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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연료전지 소재부터 분리막·시스템까지 독자 기술로 생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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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코멤텍 김성철 대표

김성철 코멤텍 대표가 전남 영광 본사 공장에서 수소연료전지용 강화분리막에 전극을 입힌 막ㆍ전극접합체(MEA)를 보여주고 있다. 최준호 기자

김성철 코멤텍 대표가 전남 영광 본사 공장에서 수소연료전지용 강화분리막에 전극을 입힌 막ㆍ전극접합체(MEA)를 보여주고 있다. 최준호 기자

수소경제는 거를 수 없는 대세다. 예상보다 빨라진 지구 온난화에 맞설 수 있는 궁극의 에너지 대안이기 때문이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치는 이미 마지노선인 섭씨 1.5도를 넘어섰다. 지난 8일 영국 BBC 방송은 유럽연합(EU)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연구소(C3S)의 데이터를 인용해, 지난해 2월부터 올해 1월까지 1년간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2도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수소경제는 진영도 넘어선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내걸었던 수소경제는 현 윤석열 정부에서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올해 연구·개발(R&D) 예산이 크게 줄었지만, 수소·연료전지 분야는 지난해 1196억원에서 1201억원으로 늘었다. 수소경제를 뒷받침할 기술 확보가 곧 국가 미래 경쟁력이라는 인식에 뜻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 PTFE 멤브레인 개발
3개 과기 출연연 기술 이전받아
연료전지 소재 기업으로 도약
국내시장 외면 탓에 중국에 수출

수소경제 준비하는 소부장 벤처기업

전남 영광의 코멤텍은 다가올 수소경제 시대를 준비하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벤처기업이다. 시작은 PTFE 멤브레인 필터였다. 세계 3번째, 국내 최초였다. PTFE 멤브레인은 석유 추출 화학물질을 원료로 만든 일종의 여과막이다. 막의 두께가 얇고 내부에 미세한 구멍이 많이 뚫려 있어, 기체는 통과해도 액체는 막아주는 특징이 있다. 일반인들에겐 기능성 등산복·등산화 소재로 잘 알려진 고어텍스가 PTFE 멤브레인을 활용해 만들어졌다. 산업용으로는 발전소나 제철소의 미세먼지 필터, 수질 정화용 필터 등으로도 사용된다. 코멤텍은 자체 생산한 PTFE 멤브레인을 이용해 필터를 만들거나, 수소연료전지에서 수소와 산소의 전기화학반응을 담당하는 스택(stack)의 핵심 부품인 강화복합막과, 여기에 전극을 붙인 막·전극접합체(MEA·Membrane Elecrode Assembly)를 생산하고 있다. 수소연료전지 부품 소재 중 강화복합막은 국산화가 안 된 핵심소재였다. 미국의 글로벌 소재기업 고어가 유일하게 생산해 전 세계에 공급해왔다. 국내에서 원소재부터 연료전지용 강화분리막과 MEA, 연료전지 시스템까지 모두 자체 기술로 생산할 수 있는 회사는 코멤텍이 유일하다.

코멤텍을 이끄는 김성철(52) 대표는 현장형 엔지니어다. 박사는 아니지만, 대학과 연구소·기업에서 닦은 연구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술을 개발하고 사업을 키워왔다. 그는 학생연구원 신분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대학원 석사 학위를 마쳤다. 이후 필터를 만드는 중소기업 크린에어테크놀로지를 거쳐 2007년 코멤텍을 창업했다. 김 대표는 “크린에어테크놀로지에서 산업통상자원부의 부품 소재 기술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PTFE 멤브레인 개발 과제를 수행하면서 관련된 원천기술을 확보했다”며 “첫 직장에서 개발을 시작한 PTFE 멤브레인을 포기할 수 없어 직접 회사를 차리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전남 영광 대마면 대마산업단지에 있는 코멤텍을 찾았다. 회사는 단지 초입 6611㎡ 면적의 부지에 3개 동에 달하는 3269㎡ 규모의 공장과 사무동으로 구성돼 있었다. 입구 오른쪽엔 사무동과 PTFE 멤브레인을 생산하는 설비가, 뒤쪽엔 강화분리막을 만드는 공장이, 왼쪽엔 MEA를 제조하는 설비와 함께 실내골프연습장 등 직원들을 위한 운동 및 여가시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방 중소기업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수도권 셋방살이 접고 호남행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코멤텍은 원래 경기도 안산 시화공단에서 ‘셋방살이’로 시작한 기업이다. 당시 유일한 주력 제품인 PTFE 멤브레인 생산설비를 늘리는데 시화공단 임대공장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기술력은 뛰어났지만, 공장을 방문한 바이어들이 양산을 위한 설비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계속 해왔다. 그렇다고 임대공장에 수억 원 이상의 최신 설비를 구축한다는 것도 어려웠다. 마침 수도권 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찾다 보니 전남 영광까지 내려오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수도권 이전기업으로 인정받아 초기 공장 부지 구입비의 50%, 설비투자의 30%를 무상 지원받고, 영광군에선 전기요금의 절반을 도움받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김 대표는 “정부와 지자체에서 지원을 해줘 공장과 설비를 잘 마련할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 같이 일할 사람을 찾는 게 아주 힘들다”며 “기업 유치 이후에도 지역에서 관심과 지원을 계속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코멤텍은 국내 최초 PTFE 멤브레인 개발이라는 뛰어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전력의 화력발전 자회사에 미세먼지 필터를 납품하는 것 외에 국내에 안정적인 수요를 찾기 어려웠다. 신생 중소기업의 제품을 믿을 수 없어했다. 투자를 받기도 쉽지 않았다. 대우건설과 일본 종합상사 스미토모 등에 수처리 관련 소재 공급도 했지만, 일회성에 그쳤다. 직원 월급은 줘도, 대표는 집에 돈 한 푼도 가져갈 수 없는 날이 1년 이상 이어졌다. 회사가 ‘죽음의 계곡’을 벗어나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때는 창업 8년 차였다. 2014년 과학기술 분야 정부 출연 연구소들의 기술지주사 겸 투자사인 한국과학기술지주(KST)를 만나면서부터다.

기획 창업·기술이전 모범 사례

김 대표는 “투자도 절실했고, PTFE 멤브레인을 넘어서는 새로운 기술이 필요했다”며 “그러다 생각해낸 게 PTFE 멤브레인을 활용한 수소연료전지 시장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기술에 투자하는 한국과학기술지주(KST)를 찾아 정부 출연연구소들의 기술을 이전받아 수소연료전지 핵심 부품인 강화복합막과 MEA를 만들어낼 수 있었고, KST 투자를 통해 기업의 신뢰도도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코멤텍은 KST 투자와 출연연 기획 기술이전 이후 최근까지 삼호그린인베스트먼트·현대기술투자·KDB산업은행 등 기관투자자와 기업 등으로부터 총 160억원의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연간 10억원 안팎이던 회사 매출도 KST와 협업 이후 60억원까지 늘었다. 올해는 MEA와 연료전지 시스템 사업까지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연말까지 120억원의 매출이 예상된다.

최치호 KST 대표는 “수소연료전지 관련 기술을 원하는 코멤텍의 부탁을 받고 KIST와 에너지기술연구원·생산기술연구원의 관련 기술들을 모아 이전했다”며 “코멤텍은 최근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각광 받고 있는 이른바 기획 기술이전 또는 창업의 대표적 사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딥테크 유니콘 기업(상장 전 기업가치 1조원)의 66%는 3개 이상의 기술이 바탕이 된다”며 “기술지주회사나 벤처캐피털이 중심이 돼 여러 연구소나 대학의 기술을 묶는 기획 창업 또는 기획 기술이전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 있어도 외면당하는 국내 시장

코멤텍이 가야할 길은 아직 한참 남았다. 전 세계적으로 연료전지 등 수소경제 관련 시장이 성장하고 있긴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민간 주도가 아닌 정부 R&D 과제에 의지하는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코멤텍은 새로운 시장을 열 기술이 있지만, 신기술을 평가해주는 기관이 없다 보니 새로운 투자를 받는 것도, 수요가 있는 국내 대기업을 뚫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대신 코멤텍은 중국을 차세대 주력 시장으로 삼고 있다. 수소연료전지 사업에서 큰 걸림돌이 되는 규제와 실증 문제를 가장 유연하게 풀 수 있고, 수요도 많은 곳이 중국이기 때문이다. 국내 공공 부문의 R&D 지원으로 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정작 그 혜택을 중국이 대신 받고 있는 셈이다.

김 대표는 “중국의 수소 연료전지 시장은 매년 20% 이상 성장하고 있다”며 “현재로선 코멤텍의 수소연료전지 소재 기술을 인정하고 사주는 곳은 중국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까지는 전체 매출의 절반을 PTFE 멤브레인이, 나머지 절반을 강화복합막이 차지했지만 올해부터는 MEA와 고분자전해질(PEM) 연료전지 건물·발전 시스템까지 매출을 올릴 것”이라며 “연료전지와 수전해 핵심부품부터 시스템까지 아우르는 수소연료전지 토탈 솔루션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