘막(세포나 신체조직의 막)’은 현재 미술관 야외 데크에 설치되어 있다. 온도·습도·풍속·소음·대기오염·지면의 미세한 진동 등 각종 환경 데이터를 수집하는 42개의 센서를 장착했으며, 이 정보를 데이터 신호와 소리 형태로 미술관 내부로 전송해 미술관 내부에 설치된 작품이 이에 따라 켜지고 꺼지거나 다른 변화를 일으키도록 한다.

파레노는 26일 리움미술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가상의 존재가 이 탑에 살면서 주변환경의 미세한 변화를 느끼는 설정”이라고 설명했다. “42개의 센서가 모두 함께 데이터 신호를 생성하고 이 신호는 언어로 변환됩니다. 이 존재는 먼저 천천히 느끼기 시작하고 천천히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존재에게 인간의 목소리를 부여하고 싶어서 한국의 훌륭한 배우 배두나와 함께 작업했고, 이제 이 존재는 배두나의 목소리로 말을 합니다.” 작가는 수년 동안 매 전시마다 “작은 기상 관측소처럼” 미술관 공간 외부에 센서를 설치하여 외부 온도와 같은 환경 요소로부터 닫혀 있는 미술관 내부의 작품과 연결되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이안 쳉 ‘사우전드 라이브스’ 한 장면. [사진 글래드스톤]

이안 쳉 ‘사우전드 라이브스’ 한 장면. [사진 글래드스톤]

파레노는 언어학자와 협력하여 작품 ‘막’을 위한 새로운 언어를 만들었다. 이 새로운 언어 ‘∂A’(2024)를 학습하면서 작품 ‘막’은 “알아들을 수 없는 웅얼거림에서 시작해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하여 말을 하는 개체가 된다”고 미술관은 설명한다. 그리고 “이 목소리는 마치 인형을 부리는 인형사처럼 전시를 감독하며 미술관은 거대한 오토마톤(자동기계)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AI를 이용한 시스템이 미술전시 전체를 자동 제어하는 형태에서 나중에는 AI가 자체적으로 예술을 창조하는 쪽으로 진화할 수 있느냐고 작가에게 묻자, 작가는 “AI는 구성을 위한 훌륭한 도구, 작곡을 위한  악기라고 생각한다”며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뉴욕에 본사를 둔 글래드스톤의 서울 갤러리에서는 ‘가상 생태계’로 유명한 미국 작가 이안 쳉이 지난주부터 뉴로심볼릭(neuro-symbolic) 인공지능 모델이 구동하는 거북이 ‘사우전드’의 일상을 극화한 신작 ‘사우전드 라이브스(Thousand Lives)’를 선보이고 있다.

“AI는 작품 구성을 위한 훌륭한 도구”

노상호 ‘홀리’ 연작 중 하나. [사진 아라리오 갤러리]

노상호 ‘홀리’ 연작 중 하나. [사진 아라리오 갤러리]

이 전시에는 두 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하나는 ‘BOB 이후의 삶: 챌리스 연구 경험’(2021~22)으로, BOB이라는 AI 공생체와 함께 자란 최초의 어린이인 가상의 캐릭터 챌리스의 삶을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은 2022년 리움에서 열린 이안 쳉 개인전을 통해 선보인 바가 있다.

또 다른 작품 ‘사우전드 라이브스’(2023~24)는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지난 달 22일 글래드스톤 서울에서 취재진과 만난 작가는 “이 작품은 챌리스의 지저분한 아파트라는 환경에 적응하려는 챌리스의 애완 거북이 ‘사우전드’의 일상을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하는 느린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즉, 90년대 유행한 ‘다마고치’의 최첨단 진화 버전이라 할 만하다. 인공지능으로 움직이는 이 거북이는 백지상태에서 새로 마주치는 모든 것이 자신의 내적 본능과 관련이 있는지를 학습하고 친화적인 환경과 위협적인 환경을 구분하는 인식을 발전시킨다. 그러다가 적응에 실패하면 죽게 되지만 ‘천 개의 삶’이라는 제목처럼 전생의 기억 20%를 가지고 다시 태어난다. 관람자가 혼자인 경우, 이 작품 ‘천 개의 삶’은 관람자의 존재를 인식해서 관람자의 정확한 시점에 맞춰 움직인다.

한편, MZ세대에게 인기 많은 한국 작가 노상호는 지난 달 28일 서울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개막한 개인전에서 AI가 생성한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회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AI 이미지 생성기에 사진의 일부를 주고 나머지 부분을 상상하라고 명령하거나  몇 가지 사진을 합성하라고 명령한 후 나오는 AI의 결과물을 보고, 그것을 그대로 사용하지는 않고 편집한 다음 캔버스에 에어브러시로 그 이미지를 옮겨 그린 작품들이다.

노상호 작가는 이러한 작품을 1년 전 아라리오 갤러리 그룹전을 통해 처음 선보인 바 있다. 그는 당시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AI가 다 하는 것이 아니고 내 신체를 매개로 한 것”이라며 “에어브러시를 쓴 것도 내 손길이 직접 닿은 건 아니고 그렇다고 안 들어간 것도 아니라서 AI를 쓰는 작업 방식과 통하는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AI 협업 작업의 취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왜 (디지털 이미지가 범람하는 세상에서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리는가 생각하다가, 우리는 결국 중간적인 상태로 사는 것이 아닌가, 완전히 디지털화되지도 않고 완전히 아날로그이지도 않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세상이 완전히 메타버스화되지 않는 한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한 중간적인 우리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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